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오후 수영 쉬면 안 돼?”
소화가 안 된다고 점심도 거르고 한숨만 푹푹 내쉬던 아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었다.
오전 2시간, 오후 3시간. 하루 5시간의 선수반 동계훈련 5일째 되던 날이었다.
“왜? 뭐가 힘들어?”
아이는 콕 집어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울음을 참는 듯 입을 비죽거리며 울먹이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보다 답답한 감정이 치밀었다. 이상하게도.
“패들 끼고 접영 할 때 너무 불편해. 그리고 100미터 사이클이 너무 힘들어. 토할 거 같아.”
"아직 패들 적응이 안 돼서 그럴 거야. 패들 제대로 쓰면 힘은 들어도 불편하진 않대. 토할 거 같은 건 일요일에 체한 게 아직도 안 좋은가 보다."
주말에 파스타를 먹다 크게 얹혀서 체기가 남은 컨디션.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3시간이나 늘어난 훈련 시간까지. 몸이 아직 적응을 못해 그렇다고 생각했다.
“선생님한테 문자 보내 놓을게. 일단 가. 힘들면 나와.”
그렇게 달래 수영장 안으로 들여보냈고, 아이는 마지막 1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속이 안 좋다며 물 밖으로 나왔다. 남은 훈련 대신 한의원에서 침을 맞은 후 그녀의 컨디션은 꽤나 좋아 보였다. 이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는 다음날부터 수영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하는 오전훈련은 그럭저럭 잘했는데 오후 훈련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하루 종일 걱정을 했다. 공복에 운동을 해서 배가 고플 텐데도 소화가 안된다며 몇 술 뜨질 못했다.
“오후에 또 힘들면 어떡하지?”
이제 적응 돼서 괜찮을 거야. 지난주에는 몸도 안 좋고 훈련시간도 갑자기 늘어나서 갑자기 마음이 놀란 거야. 엄마가 대기실에서 봤는데 실력이 아주 많이 늘었더라. 이제 00 이보다 훨씬 빠르던데.
아이에겐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았다.
우리 어차피 4학년까지만 해보기로 한 거잖아. 힘들어도 앞으로 1년도 안 남았는데 지금 그만두면 나중에 그때 그냥 해볼걸 후회하지 않을까. 엄마도 많이 포기해 봐서 알아.
하루종일 한숨에 눈물바람인 아이 옆에서 설득을 하다 그만 좀 징징거리라며 벌컥 화를 내길 반복했다. 아이의 숨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힘들게 운동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부추김이 싫어 근처에 사는 친정부모님이 집에 오시는 것도 싫었다.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연신 속이 불편하다는 아이의 배를 온종일 문지르면서도 차마 '그만두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막상 훈련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선수반 시작 몇 달 만에 눈에 띄게 기량이 상승한 게 보였기 때문에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눈물을 달고 사는 아이의 상태를 선생님도 눈치채셨다.
‘지금 제일 힘든 때이긴 해요. 체력 훈련도 추가되고. 남자아이들이면 그냥 밀어붙일 텐데 여자 아이라 조심스럽네요. 사춘기가 왔을 수도 있고. 컨디션 보며 시킬 테니까 그래도 믿고 보내주세요.’
아이는 그만두겠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홀가분하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포기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듯. 나도 모르겠어. 그 말만 반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인데.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답답한 시간이 촛불처럼 타 들어갔다.
그날도 오후 훈련을 가면서 한숨을 쉬어대는 아이에게 참지 못하고 한 바탕 쏘아붙인 참이었다.
시작한 지 20분이 지나 아무도 없는 어린이 탈의실에서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그럴 거면 그만둬! 여기서 엄마 따라 나가면 다시는 수영장 안 오는 거야!"
결국 내 입에서 끝이라는 말이 나왔다. 차마 수영복을 입지도 못하고 우는 아이의 짐을 챙겨 들고 먼저 탈의실을 나섰다. 설마 했는데 아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를 따라 나오려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울컥 감정이 쏟아졌다. 이렇게 강하게 나오면 아니라고, 하겠다고 얼른 훈련장 안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아이는 엄마가 이렇게 강하게 나와주기를, 그래서 오늘의 이 고통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떠밀리듯 포기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두겠다고 말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못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그랬듯 본인을 강하게 이끌어주었던 엄마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임을.
외투 지퍼를 채우는 아이를 보다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옷 벗고 들어가. 괜찮아.”
하지만 이미 감정의 둑이 터진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오열했다.
"엄마, 무서워. 나 못 하겠어. 나 못해. 나 어떡해."
