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일을 잘 해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나 엄마라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은 너무나도 '매 순간'이라 특정한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라는 일을 사랑하게 된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전 제 아이들보다 제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느지막하게 9살 터울에 둘째를 낳고 둘째가 20개월이 되어가던 즈음에 셋째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아들 둘 기르기에도 벅차 보이는 딸에게 또다시 아이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친정엄마에겐 반가우면서도 속상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우신지 서둘러 전화를 끊으시더라고요. 엄마의 그 마음-손주는 이쁘지만 딸이 힘든 건 싫은 딸 가진 엄마의 당연한 마음-이 오롯이 이해되어 왠지 뿌듯-다 컸지만 애지중지당하는 기분이 들어서-해졌습니다.
임신하고 배가 불러오면서 슬슬 하던 일들을 정리하고 출산을 준비하던 여름이었는데요. 엄마가 하루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엄마가 지금까지 살면서 돌아보니 자식을 낳아서 잘 기른 게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이더라. 일도 좋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자식 잘 키운 게 엄마 인생에선 제일 좋은 일이었어." 한창 일에 탄력이 붙은 40대 초반의 딸이 늦둥이를 둘이나 낳고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보겠다며 버둥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엄마의 담담한 고백에 저는 '엄마라는 일'을 본격적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나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 밑에서, 여자도 배우면 남자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시대의 기대를 받으며 자란 X세대인 저에게 '성취'는 똑똑해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엄마 세대의 대를 이어 이루어낸 승리이자 저 자신을 입증해 낸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에게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누리려면 들어온 일을 거절하는 방법뿐이고, 이런 거절은 일과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동반하지요. 일을 줄인다는 것은 저 자신을 위축시키는 꽤 위험부담이 큰 결정이었어요.
물론 큰 아이를 낳고 기를 때에 비해 출산과 육아에 관한 많은 사회적 지원이 마련되었고, 저도 그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원조-특히 육아를 자기 일이라 여기는 남편-도 큰 도움이었지요. 아이를 잘 기르는 것은 이런 지지로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라는 일'을 사랑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엄마라는 일을 사랑하게 된다면, 나 자신을 잃게 되거나 나의 성취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함이 치솟았거든요. 일과 양육 사이에서 초단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는 엄마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임이 분명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엄마 일'에 대한 고백을 들은 순간 깨달았습니다. 왜 내가 엄마 일을 열심히 하면서 동시에 힘들다고 투덜거리고 부당하다고 억울해했는지...
엄마라는 일을 사랑하는 데에는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일과 육아가 서로 대립된 일이 아니라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임을 사회로부터 허락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시대를 살아온 헌신과 희생의 아이콘인 나의 엄마로부터 엄마로 산 세월이 아깝지 않는다는 말, 아니 그 일에 만족한다는 고백이 내가 나다운 엄마-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엄마-로 살아가도 됨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늘 빚진 마음이 있었어요. '아이가 하나면 둘일 때보다 더 잘해줄 수 있지 않냐, 버는 돈은 일정하니 아이가 둘이면 해주고 싶어도 어렵다... '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나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무의식적으론 나와 나의 부모를 떠올리고, 나의 지금이 부모에게 빚진 삶처럼 여겨져 즐거워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기른 일이 내 인생에 제일 잘한 일이다'라는 엄마 이야기를 들은 그날 제 인생이 부모의 행복을 담보로 진 빚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어요. 성취하지 않으면 빚을 갚지 못한 것 같은 느낌에서도 자유로워졌고, 전업맘으로 자녀를 돌보지 않으며 느꼈던 자녀에 대한 부채감에서도 자유로워졌습니다.
내 방식으로 엄마라는 일을 해도 된다는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전 엄마라는 일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엄마라는 일을 사랑하게 된 순간은 언제부터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