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연미정
연미정
‘여행 작가 학교’를 다녔다. 30여명이 4개월 동안 사진촬영과 여행글쓰기를 배웠다. 수강생들은 연령과 직업이 다양했다. 공통점은 호기심과 열정이 많다는 거였다. 과정을 마치고 2018년 7월에 1박2일로 졸업여행을 갔다. 장소는 강화도였다. 연미정은 너른 잔디밭을 걸어 올라가 탁 트인 장소에 있었다.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 사이에 자리 잡은 연미정 주변은 한가로웠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서 자유롭게 걸었다. 흐린 날이어서 차분하고 좋았지만 나중에 다시 와서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다.
3년 후, 여름에 연미정을 찾아갔다. 김포공항역에서 골드라인 전철을 타고 구래 역에서 내렸다. 좌석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로 가서 지역버스로 갈아탔다. 평일 오전, 조해루(朝海樓)에서 월곶돈대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언덕길은 호젓했다. 중턱에 ‘황형택지’라는 비석이 있었다. 조선시대 무신이었던 황형의 옛 집터라는 표지였다. 황형은 중종 5년(1510년) 삼포왜란에서 왜적을 무찌른 후 함경남도 야인들의 반란을 진압했다. 조정에서 공을 높이 사서 연미정을 하사했다고 한다.
성곽을 따라 펼쳐진 잔디밭을 오르며 평화롭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돈대는 높직한 평지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축조한 포대니 마냥 평화로웠던 곳은 아니다. 연미정은 월곶 돈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사방으로 트여진 정자에서는 성벽 너머로 멀리 논과 산, 하늘과 강이 어우러진 풍경이 보였다. 연미정(燕尾亭)은 돈대 앞 임진강과 한강의 만나는 물길 모양이 제비꼬리처럼 갈라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강물은 남으로 염하로 연결되고 북으로는 조강을 통해 서해로 진출한다. 연미정 일대는 특출한 장소이니 여러 역사들을 품고 있다. 고려 23대왕인 고종 때는 학생들을 모아 면학하도록 한 기록이 있다. 정묘호란(1627년) 때는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다. 625전쟁 때는 정자의 기둥에 포탄이 맞아 파손되었고 전후에 중수되었다.
연미정을 바라본 방향에서 오른 쪽으로 수령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굵은 나무 본줄기에서 가지로 나뉘어 올라가는 부분에 강아지풀이 뿌리 내어 살고 있었다. 너그럽게 품어주는 나무의 연륜을 말하는 듯 했다. 왼쪽 나무는 2019년 태풍 링링에 의해 부러져 1미터 정도 밑둥만 남아있다. 먼저 왔을 때는 두 그루가 정자를 품어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사이 변화가 있었다.
월곶 돈대는 한 때 서울 인천 연백 등지로 교통할 수 있는 월곶 나루가 있던 곳이다. 서해에서 서울로 향하던 배가 연미정 아래에 닻을 내렸다가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있으니 북적거리던 나루터 모습은 옛이야기로 남았다. 눈앞에 보이는 강 건너가 바로 북한이다. 최북단에 서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났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상황들은 시대에 따라 변해간다. 평화롭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지되길 기원한다.
연미정에서 내려와 군초소를 지나 왼쪽으로 논길을 따라 걸었다. 선선해지면 연미정이 포함된 강화나들길 1코스를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조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