그만해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이렇게 힘들다는데. 이러다 병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그런데 왜 이 상황까지 왔는데도 흔쾌히 그만두라는 소리가 안 나오지. 왜 그만해도 된다고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말해 줄 수가 없지. 나는 왜 아이의 실패가 두려운 걸까. 이대로 포기하면 습관이 될까 봐? 힘든 일도 견디는 연습을 해야 앞으로 인생의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말 아이를 위한 이유이기만 할까. 내가 두려운 것은 너의 좌절일까 나의 실망일까. 가장 불편한 진실은 아이의 실패가 나의 실패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올해 11세가 되는 딸아이는 정말 성실하다. 7세에 시작한 구몬 학습지를 하루도 밀린 적 없고, 학습지는 원래 밀렸다 몰아하는 게 맛이라는 내 농담을 한심해할 만큼 모범생이다. 학교는 물론 학원이나 과외수업에 1분이라도 늦으면 큰일 나는 줄 알며 아무리 양이 많더라도 숙제를 안 하거나 대충 한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6세 때부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습관을 들였고 하루 할 일을 칠판에 적어 놓고 그 일이 끝나기 전엔 놀이시간을 갖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 대부분 악필이라는데 아이는 글씨마저 강박적으로 잘 쓰려고 해서 아무리 긴 글을 써도 글씨체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위해 매일 줄넘기 1500개를 시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군말 않고 하던 아이다. 딸아이의 머리가 특별히 좋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끈기도 재능이라면 우리 부부는 아이의 가장 큰 재능이 무거운 엉덩이라고 얘기할 만큼 딸의 인내과 성실함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고백컨데 그래서 두려웠다. 오늘 한 번의 포기가 나의 자부심에 흠집을 낼까 봐. 더 이상 딸에게 너의 장점은 지구력이라는 말을 해 줄 수 없게 될까 봐. 자라면서 수 백번도 바뀌는 게 아이들인데 내가 정해 놓은 틀에서 아이가 벗어나게 될까 봐. 겨우 그까짓 걸로. 미친년이다 정말 내가.
"일단 오늘은 왔으니까 하고 가자."
반쯤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를 달래서 수영장으로 들여보냈다. 대기실에 앉아서 선생님께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며 미간을 굳힌 채 아이의 움직임만 쫓았다. 그렇게 울고 불고 한 것과 달리 몸은 가벼워 보였다. 제법 힘든 사이클도 놓치는 법 없이 따라갔고 집중력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심란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날, 훈련이 끝날 무렵 아이들을 스타트대로 올린 선생님은 기록을 재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대회 이후 처음이었다.
입수를 마친 딸이 물 위로 떠 올랐다. 힘차게 발차기를 하며 팔을 저었다. 불과 한두 달 전보다 동작과 속도감이 좋아진 게 느껴졌다. 터치패드를 찍고 선생님께 기록을 들은 아이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해바라기 꽃처럼 환한 얼굴. 겨울 방학 시작 후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6개월간 제자리걸음을 하던 기록이 6초나 단축되었다. 언젠가 '수영 5초 줄이는 것보다 수학문제집 2년 치 푸는 게 빠를 거 같아'라고 푸념하던 딸이었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이는 아주 오래간만에 소화제 없이 저녁을 먹었다. 마음의 병이 나은 것 같다며. 최고 기록을 찍은 본인의 모습을 복기하며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나는 선생님께 전화를 하려던 일을 슬쩍 물렀다.
어쩌면 아이가 필요로 했던 것은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는 다정한 안심 따위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네가 원했던 것은 확신이 아니었을까. 잘하고 있다는. 지금 힘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니라는. 어른인 나조차도 내 인생에 확신이 없는데. 조금의 노력으로도 금방 성과가 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한데. 고작 만 9년을 살고 있는 너에게 6개월간의 정체는 얼마나 큰 시련이었을까.
아무리 물 밖의 부모가 잘하고 있다고 해도, 나아지도 있다고 해도 물속에서 움직이는 아이에게 본인의 속도는 더디고 팔다리는 무거웠을 터. 수면 위에서 위로라고 던졌던 백 마디 말은 스톱워치에 찍힌 소수점 두 자리 숫자만큼의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날 이후, 아이가 웃으며 수영을 하러 간다는 그런 단순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여전히 훈련을 두려워하고 헤엄을 치다 눈물을 보여 지적을 받은 적도 있다. 유난히 동작이 잘 되지 않았던 날엔 스톱워치에 찍혔던 숫자가 우연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며 울적해하기도 했다.
이제 10대의 초입에 들어선 여자 아이에게 불확실한 일들의 연속인 인생은 때마다 얼마나 큰 파도로 다가올까. 하지만 네 눈앞의 파도는 나의 큰 산이 아니다. 너의 감정은 오롯이 너의 것이기 때문에.
너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 아니듯 너의 실패도 나의 실패가 아니다. 그래. 두려워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