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을 만났다. 식당에서 ‘인절미’라는 이름을 대면 종업원 들은 궁금해 한다. ‘인자한 절세미인 들’이라는 의미를 말해주면 웃으면서 안내해준다. 모임명은 재치 있는 국어선생님이 제안했었다. 열다섯 명의 구성원들은 여고생들을 가르치며 더불어 오랜 기간을 보내서 익숙하다. 사립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어려움을 공유한 기억도 있다. 연령은 다양하며 가장 연장자는 나보다 20살이 많다. 그 분은 내게 좋을 나이라며 시간이 금방 간다고 했다. 선배 교사의 젊었을 적 모습이 기억에 남아 시간이란 무엇인가 싶었다.
나의 20년 전이 떠올랐다. 한창인 시절이었지만 녹록치 않았다.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주어진 책임의 틀 안에 갇혀 한 치의 여유도 없었다. 막다른 벽을 만나 해결책이 막막할 때 바다를 생각했다. 잠시의 탈출지로 떠올린 것이 강화 바다였다. 동막 해변에서 눈부신 해를 바라봤다. 햇살이 울컥 울컥 쏟아지고 있었다. 옴짝 달싹 못한 상태에서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불안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햇살 가득한 강화 바다는 크고 작은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혀 주었다. 갯벌에서 위로를 받았다. 시간은 서서히 흘렀고 상황은 달라졌다. 여유는 생겼지만 그때는 소중함을 몰랐던 활기찬 시기는 지나갔다.
가끔 탁 트인 공간에서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는 강화도 갯벌이 떠올랐다. 시외버스를 타고 염하(鹽河)를 건넜다. 강 같기도 한 바닷길을 건너면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진 섬으로 진입하게 된다. 강화 나들길 4코스의 일부인 건평 항에서 외포 여객터미널까지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건평 항을 가기위해 강화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노랑새 고개에서 내렸다. 노랑새 고개라는 이름이 정겹다. 멀리 굽이진 산이 보이고 누렇고 너른 논이 펼쳐졌다. 철새들이 무리지어 곡식낱알을 쪼아 먹고 있었다. 한적한 평지 길을 걸으니 마음의 면적이 조금씩 넓어졌다.
건평 항에는 크고 작은 고기잡이배들이 정박되었다. 갯벌에 비스듬히 몸을 뉘이고 쉬고 있는 배들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있었다. 조금은 흐린 날이었다. 하늘과 섬과 바다는 푸른빛이 감도는 무채색으로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조화를 이루었다. 바람과 물살은 갯벌에 크고 작은 골을 새기며 곡선의 다양한 무늬를 만들었다. 먼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골 안에서 흐르는 물들도 햇살을 받아 자글자글 끓었다. 갯벌은 바다와 육지의 중간에서 부드럽게 완충작용을 하고 있었다.
건평항 옆 공간에는 천상병귀천공원이 자리 잡았다. 술잔을 들고 앉아 환하게 웃는동상 옆에는 ‘귀천’의 구절이 적힌 시비가 놓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은 건평포구의 하늘을 보며 귀천의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시구를 읽으며 구름과 갯벌을 바라본다.
갯벌에 새겨진 깊고 얕은 복잡한 문양들은 바닷물이 밀려오면 사라진다. 지속될 것 같았던 순간들은 바닷물이 덮어버린다. 다음 날에는 또 어떤 풍경을 만들어낼지. 맑은 날 다시 갯벌을 찾는다면 흐린 날의 갯벌이 특별했다고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또 강화갯벌을 찾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