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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Jul 12. 2022

울트라 마린과 터키블루의 어울림

물빛 고운 제주 평대해변


  자다가 통증 때문에 깼다. 불을 켜보니 세시였다. 두 다리를 내려다 봤다. 왼쪽 발과 다리가 오른쪽 보다 1.5배는 부어있었다. 남편과 밀양 여행 중 산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현지 정형외과에 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뼈에 금간 것은 아니고 타박상이라 했다. 약을 먹고 금요일까지의  일정을 이어갔다.    

  

  넘어지고 나서는 그 다음 월요일에 시작되는 3박4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취소해야겠다 싶었다. 밀양에서 5일을 보내고 이틀 후에 또 떠난다는 것이 지나치다 싶은 생각도 있던 터였다. 마음 한편으로는 욕심이 났다. 여고 동창들과 한참부터 계획한 여행이었다. 전에도 한번 제주 여행을 취소한 적이 있어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2년 전 드로잉 여행은 선착순으로 신청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빨리 순번에 들고 싶어서 사이트에 일단 이름을 올렸는데 규정된 약식을 채우지 못했다고 뒤로 밀리면서 정원 안에 못 들어갔다. 비행기 표도 미리 예약해 놓은 상태였는데 아쉽게 못 갔다. 이번에는 친구들과 가는 트래킹여행이었지만 그림도 그릴 계획이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가자, 말자’를 수없이 반복했다. 항공사와 숙소에 전화해 보니 취소가 가능했다. 그래도 가서 쉬엄쉬엄 다니면 될 거 같기도 했다. 출발 직전에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일단 떠났다.     


   트래킹여행은 5060 여자들을 위해 쉴멍 놀멍 걷는다는 컨셉이었다. 한 친구가 봄가을로  다섯 번을 다녀온 상태였다. 분위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1인 1실을 사용한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첫날은 오전 7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공항에서 곧 도착한 친구와 합류했다. 오후에 도착하는 두 친구와는 별도로  비자림에 갔다. 친구가 돌아다니는 동안 앉아서 오래된 커다란 비자나무를 그렸다.      

  교직을 명퇴하고 3년 후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4년이 지났다.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다보니 글로 기록하고 그림까지 곁들이게 되었다. 알아갈수록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제주여행을 드로잉으로 기록한 책을 보면서 하나씩 따라서 그려보고 싶었다.     

  5060 트래킹 멤버들은 10명이었고 그중에 우리 친구들 네명이 연장자였다. 이틀간 이어지는 오름을 걷는 프로그램에는 빠졌다. 2만보를 걷는 게 무리여서 하루는 일행이 내려오는 절물 휴양림에서 기다리며 삼나무 숲을 그렸다. 또 하루는 일행과 별도로 움직이면서 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갔다. 제주버스노선 앱을 다운 받아 시간을 확인하며 움직였다. 해녀박물관 방향으로 가다가 평대리에서 내렸다. 책 속에서 본 평대해변을 그려보고 싶어서였다. 버스 정루장에서 바다 까지는 천천히 걸어 20여분 걸렸다. 오전 10시 정도에 도착한 바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크지 않은 해변에 물빛 고운 바다와 빨간 등대가 있는 풍경이 정겹게 펼쳐졌다. 스케치북 두 면을 이어서 가로가 긴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스케치를 끝내고 정자 그늘에서 좀 쉬었다. 점심으로 나누어준 주먹밥을 먹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먼저 앉았던 위치를 가늠해 찾아가서 채색을 시작했다.  연한 코발트 색 하늘에  펼쳐지는 새털구름을 종이에 담아보려 노력했다. 제주의 물 빛깔도 여러 빛으로 빛났다. 울트라 마린과 코발트 터퀴즈를 번갈아 가며 칠하면서 비숫하게 표현해 보려했다. 검은 갯바위의 색도 농담을 달리 하며 만들어 나갔다. 정오의 태양 아래  앉아서 자연의 색을 표현해보려 집중했다. 모래밭에 긴 바지를 반쯤 걷어 부치고 한 시간 여를 보내면서 뜨겁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강렬할 줄은 몰랐다.   

   

  왼쪽 다리의 피는 아래로 쏠리면서 발가락 쪽으로 내려가 검은 핏빛이었다. 발등도 부어있다.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는 빨갛게 햇빛에 덴 자국이 선명했다. 그림을 그려 보려했던 것이 욕심이었나? 그래도 그리고 싶었다. 수난을 당한 다리와 7점의 그림은 여행의 흔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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