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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Jul 14. 2022

태고의 신비를 품은 곳

생명의 늪 우포


신문을 보다 가보고 싶은 곳을 발견하면 스크랩을 한다. ‘언젠가 가보겠지’ 하다 못 간 곳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우포늪이었다. '경남 한 달 살이'프로그램에 신청해서 3박4일간 창녕에 머물게 되어 우포늪을 갔다. 신문 스크랩을 10여년 이상 지녀왔던 보람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승용차로 5시간여 걸려 창녕 우포늪에 도착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걸어야할지 막연했지만  둘레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우포 생태관 부근에서 출발해 대대제방 쪽으로 간 후 전체적으로 우포늪을 한 바퀴 걸어 돌아오는 길이었다. 왼편으로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드넓은 우포늪이 펼쳐졌다. 목이 긴 하얀 새가 늪 위에 데칼코마니처럼 자기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오른 쪽 대대제방 너머로는 논들이 탁 트인 평야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사방이 시원하게 뚫리고 한가로운 곳이 있었던가?’

대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그 공간은 건물이나 사람이 거의 안 보이고 오직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인공의 구조물이 가득한 도시에 있었는데 오롯이 하늘과 물, 나무, 풀 들이 보이는 우포늪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오랜만에 노랑나비를 봤다. 보랏빛 엉겅퀴에 살짝 앉은 나비의 날개에 선명한 노란색을 바탕으로 자잘한 검은색 점무늬가 있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처럼 다가왔다.         

제방을 지나고 숲 탐방로를 걸었으며 출렁다리를 건넜다. 나루터에 편안하게 놓여 진 쪽배들을 봤다. 걸으며 제방의 이름이나 물가의 나무들과 새들의 종류는 잘 몰랐다. 그저 우포늪을 느낄 뿐이었다. 차차 알아 가면 될 것 같았다. 5월말의 우포늪은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루나무가 보이는 한적한 길을 따라 걸으니 주매제방이 나타났다. 제방 위에서는 탁 트인 우포(소벌)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목포(나무벌) 쪽으로 걸어갔다. 소목 주차장 방면으로 가서 목포를 왼쪽으로 보며  걸었다. 왕 버드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물에 잠겨 있었다. 물가의 키 큰 풀들은 바람과 물살에 의해 이리저리 휘청대고 있었다. 물 위의 부생 식물들은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걷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가끔 차들이 지나갔다. 계절 따라, 날씨와 시간대 따라 우포늪은 여러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비가 내린 아침에는 여유 있게 움직일까하다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물안개가 피어난  풍경을 마음속으로 작게나마 기대하며 남편과 주매제방 쪽으로 갔다. 빗줄기가 약하게 내리는 아침. 물안개가 많지는 않았지만 멀리 산과 산사이로 구름이 낀 풍경은 신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목포 쪽으로 갔고 나는 다른 쪽인 ‘숲 탐방 3길’방향으로 걸었다.       


인적이 없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아침,  숲길에는  뻐꾸기와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가 들렸다. 숲길을 지나 목포제방이 나오고 늪이 보였다. 이른 아침에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도 있었다. 첫날 본 쪽배가 있는 장소(징검다리 근처)를 찾아갔다. 그 곳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잠시 후 우포늪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오셔서 배를 타고 나루터 주변을 치우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노 젓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잠시 후 그 장소까지 온 남편과 합류했다.      


저녁에는 노을 지는 우포늪을 보려고 나갔다. 노을명소에 대한 정보는 없는 채로  주매 제방 쪽으로 갔다. 떠나오기 전에 ‘좀 더 조사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유스호스텔 관리하시는 분에게 나중에 물어보니 노을 보기 좋은 장소는 사지포 제방근처 사랑나무 있는 곳이라고 하셨다.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냥 소목나루 근처에서 하늘이 좀 붉어지는 것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마지막 날. 이른 아침에 우포늪을 걸으면 좋을 것 같아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우포늪 생태관에서 제 1전망대 방향으로  걷다가 우포늪 전망대로  올라갔다. 우포늪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새들에 대한 사진과 설명도 있었다.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왜가리, 백로 등. 80년대 67종만 기록되었던 우포늪의 조류는 생태보존지역 지정이후 늘어나 최근에는 20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근처에 '따오기 복원센터'도 있었다. 따오기는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상태였는데 2008년 중국에서 따오기 한 쌍을 들여와 10여년 노력하여 2019년 5월 따오기 야생방사를  했다고 한다. 우포늪 생태관에서는 우포늪의 기원과 생성, 생명체들, 사계의 풍경 등을 살펴보며 '자연과 사람의 공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경남형 한 달 살이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게 되어 우포늪을 여유 있게  볼 수 있어서 의미있었다. 숙박을 하면  아침과 저녁 풍경까지 볼 수 있어서 더욱 친밀감 드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포늪 주변을 걷다보면 여러 마을들이 자연 친화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자연과 멀어진 삶을 살아가는데 창녕 우포늪에서는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로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우포늪은 농경지로 개간을 하려 한 적도 있었고 오염되기도 했었다. 생태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관리와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다행이고 감사하다.        


대낮의 햇볕이 강해서 밖에 잘 안 나가게 되는 한여름,  팜플렛 사진들을 보며 우포늪의 여름을 상상해 본다. 늪에는 마름과 개구리밥이 초록 융단처럼 펼쳐져 있고 한편에는 자색의 가시연꽃 들이 군락을 이루어 펼쳐지는 풍경. 여름밤 우포를 환하게 밝힐 반딧불이 들의 축제. 고속버스를 타고 당장 달려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가을이면 갈대가 있는 풍경을, 겨울이면 기러기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는 풍경을 상상하며 계절마다 우포늪을 생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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