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미천골
미천골 계곡
새벽 숲은 단아하고 청량했다. 미천골 휴양림 숙소에서 나와 숲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길목에 서있는 자작나무 한그루가 갓 목욕한 듯 말갛다. 고즈넉하기만 할 것 같은 숲 언저리에서 퍼지는 물소리에 이끌렸다. 나지막하고 연속적인 물소리에 하이 톤의 새소리가 간간히 얹혔다. 멀리 산허리에 구름이 엷게 솟아오르고 연푸른 하늘에 투명하고 흰 조각구름이 떠있다.
숲은 물을 품고 있다. 내리던 비는 흙 속에 방울방울 모였다가 서서히 넘쳐서 골을 만들고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다. 물은 굽이굽이 쉼 없이 길을 떠난다. 큼직하고 평평한 너럭바위를 만나면 쉬엄쉬엄 가다가 예리하고 가파른 돌을 만나면 곤두박질친다. 시간의 흐름 따라 연마되어 우묵하게 파인 홈에 고여 잠시 머물다 또 갈 길을 간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들이 계곡 옆에 모여든다. 물을 향해 뻗은 물푸레나무의 뿌리는 푸른빛으로 물들어간다. 흡수된 쪽빛 색소의 일부는 다시 몸 밖으로 배출되어 물을 정화시킨다. 공생이다. 계곡을 낀 넉넉한 숲은 가재와 작은 물고기와 도룡뇽을 불러들인다. 나뭇잎들은 연하고 풍성하다. 순하고 넒은 뽕나무 잎들은 벌레에게 몸을 내어주고 참나무 열매는 다람쥐의 먹거리가 된다. 우산대가 펼쳐진 듯 가지가 뻗은 층층나무의 이파리들이 온통 벌레 먹어 성글고 초라했다. 나무는 볼품없지만 자신을 내어주고도 회복해낼 생명력이 있을지 궁금했다.
사회생활하며 부대낌 속에서 남 탓을 하거나 속수무책이 되어 움츠러들었다. 다른 생각을 인정하기보다 불편함을 피하기만 했다. 퇴직을 하고도 여전히 쫓기고 남을 의식했다. 옛 동료들과 미천골 자연휴양림으로 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혼자 걷고 싶어 서둘러 숲으로 향했다. 깨어나는 숲은 햇살을 받아 환한 색으로 가득했다. 바위 위에 퍼져있는 부드러운 이끼는 따뜻한 노란색으로 빛났다. 연녹색 이파리들 사이로 빛 내림이 계곡으로 내려왔다. 먼 산의 발원지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서서히 흘러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낙하했다. 빗금을 긋는 순백의 자잘한 햇살이 부챗살처럼 계곡 위로 펼쳐졌다. 돌에 부딪혀 튀어나온 물에 빛 가루가 반사되어 반짝이며 부수어졌다. 물은 웅덩이에서 연녹색, 황톳빛으로 머물다가 서늘한 푸른빛으로 하강하고 검푸른 빛으로 바위를 휘돌아 내려갔다. 맑은 빛 속에서 쉼 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여러 잣대로 오락가락하던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몇 걸음을 옮겨 걸어 올라가니 이끼가 잔뜩 낀 돌 위에 勿忘草라는 글자가 희미했다. 표지판에는 물망초 바위의 전설이 적혀있었다. 병을 고치기 위해 한양에서 내려온 여인과 양양의 대장간에서 일하던 청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먼저 떠난 여인을 그리워하며 돌에다 정을 박아 정성스럽게 글자를 새기는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녀의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소원바위라는 명칭에 맞추어 있을 법한 전설이지만 진짜 이야기가 궁금했다. 오랜 세월 동안 남아있는 투박한 그 글씨에는 어떠한 애틋한 사연이 서려있을지. 무엇을 잊지 말라고 했을까. 그 곁을 지키던 나무들도 사라졌을 테고 간절했던 마음은 바위와 더불어 남아있다.
잠시 후 돌아와 보니 계곡의 빛 내림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햇빛은 부드럽게 분산되어 숲을 비추지만 설레던 방금 전의 앳 띄고 상큼한 분위기는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청춘의 소중함을 미처 느끼고 잡기도 전에 흘려버리듯 모든 것은 조금씩 달라졌다. 물도 종전의 물이 아니었다. 웃물에 자리를 내어주고 물길을 만들어가며 순간에 집중하는 지혜를 생각해본다.
혼자 걸었던 길을 일행 들과 함께 다시 걸었다. 해설사가 동행했다. 미천골이라는 이름은 ‘쌀 씻은 물이 흐른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지금은 폐사지로 남았지만 근처에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선림원지가 있었다. 그 시절 번성하던 절이었고 스님들이 천 명이상이어서 삼시세끼 쌀 씻은 쌀뜨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 미천(米川)골이라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숲은 유지되어왔지만 숲의 주인들은 조금씩 바뀌어간다. 나무뿌리는 물을 저장했다가 조금씩 밖으로 내보낸다. 물이 많이 스며든 젖은 흙은 뿌리를 흔들어 오래 버티어온 나무를 넘어뜨리기도 한다. 넘어진 나무에서 버섯이 자라고 민달팽이가 그 버섯을 갉아 먹는다. 넘어져 뿌리를 드러내고 누운 나무 옆에서 한편 새순은 돋고 덩굴은 자리를 잡는다. 생명체들은 생존과 번식에 진심이다. 뽕나무 잎들에는 작은 오디들이 달려있고 가래나무에는 호두와 비슷한 열매들이 맺혔다. 산수국의 가장자리에 핀 큰 꽃은 벌 나비를 유인하는 가짜 꽃이다. 가운데 자잘한 진짜 꽃들이 수정되면 가짜 꽃들은 뒤집혀서 아래를 본다. 역할을 다한 것이다. 다래의 흰색 나뭇잎도 꽃처럼 위장을 해서 수정을 위해 벌을 불러들인다. 수정이 끝나면 잎은 다시 엽록소로 채워지고 초록색으로 변해서 성장에 동참한다. 질경이들은 줄기 안에 질긴 심줄을 지니고 있어서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 작은 도룡뇽이 움직였다. 사람의 기척을 느꼈는지 땅에 바짝 엎드려서 동작을 멈추었다.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생존법일 것이다.
해설사가 벌레 먹은 층층나무를 보고 설명을 했다. 작년에 이파리들이 온통 황다리독나방에게 먹혀서 회복할 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우려가 무색하게 층층나무는 자생으로 극복을 하고 다시 잎이 무성해졌다. 나무는 줄기에 상처가 생기면 스르로 진액을 내어 자력으로 회생할 능력을 지닌다. 잎을 벌레에게 내주어도 맷집좋게 버티어낸다. 손해 볼까 몸을 사리기보다 넉넉하게 나누고도 버틸 수 있는 깜냥을 나무에게서 배운다. 시간의 흐름에 초조하기보다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배포를 숲에서 터득하고 싶다. 숲은 이야기를 걸어온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며 때로 활기차게 재잘대며.
물푸레 나무 조각에서 우러나오는 푸른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