봄부터 가을까지 꽤 오랜 기간 진행한 부모교육을 마무리하는 날이었습니다. 또 만나자는 다짐을 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부모교육 들으며 아이한테 화내지 말란 말은 많이 들었지만, 강사님이 저도 아이 기르며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낸다고 말하며 강의를 시작하는 부모교육은 처음이었어요."
엄마라는 일과 돈을 버는 일과 나다워지는 일을 동시에 해내고 싶다 보니 늘 시간, 그리고 체력과 다투며 살았습니다. 공중에 띄워놓은 세 개의 공이 바닥에 떨어질세라 아슬아슬하게 받아 올리고 또 받아 쳐올리며 사는 삶이 어떻게 편안하고 즐겁겠어요. 아차 하는 순간 공 세 개가 모두 바닥에 우르르 떨어질 것 같아 경계하고 긴장하며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가족 수가 많을수록 돌려야 하는 공의 개수가 늘어나지요. 둘째와 막내 모두 유아기였던 그때만큼 화를 다스리기 어려웠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편안한 상태에서 화가 나기까지 속도가 너무 빨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가 날만한 상황이긴 한데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은 것처럼 순식간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는 거예요. 그리고 그 화를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히기가 힘들어 계속 그 상황을 곱씹고 곱씹으며 저를 괴롭히는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아! 빨간불이다! 나와 나의 삶에 경고등이 들어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는데, 지하철을 타고 일을 하러 가던 중 제 속과는 다르게 한가로이 흐르는 한강을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화가 제멋대로 내 맘 속에서 날뛰니, 내 화에 이름을 붙여줘야겠어!' 화가 다스려지기는커녕 나 자신을 뒤흔들어버리니 이젠 화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하철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며(저희 학교가 좀 높아요 ㅠㅠ) '나의 화'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강렬하고 무자비하며 돌풍처럼 커지는 나의 '화'에게 어울릴 이름은 뭘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 당시 재미있게 봤던 영화의 등장인물이 떠올랐어요. 바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악역의 최종 보스! 샤우론!
그날부터 융이 제안한 명상 기법인 '적극적 상상'을 활용하여 샤우론과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번은 내가 되었다, 한 번은 샤우론이 되었다 번갈아가며 빈 노트에 저와 샤우론의 대화를 받아 적었지요. 네네~ 이중인격자처럼요! 도대체 내 안에 왜 살고 있는지,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유가 뭔지 물어봤습니다. 제발 좀 사라져 달라고 애원하고, 너 때문에 창피하다고 화도 냈지요.
그리고 드디어! 제 갖은 회유와 추궁 끝에 샤우론이 자신의 속마음을 실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로 저는 저의 '화'를 이해하게 되었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제 안의 '샤우론-모든 것을 파멸로 치닫게 하는 그 샤우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샤우론은 화를 내며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내가 너의 삶에 끼어드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거야! 사람들한테 억울하다고, 화가 난다고 제대로 말을 못 하고 당하고만 있으니 내가 너를 지키려고 튀어나오는 거지! 나는 너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
이 문장이 제 마음에서-어차피 샤우론도 저니까요- 떠오른 순간 저는 제 자신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나를 살리고 지키기 위해 과연 무엇을 했던가! 하루에 3시간씩 끊어 자며 강의준비와 프로젝트에 매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초보 엄마였던 저에겐 육아에도 숙달이 필요했고, 아직 살림 실력이 늘지 않았으며, 맡은 일에는 늘 구멍이 보이고 미진함이 가득했지요. 매일 강도 높은 훈련처럼 치열하게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게 다 제 선택이었지요.
돌아보면 그 시절의 화는 정말 악에 받친 화였습니다. 지금 나 너무 힘들다고 소리치고 싶은데, 일이며 육아며 다 제 일이잖아요. 화 낼 대상이 없어서 결국 또 제대로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근데 내가 또 열심히 살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억울해서 다시 화가 나고! 정말 화의 돌림노래, 구간반복이 멈추지 않았지요.
사람의 감정은 참 희한해서 모른 척하려고 하면 더 고개를 들이밉니다. 반대로 알아주고 고마워해주면 햇살에 눈이 녹듯 사르르 사라지지요. 샤우론의 분노가 와락 터진 그날, 그리고 제 화가 저를 살리려던 제 자신의 간절한 바람임을 알았던 그날 이후 '화'와 아주 조금 더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가 튀어나오는 순간 내가 편안해지길 바라는 샤우론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제는 악에 받친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를 이용하기는 해요. 단호함을 강하게 표현해야 할 때, 이젠 정말 더 이상 여지가 없음을 알리고 경고할 때 '화'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제 화에 휩싸여 모든 것을 태우고 후회와 연민으로 마무리되던 돌림노래는 멈췄습니다. 저는 화를 느끼고 표현하지만, 화에 휘둘리지는 않습니다.
"저도 애들한테 화내요."
아이들이 서로 주먹다짐을 할 때에는 화를 내며 소리도 지릅니다. 긴박한 상황일수록 제 목소리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옵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사용한 화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다시 편안한 제가 됩니다. 화에 이름을 지어 준 날 저는 화와 친구가 되고, 화와 다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화는 칭찬해 주면 쉽게 사그라듭니다. 우쭈쭈 해주면 더 빨리 만족하며 제 자리로 돌아가지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도 사랑이 필요한가 봅니다. 화내는 엄마에는 칭찬스티커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오늘은 제가 한 장씩 나누어드릴게요.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