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다니다 스타트업 가니까 어때?

적당히 살아가는 대기업 이후 ㅇㅇㅇㅇ의 이야기 - 5

by 꿀잠

소제목에서 스타트업이라는 글자를 지워봤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지금 이 회사가 '스타트업'이라 불리기는 상당히 모호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금으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다져가면서 아직 BEP도 맞추지 못한 스타트업이 맞긴 하지만, 매출액이나 직원 규모적인 면에서는 웬만한 중소기업 이상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스타트업'의 면들을 가지고 있진 않은 것 같다. 처음에 밝힌 것처럼 직접 경험해 본 짧다면 짧은 경력으로 써내려 가는 것이기에 혹 관련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너무 이 글의 내용에만 갇히지는 않는 것을 추천드린다.




이번에 다룰 두 기업 형태의 극단적인 차이점은 회사의 '확신'과 신입사원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대기업은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자신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신입사원에게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 천천히 자신들의 문화에 맞춘 그 회사의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스타트업은 자신들의 신념에는 '확신'이 있지만 (특히 임원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스타트업을 선택할 때 그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점이라 생각한다.) 일하는 방식과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는 검증된 역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큰 기대가 있으며, 그들이 회사의 당장이 아닌 미래를 위해서 능동적으로 회사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4. 대기업에서는 내가 이런 거나 하려고 그렇게 힘들게 들어왔나? 싶고, 스타트업에서는 내가 이런 거까지 해도 되나? 싶다.


이번 항목은 가장 많은 대기업, 스타트업에 해당되는 내용일 것 같다. 이 역시 대기업, 스타트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차이점이기 때문이다.


* 대기업 : 강조하지 않더라도 요즘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대기업에 취직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무리 경쟁률이 낮더라도 1차 서류 단계부터 생각하면 경쟁률은 최소 몇백대 1을 기록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힘들게 입사를 하고 나면, 면접 때는 하늘 같던 회사 선배 및 임원들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라는 동경을 가지게 되면서 연수에서 회사의 잘 나가는 이야기만 주입받고 나면 나도 그 찬란한 업적에 일조한 것 같고 막 은근히 어깨가 올라가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부푼 꿈과 하늘을 찌르던 자존감이 박살 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보통 신입사원들은 3 ~ 6개월 차에 한번쯤 흔히 말하는 아주 큰 현타를 맞이하게 되는 데, 그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치열하게 준비하고 전형들을 거쳐온 게 무색할 정도로 별 거 아닌 것 같은 내 업무들

2) 그런 일 조차 잘 못해서 허구한 날 사수에게 혼나고 있는 내 모습

물론 직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한 번쯤 '중요한 미팅에서 열심히 준비한 PPT를 전문적인 업계 용어를 써가면서 매우 성공적으로 발표하는 본인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중요한 건을 하나 해내고 선배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본인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는 모습.

그렇지만 회사는 신입사원에게 그런 일을 기대도 하지 않을뿐더러 맡기지도 않는다. 길다면 길 수 있는 1년을 보통 적응기간으로 두고, 회사의 업무 사이클을 알려주고 결재, 보고 체계 등을 포함한 그 회사만의 업무 프로세스를 알려준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매우 자잘 자잘하고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하나같이 엄청 복잡하고 디테일하게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 일들이 그렇게 처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그냥 모두가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런 일들을 반복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커리어적인 만족감은커녕,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할 수 있는 일들인데, 그렇게 힘들게 들어온 회사에서 하는 일이 이런 것들인가..?' 하는 허무감이 느껴진다. 그런 허무감이 느껴질 때쯤 그런 기초적인 것들에서 실수를 하고, 사수에게 혼나는 날이면 이런 것조차 깜빡하고 챙기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마저 느끼게 된다.

물론 계속 이런 생각들을 품고 살진 않으며, 보통 한 회계연도의 사이클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사라지며 새로운 업무를 받는다.


* 스타트업 : 대기업과 완전 반대다. 보통의 스타트업들은 (이례적인 기술 혹은 투자로 주목을 받지 않은) 어느 정도의 인력난을 겪고 있어서 정성을 들인 자소서와 면접 1 ~2번이면 무난하게 입사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냥 지원하면 다 합격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스타트업에 입사하고 나면 또 역시 마찬가지로 2가지 이유로 현타가 온다.

1) 지금까지 이렇게 체계가 없이 일을 해왔다고?

2) 난 이제 입사한 지 1 달인데 이런 일을 나에게 맡긴다고?

당연히 신입사원은 입사 이후 어느 정도는 회사 및 업계에 대한 적응 기간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며 크리에이티브하고 열정 넘치는 사수가 친절히 자신을 이끌어 주길 기대한다. 많은 스타트업 입사자들이 그렇지 못한 현실 때문에 놀라기 마련인데, 사실 스타트업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다. 열악한 자금과 인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다듬고 정착시키기 바쁘기 때문에 각 업무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 여력도 없으며, 사실 매우 자주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며 조직을 개편하기 때문에 특정 프로세스에 대한 매뉴얼을 만드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래서 신입사원은 간략히 회사의 전반적인 보고체계 및 툴에 대한 사용방법만 약 1주에 걸쳐 교육받고 바로 실무에 투입된다. 바로 책임이 주어지는 실무에 투입된다는 점은 개인 성향에 따라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극히 나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고려해 본 사람이라면 본인이 어느 정도 크리에이티브하고 무언가 없던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설렘이 기본적으로 있는 사람이겠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몰아치는 파도에 직접 맞닥드리는 것과 멀리서 감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두서없이 늘어놨지만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과 오해에 대해서 다루고 싶었다.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에 입사하길 희망하면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창의적인 일과 엄청난 복지만을 꿈꾸면 100% 본인의 손해일뿐이다. 차라리 저 유명한 창고에서 시작한 아마존의 창립 초기 사진을 떠올리는 것이 대부분의 스타트업에 훨씬 가까운 모습이다. '스타트업'의 혁신을 기대한다면 입사하고자 하는 사람도 보통의 상식과 규격에서 벗어나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수적일 것이다.

스타트업의 무질서함과 막중하게 주어지는 책임이 당장에는 어깨를 짓누르겠지만, 그 무질서함 속에서 세상에 없던 효율성을 개발하고 그 무거운 책임 속에서 성과를 이뤄가는 것 또한 꽤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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