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삶을 가볍게
동물원 옆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삶이 행복해진다.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심미안을 길러야 일상을 즐겁고 풍요롭게, 삶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자.
이 글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물, 영화, 음악, 미술, 장소,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동물원 옆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영화 중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심은하, 이성재 주연의 이 영화를 1998년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자주 찾아가서, 한국 근대 회화부터 현대 회화 거장들의 작품까지 마음껏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이나 방문객들이 서울랜드나 동물원으로 향할 때, 혼자 온 나는 왠지 모를 우쭐함(‘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우아한 취향의 나’라는 자아도취가 아니었을까?)으로 도도하게 미술관으로 들어갔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미술관 데이트를 즐기러 온 풋풋한 연인들이었다.
대학생 시절 연애 한번 못 해본 나는 매번 혼자라서 쓸쓸하기도 했지만, ‘뭐 어떠랴, 예술은 원래 쓸쓸한 것을…’ 이따위 유치한 감상에 젖으며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느 주말에는 도시락도 준비해가지고 아침 일찍부터 해 질 때까지 미술관 곳곳을 누비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그곳이 나는 그렇게 미치도록 좋았다.
미술 작품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건축물의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이 강렬했다.
구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설치 작품이 반겨 주는 과천관의 정문 출입구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까지 열려 있는 구조의 중앙홀에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백남준 작품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나선형 원뿔 구조의 건물 중앙부를 꽉 채운 거대한 설치물의 규모만으로도 압도되는 듯했다.
그리고 다소 섬찟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도 나를 지켜보는 눈, 빅브라더처럼 느껴졌다.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2층으로 연결된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보이는 유리벽이 건물 반대편에 펼쳐져 있다.
예전 파리에 방문했을 때 가보았던 오르세 미술관에도 이와 비슷한 구조의 공간이 있다.
미술관 외부로 통하는 2층 작은 정원이 보이는 그 유리벽을 하염없이 넋 놓고 바라보았던 대학생 시절이 기억난다.
아름다운데 아련하고 슬펐고, 내 현실은 그와 달리 예쁘지 않아서 그 괴리감에 더욱 그 공간이 아름다워 보였던 게 아닐까? 왜 그렇게 그 유리벽에 꽂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공간에 머물렀었는지 그 이유를 그때는 몰랐었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2층에는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섭, 이응노, 김환기, 이우환, 김창열, 나혜석, 천경자, 유영국 등 그들의 영혼이 깃든 작품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른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앞에서도 그 벅참을 느꼈었다.
고통으로 얼룩졌을 삶을 그림으로 버텨낸 용감한 영혼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의 지난한 삶이 그림에서도 느껴져서 정신이 아득해졌던 생각이 난다.
결국은 교감이다.
그림이나 조각, 건축물을 볼 때 비평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이렇게 표현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라는 창조자, 예술가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모두들 입은 달려 있어서 그럴싸한 평가의 말들을 쉽게 내뱉고 아는 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그림이나 예술 작품을 제대로 바라보는 자세는 아니다.
답지 않게 평가만 하려 하는 속물적인 자세가 아니라, 작품을 느껴야 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작가가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려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작가가 주는 메시지에는 정답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작품을 보는 각자가 받는 서로 다른 감흥들 모두 정답이다.
어쩌면 애초에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미술관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올 때쯤이면 항상 뭔가 아쉬운 마음에 로비를 한 번 더 걸어본다.
어릴 때 미처 더 파고들지 못했던 그림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미술관에 오면 이런 작품들을 그릴 수 있는 작가들이 부러웠고 그 상상력의 깊이에 나의 부족함을 느꼈다. 행복하면서도 미묘하게 우울해진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온다.
오늘도 아름다움으로 영혼이 충만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