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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쿨한 언니의 따뜻한 잔소리

Scene 2. 왼손잡이 아이 이야기

by 쏘쿨쏘영


태어날 때부터 난 왼손잡이였다.
아기인 시절에도 먼저 왼손으로 무언가를 잡았고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고, 힘쓰는 일에는 항상 왼손을 먼저 썼다.

집안의 아이들 중 유일하게 왼손잡이인 나는, 밥상머리에서 부모님으로부터 한 번도 ‘왼손을 쓰지 말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 점에 대해 부모님께 매우 감사하다.

반드시 오른손을 쓰라고 나에게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간혹 작은아버지가 우리 집에 방문해서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작은 아버지는 ‘왼손 말고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지, 여자가…….’하고 계속 지적을 하셨다.

내가 여자인 것과 왼손 쓰는 것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난 참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린 나이인 그때에도.

쓸데없는 참견이었지만, 눈치껏 작은 아버지 앞에서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시늉을 해 드렸다.
기분 나쁜 소리를 미리 차단하는 일종의 처세술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오른손으로 잡은 내 숟가락에서는 밥알이 뚝뚝 떨어졌다.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나의 모든 놀이와 장난, 공부는 주로 왼손과 함께 했다.

그림 그리기, 바느질 놀이, 한글 쓰기 등을 왼손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해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왼손잡이인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왼손잡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받은 가장 큰 스트레스는,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마다 선생님이나 반 친구들이 무심코 툭툭 던지는, ‘넌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을 쓰는구나’라는 말 한마디였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불편하지 않냐는 말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다.


소심하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특히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던 어린 나이의 나는,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그 말들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

왼손잡이로서의 특이함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나 환경이었기 때문에, 어린 나는 남들이 정상적이라고 평가하는 기준에 맞게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나에게 편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밥을 먹고 숙제를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며 학교 교육을 받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면서, 왼손을 사용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나는 어느새 양손잡이가 되어 있었다.

그림 그리기와 글씨 쓰기는 오른손으로,

바느질은 왼손으로, 공을 던질 때는 왼손으로,

병뚜껑을 돌려 딸 때는 (힘이 필요한 일에는)

당연히 왼손으로.

지난주 아뜰리에를 방문해 오랜만에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문득 왼손잡이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왼손으로 크레파스와 붓을 자유자재로 놀리고 색칠했었는데, 지금은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왼손으로 붓을 쥘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왼손으로 그림 그리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왜 다들 한 마디씩 하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이런 것이 바로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획일성과 경직성이었던 건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갈 때쯤, 그들이 그렇게 간섭을 했던 이유들 중 한 가지쯤은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부러웠던 것이다.
남들과 다른 왼손잡이가, 그들은 부러웠던 것이다.
평범하지 않으니 이상했던 것이 아니라, 색다르고 멋져 보이니 내심 샘이 났던 것이다.

세상에 많이 존재하지 않으니 희귀한 존재이고, 그 희귀함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으니 배가 아팠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굳이 왼손잡이를 타박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세계적으로는 왼손잡이 비율이 10%가량 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부르며 왼손을 터부시 해 온 유교문화의 영향이 깊게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되고서야 내가 가진 왼손잡이라는 특이성을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저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맞춰 왼손잡이를 ‘고쳐야 할 혹은 불편한 문제’쯤으로 여기고 살았었다, 안타깝게도.

특이하면 특이한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포용하는 일종의 사회적인 ‘똘레랑스 (관용의 정신)’가 우리 삶에 깊이 뿌리 박혀 자라났으면 좋겠다.

‘특이하다 혹은 다르다’는 말보다는 그저 ‘특별한 서로’라고 생각해 주자. 그렇게 서로를 인정해 주면 된다.

모두 다 같을 필요는 없다.
모두 똑같은 모습일 수도 없다.
각자의 인생 여정들이 모두 다르듯, 일률적인 잣대로 어떤 인생이 더 성공적이었느냐를 평가할 필요도 없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기준대로 충실히 살았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고 성공적인 삶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난, 태어났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왼손잡이이다.
소위 말하는 ‘바른 손’, 올바른 손이란 나에겐 왼손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왼손잡이로서 살아갈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생각, 관점으로 내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갈 것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시각으로 살아간다고 틀린 것은 아니니까.

('세상 쿨한 언니의 따뜻한 잔소리'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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