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라고 하면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방법은 마치 흙탕물 속처럼 어지러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마음속 진흙 찌꺼기를 가라앉히는데 좋기는 하지만, 사람의 특성은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 맞는 명상의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 사실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돌아다니거나 움직이며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방법이 성격에 맞았다.
공부도 책을 들고 걸어 다니며 해야지 효율이 좋았다.
그러하기에 나는, 나를 위한 명상법을 아래와 같이 진행하고 있다.
우선 걷는다.
빠른 걸음으로 햇살을 받으며 걷다가 예열이 끝나면 달리기 시작한다. 숨이 벅차오면 다시 빠른 걸음으로 전환하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반쯤 뻗는다, 마치 집도의가 두 손을 올리고 수술대 앞에 선 것처럼.
그리고 햇살을 받으며 먼저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오늘 뛸 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하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감사하다.
감사할 일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사소한 것부터 감사해하는 기도를 시작하면, 자연스레 부족한 점, 개선해야 할 점, 반성해야 할 부분들이 차근차근 떠오른다.
그러면, 이제 반성의 시간이다.
물론 이 와중에도 여전히 발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생을 거쳐 오며 행했던 큰 잘못들, 작은 잘못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반성의 기도를 올린다.
머리로는 감사와 반성의 기도를 하고,
발은 여전히 움직이고,
심장의 박동수는 높아지며
숨이 벅차오는 것을 느낄 때,
바로 그때, 머릿속과 마음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느낀다.
단지, 들숨과 날숨만이 존재함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살아있다... 는 생각만이 드는 순간이다.
그 명확한 사실 하나만이라도 건진다면 명상은 성공했다고 보면 된다.
하루 24시간 안에서도 기분과 마음에는 높고 낮음이 당연히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좋은 순간과 나쁜 순간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어 있다.
불안한 마음, 부정적인 생각, 화를 치솟게 하는 생각, 상처받은 기억들이 나를 괴롭게 할 때 이렇게 되뇌곤 한다.
넘어서려고 힘들었나 보다.
웃으려고 울었나 보다.
달리기 위해 걷기 시작했나 보다.
별이 반짝이기 위해 어두웠나 보다.
감사함을 느끼라고 비우게 하셨나 보다.
배움이 있으라고 겪게 하셨나 보다.
살을 이렇게나 빼려고 그렇게 찌웠었나 보다.
좋은 소리 들으려고 나쁜 소리도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