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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Sep 26. 2024

철새 보러 가는 길

강화 나들길 8코스,선두리 갯벌

선두리 갯벌



  강화나들길을 가려고 집에서 나왔다. 건널목을 건너는데 핸드폰을 안 갖고 나온 것을 알았다. 돌아갈 까 하다가 그냥 가보기로 했다. 옛날에는 핸드폰 없이도 살았다. 난감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남편과 결혼 전에 신촌의 한 다방에서 만나기로 한 적이 있다. 왕자 다방에서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엇갈릴 경우는 문 입구의 벽면에 메모를 써놓는 식으로 흔적을 남기기도 하던 때여서 살펴보기도 했다. 어떤 연락도 받을 수 없고 무조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한 시간 지나서 나타난 그는 황제다방에서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날따라 남편이 친구를 데리고 온 날인데 황당해하다가 혹시 몰라서 와봤다고 했다. 서로는 왕자냐 황제냐 하며 서로 맞다고 다투었다. 그렇게 엇갈리는 해프닝이 있을 때를 생각하면 핸드폰이 있어서 편리해졌다. 문제는 너무 핸드폰에 의존하게 되어 없으면 불안해질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하루쯤 버텨볼 만 할 것 같았다. 급한 전화가 올지 신경도 쓰였다. 한편 풍경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8코스 중 동검도 건너편으로 걸으며 바다를 봤다. 바다를 향한 전망 좋은 집들이 많았다. 그 중에 펜션들도 많았다. 하늘에 구름은 솜을 옅게 펼친 듯 했다. 층을 이루기도 했고 갈빗살이나 양털 형상처럼 다양했다. 사진을 못 찍는 것이 아쉬웠다. 8코스는 ‘철새 보러 가는 길’이라는데 세 마리의 범상치 않은 새가 보였다. 칠면조처럼 컸는데 학 같기도 하고 부리와 꼬리가 까맸다.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있었다. 눈에만 담을 까 하다가 급하니까 그림을 그려야겠다 싶었다. 미술 도구도 없어서 노트에 볼펜으로 대충 그렸다. 마른 갈대들이 무리지어 서있는 풍경도 그리고 싶었는데 대충 그렸다. 사진을 너무 남발해서 찍는 것도 문제지만 꼭 기록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그 새들은 표지판을 보니 저어새(black faced spoonbill)였다.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얇은 물속에 넣고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검정색 얼굴을 가진 숟가락부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강화도 선두리 마을 각시암 근처에서 볼 수 있다. 각시암은 여자의 뒷모습을 닮았다 하는데 멀리서 보면 군함처럼 보여서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접근을 못했다고 한다.      

  선두리 갯벌을 보며 걷는 길은 거의 사람들이 없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가던 한 여자 분과 마주쳤다. 그녀는 핸드폰을 내밀며 강아지와 있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을 찍어주자  답례로 내게도 찍어주겠다 했는데 나는 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 없어요?”

  그녀는 물어본 후 갈 길을 갔고 나는 길을 계속 걸었다. 두고 온 핸드폰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전화가 왔을까? 길 검색도 할 수 없었고 핸드폰 비중이 더욱 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른쪽으로는 넓은 논이었다. 검은 흙들이 무더기로 부어져 있었다. 농사를 준비하나보았다. 저수지가 보였다. 사람들이 얼음을 뚫고 앉아 낚시를 했다.      

  더 걸어가니 넓은 동막해수욕장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밀물이 밀려왔다. 서해바다인데 바다색이 옥빛을 띄며 예뻤다. 물들이 집 나갔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용한 가운데 밀물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쉼 없이 졸졸졸 소리 내며 밀려들었다. 느린 듯하면서도 빨랐다. 햇빛을 받아 밀물들은 반짝였다. 멀리 있는 물들은 바글바글 끓듯이 분주해보였다.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물은 환하게 빛나는 띠를 형성하며 달려오다 갯벌을 만나면 젖어들면서 사그라졌다. 뒤이어 다른 띠가 밀고 들어온다. 끝없이. 해는 빛을 쏟아내고 서서히 움직인다. 하루하루. 일 년 일 년. 시간은 인정사정없다.

  초승달 형태의 분오리 돈대에서는 동막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와 전망이 특별했다.     

  하늘, 갯벌, 마른 갈대숲, 저어새. 밀물, 햇빛, 사진을 못 찍었어도 보고 느낀 것이 마음에 많이 남을 것 같았다. 사진을 무조건 찍어두면 나중에 다시 볼 거라고 생각하며 마구 찍어대기도 한다. 그만큼 집중해거 못 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 불 수 있고 정확히 남는 장점이 있는데  고마운지도 모르고 찍어댔구나 싶었다. 집에 와서 볼펜으로 그렸던 것을 토대로 채식을 하며 그려보았다. 선두리 갯벌 풍경이 어른거렸다. 그날 같은 날씨와 분위기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여서 아쉬웠지만 기억에 새겨두었다.   

   

<강화나들길 8코스 : 초지진-황산도선착장-소황산 주차장-섬암교-동검도 입구-선두리5어판장-후애돈대-분오리돈대의 17.2키로의 구간, 강화도의 남쪽 구간을 해안 따라 걷는 코스>

     

동검도 입구에서 본 건너편 갯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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