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을 하느라 배운 것들을 떠올려봅니다. 요리, 집청소, 정리정돈, 세금이나 공과금 내기, 번 돈에 맞추어 적당히 지출하는 법, 물건 고르는 안목처럼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들도 늘었지만, 감정을 조절하거나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다루는 힘도 커졌지요. 때로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가치이지만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가치를 훈련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자 애쓰기도 합니다.
물론 꼭 엄마여서가 아니라 나이를 먹으며 감정이나 생각을 돌보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건 세월이 주는 자연스러운 숙제 같긴 합니다. 그러나 부모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더욱 요구되는 가치들이 있지요. 그런 가치 중 하나가 저에겐 '수용'입니다. 수용이란 외부의 상황이나 타인의 기대가 나와 다르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옳고 그름의 판단을 늘 내 기준으로 하려는 편인 저에게 '수용'은 참 어울리기 어려운 가치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부터 생각해 보게 되잖아요. 이 맞다 안 맞다의 기준이 각자의 삶에 대한 태도, 혹은 신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가정마다 가진 신념도 다양하지요. 어른이 되어 외부에서 정해준 틀 안에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이 줄어든 이후로는 나와 맞는 사람과 어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깊이 지내왔어요.
하지만 엄마 일을 하면서 아이의 친구 부모나 같은 반 부모들을 만나거나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진 부모가 키운 아이들을 만나며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반 친구 모임에 갔더니 마인크래프트를 하지 않는 아이가 내 아이뿐일 때! 아이 친구들이 하나둘씩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아이가 친구들도 달고 다니는 크록스의 지비츠를 사달라고 할 때!
이런 소소한 순간에서도 우린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집에선 불필요한 물건이 다른 집에선 소중한 물건이 되기도 하고, 우리 집에선 허용하지 않는 것들이 다른 집에선 허용되기도 하지요-오해하실까 봐, 마인크래프트는 하지 않지만 젤다의 전설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은 없지만 집에서 패드로 미디어를 즐기고 있으니 제가 미디어기기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 부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 그저 그 안에서 무엇이 되고 안 되고는 가정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지요.-.
이런 다름을 경험하고 수용하는 순간들이 엄마 일을 하면서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제 일일 때에는 선택의 책임을 내가 지면 되니 무엇에든 크게 두렵지 않았는데, 자식 일에는 그 책임이 자녀에게 돌아갈 때도 있어 선택을 단호하게 하기 어렵기도 했어요. 하루는 아이 유치원 친구들 모임에 나갔는데 핸드폰에 게임 앱이 없는 집이 저희 집뿐이었습니다. 어른들끼리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여 게임을 시작했는데, 저희 아이만 할 게 없더라고요. 옆에 엄마들이 얼른 하나 받아주라고 채근했고, 저도 순간 당황해서 아이가 고른 게임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날 모인 여섯 명의 아이들 중에 자기 핸드폰이 없는 아이는 두 명이었어요. 그 두 명 중 한 엄마는 패드를 들고 왔더라고요. 그날 모인 아이들 중 개인 물병을 안 가져온 아이는 제 아이뿐이었습니다. 음... 이런 모임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이런 게 필요할지 전혀 예상도 못했어요. 아이는 다 있는 물건이 자기에게만 없으니 이래저래 심통이 났고요.
그래서 다음 모임엔 좀 더 준비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우리 집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융통의 지점을 마련해야겠다 생각했지요. 초등학교에 들어간 둘째는 이제 우리 집과 다른 집의 기준이 다름도 알고, 그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물론 자기에게 이로운 일에만 다른 집의 기준을 주장해대지만요.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에서 애초 우리 안엔 많은 관심사들이 있지만 어린 시절엔 단 몇 가지만 활성화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다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고도요. "이곳저곳 여행을 다녀보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보고, 아니면 그저 전통 사회에 대한 훌륭한 소설 한 편을 읽는 것"으로 우리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다른 가치를 접하고 새롭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합니다.
엄마 일을 하지 않았다면 크게 관심 갖지 않았을 것들을 떠올려봅니다. 감정을 다루거나 마음을 잘 전달하거나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서부터 간단하게 풍성한 식탁을 차려내거나 빠르게 집을 정리할 수 있도록 수납하는 일까지 엄마 일을 하며 관심을 갖게 된 부분들입니다. 특히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아도 빠르게 감정을 수용하고 털어낼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한 만큼 화를 적당히 조절해 낸 순간마다 제 유능감을 꽤나 높여줍니다.
왜 엄마라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며 살았을까 생각해 보면 제 강점은 호기심과 독창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러 영역들이 가득한 엄마 일에 매력을 느낀 거 보면요. 그리고 다른 강점으로 엄마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저에게 숨겨져 있던 새로운 강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도전적인과 수용적인, 호기심과 만족, 독창성과 보편적인의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가치들을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어떤 강점이 여러분을 좋은 부모로 만드나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러분에게 필요한 강점은 무엇인가요?
오늘은 강점검사 링크를 소개하며 마무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