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오모 박물관
두오모 통합권으로 박물관도 입장이 가능했다. 세례당의 동쪽문인 '천국의 문' 진품이 있다고 해서 기대가 됐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천국의 문 앞에 사람들이 많았다. 구약성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열 개의 부조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넓이 4.6미터에 높이 6미터 규모로 청동에 금도금이 된 진품은 크고 화려했다. 세례당의 동쪽에 있는 복제품을 봤을 때도 대단했지만 진품을 보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상 앞에서는 한참을 서있었다. 처참하게 마르고 남루한 몰골의 조각상을 보고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퀭하게 들어간 눈에 광대뼈가 드러난 얼굴과 말라비틀어진 다리 형태는 남자처럼 보였다. 넝쿨같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누더기 원피스를 입은 모습으로 겨우 여자라는 것이 드러났다. 기존의 막달라 마리아 이미지와는 다른 나무조각상을 대하고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낮은 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행의 길을 통해 고결한 정신으로 거듭난다는 관점을 고려해보니 숙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나텔로(1386~1466)는 미켈란젤로(1475~1564) 다비드 상 이전에 청동으로 다비드 상 을 만든 인물이다. 처음으로 나체상을 제작해 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에 영감을 준 조각가인 도나텔로가 제작했다는 막달라 마리아상이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미켈란젤로의 '반디니의 피에타‘에는 예수를 세 사람이 둘러싸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피에타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연민, 자비, 동정심을 의미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몸을 뒤에서 니코데모가 받치고, 왼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양팔로 예수의 등과 다리를 받치고 있었다. 성모마리아는 오른쪽에서 죽은 자신의 아들 예수를 온몸으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죽은 예수를 매장시켜주었던 니코데모와 향유를 들고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왔던 막달라 마리아에도 시선이 갔지만 예수의 아래에서 작고 연약한 몸으로 아들을 떠받들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덤덤한 듯한 그 표정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있을 것인가? 1550에서 1555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이니 미켈란젤로가 70대에 제작한 것이다. 노년에 이른 그가 생각한 모성이 반영되어 있는 듯했다. 6살에 어머니를 여읜 미켈란젤로가 평생 살아가면서 그리워하던 어머니에 대한 정이 담겨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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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1475년 카프라세에서 귀족이었던 부오나르티 가문에서 태어났다.
미켈란젤로의 첫 번째 피에타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1499) 마지막 피에타는 밀라노 소포르체스코 성 박물관 소장 론다니니의 피에타 (1552 ~1564 , 죽기 16일전까지 손을 떼지 못한 작품)
2. 거리에서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어 조금씩 쌀쌀해지니 야외테이블에 착석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줄고 있었다
피티 궁전을 가기위해 베키오 다리 방향으로 걸었다. 베키오 다리는 밤에 봤던 분위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많고 보석상 쇼윈도에 몰려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