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작업'이라는 책에는 '엄마 일'과 '내 일'을 동시에 꾸려가는 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실려있습니다. 그중 엄지혜 작가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던 엄작가는 어느 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부터 이런 말을 듣습니다.
완벽한 부모야말로 최고의 재앙
p. 155, 돌봄과 작업. 돌고래출판사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서운한 마음에 집을 뛰쳐나와 학교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며 시간을 보내던 날이 있었습니다. 늦도록 집에 오지 않는 딸을 데리러 엄마가 찾아왔지요. 귀여운 동생 손을 잡고! 동생 손을 다정하게 잡은 엄마를 보는 순간 서운함은 더 크게 증폭해서 터져버렸습니다. 그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해가 기울어가는 아무도 없는 넓은 운동장과 삐그덕거리는 그네의 소리가, 그리고 채워지지 않았던 그리움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엄마가 되면 그런 섭섭함을 느끼지 않게 아이를 잘 기르고 싶었어요. 늘 필요할 때마다 다정한 눈으로 응원하고 보듬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큰 아이를 낳고 오래도록 둘째 생각이 없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어요. 사랑을 나누어주는 도전 자체가 저에겐 반갑지 않았습니다. 큰 딸만 한눈에 담을 수 없었던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지요.
감수성이 남달랐던-툭하면 울어서 수도꼭지란 별명이 있을 정도였...- 제 어린 시절을 부모가 된 지금 시절에 되돌아보니 '참 기르기 어려운 딸'입니다. 그래서인지 복잡한 감정과 용광로처럼 뜨거운 욕구를 지닌 저 닮은 아이를 감당해야 하는 부모님들을 만나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멋쩍게 '키우기 수월한 아이는 아니네요'라는 위로를 건네게 되는 건 이제야 엄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덕분입니다.
사랑을 담뿍 받았으면 좀 나았을까? 엄마가 그날 날 혼자 찾으러 오고 나만 폭 안아주었다면 지금의 내가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나날들이 있었습니다. 유년시절 쌓인 실망과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의 방향을 분명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어요.
행복은 삶을 살아가게 하고,
상처는 우리를 목적지로 이끌어요.
행복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상처는 삶의 목적을 찾도록 채근하는 힘이구나. 상처는 우리를 이루게 합니다. 물론 상처로 우리는 낙담하거나 작아지지만, 상처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바로 '나만의 삶'을 써나가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힘든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이니까요.
완벽한 부모야말로 그래서 최고의 재앙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부모의 자녀는 '자신의 삶'을 허락받을 수 없습니다. 상처를 막아주는 부모덕에 아이들은 늘 '행복'만 누릴 수 있겠지만, 행복만으론 자신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영혼의 성장은 분명 '결핍'에서 시작됩니다. 어려움이 없을 때 우린 고민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울 때에야 우리는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지요. 어둡고 흔들릴 때 우리는 '진짜 나의 목소리'를 들으려 매달리게 됩니다.
아이가 없었다면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네에 앉아 교문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리던 날을. 맡길 데 없는 동생 손을 잡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을 엄마의 마음을, 뛰쳐나간 아이를 혼낼 수도 엄마 마음을 몰라준다며 원망할 수도 없었던 엄마의 그날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제 완벽할 수 없음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