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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Sep 05. 2020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소설

사람에 대한 솔직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고백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작년에 꽤나 큰 인기를 끌었던 “쇼코의 미소”를 들어는 봤을 것이다. 그때 느꼈던 ‘최은영’이라는 작가는 한 번쯤은 겪어보거나 들어봤을 법한 다양한 관계에서 사람들이 받는 상처와 위로를 덤덤하게, 그렇지만 무책임하지 않게 다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인 이야기가 기억나진 않더라도 ‘최은영’이라는 작가의 글에서 은은한 위로와 공감을 느꼈다는 것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느낌.


    이번 소설에는 ‘그 여름’, ‘601,602’, ‘지나가는 밤’,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라는 6개의 짧은 소설과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중편 소설을 담고 있다. 지난 소설집과의 차이점이라면 이번 소설집은 사회적인 이슈들과는 다소 무관하게,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가 아닌 청년층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소설집에서는 몇몇 이야기들이 세대 간의 갈등 혹은 특정 사회적 사건을 다루고 있었기에 다소 공감이 어려웠다면 이번 이야기들이 훨씬 공감하고 생각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일 감명 깊었던 소설은 ‘아치디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하민’과 브라질 청년 ‘랄도’의 이야기였다. 아일랜드의 한 시골에서 우연의 연속으로 만난 남녀가 로맨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나라에서의 삶을 서로에게 이야기하며 이해할 수 없는 각자의 문화에도 큰 위로를 얻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이야기도 한국인 여성이 아닌 브라질 청년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것 또한 신선했다. 

    글 중 ‘하민’의 한 마디에 이어진 ‘랄도’의 독백이 인상적이었다. ‘하민’은 간호사로 살아온 한국에서의 삶이 힘들었다고, 그렇지만 자신은 열심히 살았다는 우리는 너무나 흔하게 듣던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그 말을 들은 브라질 사람 ‘랄도’는 삶을 “열심히(hard)” 살았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열심히는 보통 어떤 것을 노력해서 얻기 위함의 행위인데 (hardworking같이), 브라질인의 시선에서는 이미 주어진 삶을 그렇게 사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을 하나의 미덕처럼 생각하던 한국인으로서 상당히 충격적인 시선이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집에만 있는 생활을 하면서 의도치 않게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다들 물어보면 자유시간에 나가질 못하니 집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본인의 취향,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예전부터 나왔지만 사실상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은 최근에나 가능해진 것 같다. 드라마나 게임도 한 두 달이지 자유 시간은 많아졌는데 이 자유 시간을 도통 어떻게 써야 보람을 느끼고 재밌을지 모르겠는 것이다. 그만큼 본인에 대한 관찰이 부족했던 우리들인데, 요즘과 같은 때 ‘열심히’ 사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되면 좋을 것 같다.




    조금은 오만하게,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 생각이 있었다. 아래 문장처럼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실망을 줄 뿐이니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 그렇게 조금씩 진심이 없어지고, 간혹 찾아오는 진짜 감정조차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나.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사회인으로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 위로하고 있었던 생각.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 '모래로 지은 집' -


    나에게는 나약함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람은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보다도 더 큰 용기를 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용기를 내가 평가할 자격은 더더욱이 없고. 상대의 용기에 실망을 느낀 내 모습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큰 실망을 주고 이렇게 그냥 서로에게 벽만 생기는 악순환이랄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저 사람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일 뿐. 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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