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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하 Mar 05. 2016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아, 사랑이야

 대개 자신을 ‘어른’이라고생각하는 나이 든 이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산다. 그 중에서도, 관계라는것을 더 많이, 더 깊이 경험해본 이일수록 더 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물론, 운이 좋아 원하는 관계만을 경험해본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건 뻔한 인생의 교훈을 담은 책의 한 페이지에 등장할 법한 내용처럼, 맛있는 비스켓과 맛없는 비스켓이 동시에 들어있는 통 속에서 여태껏 맛있는 비스켓만 꺼내 먹어본 것과 다를 바 없으므로. 언젠가는 맛없는 비스켓을 먹게 된다. 아무튼, 가족, 친구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받았던 상처는 아물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남아있기 마련이다. 상처는 그저 방치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은 그 존재조차 망각한다. 삶은 닭가슴살 같이 퍽퍽한 하루를 살아가며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고 아파할 만한 시간이 없다. 문득 누군가를 대하다 흉터를 발견하더라도, 과거의 영광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런 상처가 있었으나 지금은 멀쩡히 잘 산다고. 그렇게 우리는 남과 어울려 묵묵히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어른이라 믿는다.자기 삶을 움켜쥐고 어떻게든 살아나가면, 그것이 바로 어른이라 믿는다. 그러나 착각하지는 말자. 상처는 아직 다 나은 게 아니다. 아직 기억의 쇼생크에서 탈출하지 못해 어른이 되지 못한 이는, 생각보다 많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겉으로는 멀쩡한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장재열은 잘 나가는 삼십 대 초반의 작가이다. 번듯한 외모에, 돈도 많다.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닮은 강우라는 아이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지해수는 장재열과 비슷한 나이의 정신과 의사이다. 엄마랑은 자주 싸우지만, 식물인간에 가까운 아버지를 살뜰히 챙긴다. 냉소적이지만, 통찰력 있는 의사이다. 능글맞은 남주인공과 까칠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늘 그렇듯이, 지해수는 장재열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미덕은, 둘이 서로를 만나고 기억의 쇼생크를 탈출해 진짜배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존재한다. 장재열은 아버지에게 어릴 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 아버지의 구타를 피해 도망 간 화장실에서 잠을 자던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그의 곁에 있는 강우는 세상에 실존하는 이가 아니다. 강우는 그가 과거를 돌아보며 무의식중에 만들어낸, 어린 시절의 초상이다. 장재열은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존재하지 않는 강우를 걱정하며 괴로워한다. 지해수는 엄마의 불륜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이 공부하는 데 내연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보고도 못 본 척 한다. 그래도 아빠를 생각하면 엄마가 밉다. 그 날부터 지해수는 엄마에게 냉소적이다. 그 날부터 지해수는 남자를 믿지 않으며, 사랑을 부정한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자신의 상처를 말할 수 있으므로, 둘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간다.  지해수는 강우가 환영임을 알게 된다. 처음 그 사실을 안 순간, 자신의 상처에 늘 그렇게 대처했듯이 그녀는 그의 상처를 덮고자 한다. 그녀는 그가 상처받은 상태라는 것조차 부인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사랑하는 이가 상처 받지 않은 이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상처마저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녀는 그의 상처가 덮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상처를 끄집어내고 그 상처마저 껴안는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 또한 드러낸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과거에서 벗어났음을 체감한다. 그녀는 그를 진실로 사랑한다. 장재열 역시 지해수의 도움으로 강우의 존재를 지운다. 상처투성이인 강우의 발에 새 신발을 신겨주며, 자신의 아픈 과거를 떠나 보낸다. 퀭한 몰골로,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뻔한 결말이지만 둘은 서로를 더 사랑하고 아낀다. 

 흔한 해피엔딩이지만, 그 과정이 흔치 않은 것이라 둘의 사랑은 의미 있다. 지우고픈 기억에 마주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권을 가진다. 아픔과 불편함을 수용하든, 도망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대개, 후자를 택한다. 회피는 아픈 과거를 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렇게 지나쳤던 기억이 보이지 않아 희미해질 무렵, 우리는 상처를 극복했다 믿고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힘든 과거가 만족스런 현재를 위한 필수 조건인 것 인양 포장한다. 자신의 흑역사를 잘 포장해 덤덤히 타인에게 풀어놓는 이는 ‘성숙한 어른’이라는 훈장을 달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나친 과거를 들춰보고 대면하지 않는다면, 어른이 될 수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움켜쥐고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닌, 흑역사마저 껴안고 그 기억을 현재에서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기억을 덮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번쯤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장재열이 지해수를 만나고, 지해수가 장재열을 만났듯 우리도 그 순간을 언젠간 맞이한다. 그 기회가 어떤 형태의 것일지는 알 수 없다. 오로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그 기회의 존재뿐이다.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한, 지금 당장은 어른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기억하기 싫어 잊었던 것을 복기하며 씁쓸함을 삼켜내는 것이다.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가올 상처를 견뎌 낼 수 있다. 그제서야 우리는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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