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알프스, 밀양
밀양 박씨..밀양 아리랑..영화 '밀양'..
그렇게 밀양이라는 지역 이름을 들어왔지만 막상 가본 적은 없었다.
’경남 한 달 살이‘를 신청해서 남편과 밀양으로 4박5일 여행을 가게 됐다. 숙박비 일부를 지원받고 SNS에 여행기록을 올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아름다움을 알아가듯이 그럴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밀양은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어딜 가나 울창한 숲을 이룬 큰 산들의 흐름과 색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남알프스'라는 명칭이 어울렸다.
이팝나무로 유명한 ’위양지‘로 갔다. 신라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다. 5월 중순이라는 시기에는 하얀 꽃잎들이 물위로 가득 낙화한 상태였다. 여행 이틀째에는 얼음골 케이블카를 탔다. 도로를 지날 때 큰 산들이 대단해보였는데 그 산 쪽으로 들어와 아래 도로를 보고 있으니 신기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내친 김에 천황산 정상까지 가보기로 했다. 가까이 보이는 산들은 연녹색과 진녹색이 조화를 이루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신비로웠다. 높이 오를수록 뒤늦게 핀 연분홍 철쭉들이 많이 보였다. 정상 직전에는 너른 평지가 펼쳐졌다. 꼭대기에 이르자 눈앞으로 산들이 굽이굽이 둘러져있었다. 산들은 미묘한 농담차이로 골을 이루며 이어져 있었다. 마치 파도치듯 크고 작은 봉우리를 만들며 흐르는 것 같았다. 내려올 때는 숲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에 시선을 자주 빼앗겼다.
밀양에 대해서 잘 몰랐다. 영남루, 호박소, 표충사, 월연정 등 가 볼만한 곳이 많았다. 사명대사의 충혼을 추모하는 사찰인 표충사로 갔다. 웅장한 산을 배후에 두고 펼쳐진 형세가 격조 있었다. 삼층 석탑, 불두화, 연등이 어우러진 표충사 풍경은 평화로웠다. 유명세를 지닌 어느 사찰 못지않았다.
밀양 아리랑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했다. 오후 8시에 실내로 입장해 천정에 인공으로 표시된 88개의 별자리를 살펴봤다. 별의 수는 2000해라고하는 설명을 들었지만 가늠이 어려웠다. 야외 옥상에서 대형 망원경을 통해 별을 봤다. 구름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기대보다 별이 크게 보이지는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달이 크고 붉었다. 도시에서는 불빛과 건물로 작게 보인다. 밀양에서는 ’쟁반같이 둥근달‘이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갔다. 어둡고 웅장한 산과 대비해서 달이 크고 밝게 보였다.
숙소는 고택, ’향우당'(鄕遇堂)이었다. 활짝 핀 작약이 잘 가꾸어진 정감 있는 정원에서 이름처럼 고향을 만난 듯 푸근함이 느껴졌다. 방 두개와 주방, 화장실을 갖춘 사랑채는 편리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한옥의 장점이다. 친절한 주인 부부로부터 근처의 사과밭과 전원주택을 안내받아 좀 더 밀양에 대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밀양은 사과가 많이 나는 지역이다. 논보다는 사과나무 밭이 많았는데 ‘얼음골 사과’라는 명칭과 어울리게 사과 맛은 시원하면서도 달콤했다.
청정한 곳에서 안 좋은 일도 있었다. 둘째 날 천황산에서 내려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 아래 다리부분이 땅에 세게 닿으며 충격이 컸다. 현지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뼈에 금은 안 갔고 타박상이라고 했다. 약은 먹었지만 그 이후 무리해서 다녔고 다리는 퉁퉁 부었다.
서울에 와서 뒤늦게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더니 근육이 파열되었다고 했다. 부분마취하고 피부를 짼 후 뭉친 피를 뽑아낸 다음 깁스를 했다. 심을 박은 부분에서는 안 좋은 피와 진물이 계속 나왔다. 불편한 일주일을 보낸 후 다리와 발의 붓기는 빠지기 시작했다. 의사는 심을 뽑고 상처를 꿰매며 ‘큰 산은 넘은 것 같다’고 했다. ‘큰 산’이라는 말에서 밀양의 산들이 떠올랐다.
밀양의 산은 날렵하게 솟아있지는 않았지만 묵직하게 감싸주는 느낌이었다. 신중함을 생각해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