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 쿨한 언니의 따뜻한 잔소리

Scene 3. 인생이라는 캔버스

by 쏘쿨쏘영


집에서 혼자 홈 트레이닝을 열심히 해 오고 있는 나는,

주로 아침 시간에는 반드시 내가 사는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선 아침 운동길,

4차선 대로변에서 폐지와 빈 깡통을 모으는 50대 중반의 여자를 보았다.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검은 겨울 롱 패딩에 달린 후드를 머리까지 덮어쓰고, 리어카에 열심히 폐지와 깡통을 담고 있었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폐지가 혹시나 더 있을까 두리번거리면서.

나보다 끽해야 몇 살밖에 많아 보이지 않는데, 어떤 사정으로 빈 깡통을 모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걸까......

이상하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 여자분의 인생에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다시 그 여자분을 마주쳤다. 여전히 폐지를 모으고 있었다.

이번에는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난 누군가의 얼굴을 볼 때 제일 먼저 눈빛을 본다.

힘이 없는 눈빛이었다. 마음이 짠해 왔다.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와서도, 계속 그 잔상이 마음에 남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도 한때 그런 눈빛으로 아침 일찍 출근길 혼잡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던 날들이 있었다.


예전 집안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게 되었을 때, 영혼 없이 내 몸을 움직이며 그저 돈을 벌어야 했다.

묵묵히 상황을 인내하고 살아내는 동안, 내 안의 생기와 영혼의 우물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모를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나는 세상을 온통 비관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 모를 낭떠러지에 떨어진 듯이 우울한 생각이 들 때마다, 남의 인생을 먼발치에서 보듯 관조적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멀리서 보면 내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인생이라는 각자의 큰 캔버스를 관찰자의 시점으로 멀리서 한번 바라보니, 인생은 마치 연필로 그린 데생 그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필로 선을 하나하나 성의 있게 적정한 강도로 조절해 그어 나가면, 흰 도화지 위에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이 차츰 표현되고, 이런 명암들의 덩어리가 모여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데생 그림이 완성된다.


그림을 그려본 분들이라면 잘 아실 것이다.

데생 그림의 가장 어두운 부분 바로 옆에는 반드시 가장 밝게 표현되는 하이라이트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깊은 어둠이 있어야 환한 하이라이트가 더욱 돋보이는 법이다.


힘들고 어두운 시기가 닥쳐올 때마다

‘난 지금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열심히 통과하고 있고, 그다음엔 반드시 밝은 하이라이트가 나올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내 인생의 그림을 더 아름답게 그려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난, ‘내 인생의 그림을 더 아름답게 그려 나가게 해 주는 요소’라고, 고난과 절망, 어려움을 positioning 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여유롭게 산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복 받은 삶이겠지만, 역시나 그런 밋밋한 그림은 나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단짠단짠’의 매력이 있어야 맛있는 음식으로 느껴지듯, 깊은 어두움과 하이라이트, 다채로운 색채들이 겹겹이 더해진 그림이 좀 더 역동적이면서 에너지가 넘친다.


난 에너지 넘치는 그림이 좋다.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그림이 좋다.


오늘 아침 운동길, 대로변에서 그 아주머니와 다시 마주쳤다.

지난번과 똑같은 검은 롱 패딩, 리어카에는 폐지와 깡통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오늘은 폐지들을 많이 모으셨구나 싶었다.

내심 마음이 놓였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아주머니는 이 거리에서,

다른 이들에게는 쓰레기이지만 그녀에게는 쓸모 있는 소중한 깡통들을 계속 주울 것이고, 나도 매일 운동을 할 것이다.

우리 같은 아주머니들은 쓸데없이 부지런한 편이다, 서글프게도.

어찌 되었든, 그 아주머니는 그녀의 일상을 충실히 살고 있었고, 나 또한 나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 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아티스트이다.

깊은 어두움이 있어야 하이라이트가 더 환해지는 법이다.


어두움만으로 그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니 이 어두움을 끝내기 위해 무엇이든 다 시도해 보아야 하이라이트를 만날 수 있다. 힘들어하지 말고 뭐든 도전해 보자.


내 인생을 흰 캔버스인 채로 그냥 놓아둘 수는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