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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하 Mar 05. 2016

흠 있는 마음

이터널 선샤인

 항상 의문스러웠다. 왜 이 아름답기 보다는 처연한 이야기의 제목이 원 제목을 그대로 해석하지 않은 ‘영원한 빛(eternal sunshine)’인지. 원제목은 ‘흠 없는 마음의 영원한 빛(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다.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을 망각했음에도 매번 클레멘타인을 기억하는 듯한 짐 캐리(조엘)의 그 슬픈 눈을. 그리고 어떻게든 조엘을 사랑했던 케이트 윈슬렛(클레멘타인)의 변함없는 천진난만함을. 똑같이 기억을 지웠음에도, 둘의 모습은 달랐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많은 연인들의 관계에 영향을 주었다. 막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연인에게는 서로 상처주지 말자는 교훈을,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에게는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헤어진 연인에게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다른 이유로 이별했다. 이전과 같이 별 시덥잖은 이유로. 아직까지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서로를 더 오래, 굳건히 사랑한 연인을 본 적이 없다. 

 대개, 사귈 때의 설렘보다는 이별 뒤의 아련함이 감정의 크기가 더 크다. 내일 그 혹은 그녀를 만날 기쁨에, 두근거려서 잠 못 이루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행복한 내일의 순간을 그리며, 혼자 미소 지으며 뒤척이다 잠드는게 보통이다. 오늘까지 봤던 상대를 내일부터 보지 못하게 될 때는 좀 다르다. 아련함에 눈이 감기지 않는다. 덤덤히 이별을 받아들였지만, 그 순간부터 상대의 부재에 공허함을 느낀다. 내가 왜 호구같이 모든것들을 퍼주었을까 혹은 왜 그 때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은 시간에 비례해 거대해져만 간다. 밤마다 그 혹은 그녀와의 시간을 곱씹어보다 식은땀을 흘리고, 그대로 몇 시간이 지나면 온몸이 흐물거린다. 다음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재빨리 다른 사람을 만나봐도, 나아지지가 않는다. 그 사람과 닮은 사람을 만나도 도무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다시 그 혹은 그녀에게 돌아가는 것은, 이 감정의 연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재빨리 상대를 망각하는게 가장 속편한 방법이겠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우리는 망각을 택할 수 없다. 설사 기억을 지우고 운명적인 재회를 한다 하더라도, 끊겼다 이어진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에 대한 기억을 망각하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변한 것이라고는 클레멘타인의 머리색뿐이었다. 헤어진 이유는 매번 똑같았다. 이별에 다다를때쯤 누군가가 별 생각 없이 한 마디를 내뱉고, 둘은 울고 불며 싸운다. 명확한 이유 따위는 애초에 없다. 

 현실에서, 그러니까 기억을 지울 수 없는 상태에서 다시 만난 이들은 영화의 그들과 달리 기억으로 인해 서로를 더 존중할수 있다고 믿는다. 헤어짐을 겪고 서로를 그리워하다 만났으니, 이전보다는더 감정의 깊이가 깊은 것만 같다. 풀어졌던 실타래를 다시 모아 너는 씨줄이 되고 나는 날줄이 되어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짤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가 헤어졌다는 사실이 기억에서 희미해질 때 쯤, 누군가 무심코 줄을 당겨 추억은 헝클어진다. 이전보다 더 엉망진창이다. 아마  둘은 깨달을 것이다. 아련함에 몸서리치더라도 그 순간을 견디며 서로를 지워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Eternal sunshine이라는 제목은, 다시 만난 이들에게‘영원한 빛’이 함께 할 것이라는 속 편한 위로이자 축복이아니다.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흠 없는 마음이 있어야만, 빛은 영원하다. 클레멘타인이 매번 조엘을 천진난만한 모습 그대로대할 수 있었던 건, 헤어질 때만큼은 그의 존재를 말끔히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련함에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조엘이 사랑한 그녀의 흠 없는 순수함은 매번 같은 모습으로 빛났다. 반면, 조엘은 망각을 거부했다. 그는 어떻게든 아련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자신의 일부에 남겨놓고자 했다. 결국 기억을 지웠음에도, 그의 무의식 속에는 그녀가 남아있다. 아마 클레멘타인을 쳐다보던짐 캐리(조엘)의 눈이 그토록 처연하고 슬펐던 것은, 예정된 이별을 직감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이토록 비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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