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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Aug 02. 2018

박흥용과 오토바이

《호두나무 왼쪽 길로》

ⓒ 황매

  만화를 문학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게 만들었다는 작가주의 만화가 박흥용(1959-)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불교미술인 탱화, 형은 순수미술, 저절로 그림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1981년 《돌개바람》으로 등단을 했는데 스물한 살 때였다. 


  성인만화 잡지 <만화광장> 1회 신인 현상공모전 극화 부문에 <백지>라는 작품으로 대상.


  대상은 잘 뽑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서 단연 이야깃거리였다.


  만화계란 곳이 좁아서 누가 그림을 잘 그린다 하면 문하생들 사이에 금방 입소문이 났다.  


  이현세(1956-) 작품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밑그림(데생)을 박흥용이 맡았다. 


  그 무렵 이현세 작품 참여는 한마디로 대단했는데 그만큼 만화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개성이 너무 강했다. 


  누가 봐도 그건 이현세 표가 아닌 박흥용 표 만화였다. 


  그래서 1, 2, 3 세 권을 끝으로 다른 사람이 이어갈 만큼 그림은 독특하고 튀었다.   


  박흥용 그림이 독특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문하생을 거치지 않아서였다. 


  돌이켜보면 만화가 문하생 생활이 길수록 그림 개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할리 데이비드슨 883을 타고 부아앙-, 캬- 한마디로 끝내줬어!”


  “한번 타면 시속 200km는 기본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확인되지 않는 소문들이 문하생들 사이에서 나돌 만큼 박흥용 하면 그림만큼이나 관심을 받았던 묵직한 오토바이. 


  그 오토바이가 또 다른 주인공인 작품이 있는데 바로 《호두나무 왼쪽 길로》이다. 


  만화를 그림에 있어서 오토바이를 잘 그리기란 무척 어렵다. 


  더구나 부속품이 겉으로 드러난 오토바이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까다로워 오토바이를 잘 그리면 배경은 떼놓은 당상이라고까지 했다.      


  난 아직 한 번도 호두나무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다.


  -본문에서-      


  할머니와 둘이 사는 소년 상복은 동네 어귀로 들어오는 길에 있는 호두나무 아래서 엄마를 기다린다.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엄마는 돈을 번다며 서울로 떠났다고 했다. 


  상복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돈 많이 벌어 온다던 엄마. 


  소년 상복은 이 작품 제목이기도 한 호두나무 왼쪽 길로 엄마가 오리라 굳게 믿으며 어린 날을 보낸다.


  고교 졸업반이 돼서야 상복은 엄마가 재혼했다는 사실을 할머니한테서 듣는다. 


  믿음이 컸던 만큼 배신감도 더해 상복은 엄마를 기다렸던 그 호두나무를 떠나기로 한다. 


  어릴 때부터 열아홉 살이 되기까지 상복이 꿈은 얼른 자라 이 호두나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호두나무는 자신을 옭아맸던 현실이기도 했다.


  상복은 그동안 엄마가 보고 싶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걸어서, 중학교 때는 월사금을 훔쳐 산 자전거로 엄마를 만나려고 길을 나섰지만 실패했었다. 


  세 가지 무서운 길. 


  처음 가는 길. 


  혼자 걷는 길. 


  그리고 처음 가면서 혼자 걷는 길. 


  처음 가면서 혼자 걷는 길이 두렵지 않다면? 


  미지에 대한 기대가 두려움을 덮을 만큼 커서 그렇겠지. 


  -본문에서-      


  평생 호두나무를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불타는 호두나무와 함께 사라진 뒤에야 상복은 떠날 수 있었다. 


  연식이 오래된 600cc 오토바이를 타고 엄마가 있을 서울과는 반대 방향으로.  


  높이 221m로 구름도 쉬어간다는 추풍령에 얽힌 충청도와 경상도 이야기, 목포 삼학도가 생겨난 전설, 남원 광한루 원래 이름이 귀향 온 황희 정승이 지은 광통루였으며,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넘은 경북 문경새재……. 


  충북 영동에서 처음 떠난 여행은 해남 땅끝마을을 거쳐 강원 정선에까지 이른다. 


  여행은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자 성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상복에게 오토바이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선 동반자이다. 


  성장통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다 보면 많은 괴로움과 고비를 맞이하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도 달라진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다 보면 나 스스로 삶에도 이해가 깊어진다. 


  《호두나무 왼쪽 길로》에서 상복이가 길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은 상복이를 성장하게 한다. 


  그리고 그리움이 짙어 미움으로 변해버린 엄마가 상복에게 다시금 다가온다.


  난 만화는 이래야 한다는 틀에 반대하지만 읽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만화가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호두나무 왼쪽 길로》는 그런 느낌을 듬뿍 받을 수 있는 박흥용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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