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잠 Feb 26. 2019

ㅌㅅ 후 제주도의 한 달 #5

5일 차 - 서쪽하늘과 다시 시작


 5일. 벌써 5일이 지났다.

 1달 중에 5일이라 하면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지만, 아직도 조바심을 잊지 못한 나로서는 벌써부터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불안하기 시작했다. 오기 전에야 그저 쿨한 척하면서 그냥 제주도에서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다 오려고 한다 했다지만, 결국에 나는 서울로 올라갈 사람이었다. 여기서의 한 달이 얼마나 좋았던지 간에 어차피 돌아갈 나로서는 이 한 달의 시간이 어떤 방향으로든 이 이후의 시간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저 하루하루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일까 한 달이란.


 오늘은 여자 친구가 돌아가는 날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녀는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난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그녀는 회사를 위해 서울로 가야 하고 취업 준비조차 하지 않는 나는 일요일=월요일이 된 상태다. 우리들의 이런저런 마음과는 반대로 하늘은 어제, 그제와는 전혀 반대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우리는 어제 가지 못한 제주도의 북서쪽, 애월과 협재 등의 해안가에 펼쳐진 핫한 카페들로 유명한 곳으로 향했다. 점심으로 찜한 곳은 "돌담 너머 바다"라는 애월보다 조금 밑에 있는 해안가에 위치한 이탈리안 식당이다. 

 

"돌담 너머 바다"를 찾아가는 길에 그냥 멈출 수가 없던 푸른 해변

 제주 서쪽의 도로는 바다 바로 옆에 딱 붙은 해안도로도 있지만 큰 도로도 바다가 훤히 다 보일 정도로 해안과 붙어있다. 때문에 4차선의 대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차들이 상당히 느릿느릿하게 가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수심에 따라 영롱한 색깔을 뽐내는 바닷가, 짠내 없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그 자체로 정화였다.

 

"돌담너머바다" 바로 앞 해안가와 그렇게 맛있다는 문어...파스타?

"돌담 너머 바다"는 사장님 마음대로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격대는 메뉴당 약 17,000원인데 들어간 재료들을 보면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로 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모든 메뉴에 사진처럼 아낌없이 전복들을 넣어주시는데, 미안하지만 어제 먹은 "만월당"보다 조금 낫다는 생각이 든다. 맛보다는 어쩌면 바로 옆에 보이는 바닷가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가게에 테이블이 그리 많지 않아서 예약은 하고 가는 게 좋을 듯하다.


종합 평점: ★★★★★



 원래 다음 목적지는 핫하디 핫한 "하이엔드 제주"였지만, 가는 길 바로 옆에 "협재 해변"이 있어 잠시 들리기로 했다. 나는 제주도에 몇 번 오면서 꼭 들렸던 곳이라 잘 아는 곳이었지만,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꼭 봐야 할 해변이다. 제주의 바다 색깔은 어딜 가다 에메랄드, 깊은 파랑 등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나 "협재 해변"의 바닷가는 특이하게도 어디의 바다보다도 더욱 고급진 에메랄드를 가지고 있다. 좁지만 고운 모래사장 또한 협재 해변만의 매력 포인트다.

 

 

하루종일 앉아만 있어도 좋을 협재해변


종합 평점: ★★★★★



 다시 제주시로 올라가는 길, 제주 대표 카페로 자리 잡은 "하이엔드 제주"로 향했다. 이미 제주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카페촌인 만큼 입구부터 좁은 길에 많은 차량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곳은 햇살이 비치는 바다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약 10여 개의 힙한 카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항시 방문하는 곳이다. 그 모든 카페들이 모두 유명하지만, 특히나 GD 카페로 한 때 유명했던 '몽상 드 애월' (지금은 GD가 다시 팔았다고 한다.)와 우리가 방문한 "하이엔드 제주"가 특히 힙한 곳이다.


"하이엔드 제주"는 총 3층에 옥상에도 더 높이 갈 수 있는 루프탑이 따로 있어서 근처 카페 중에서도 최상의 전망을 자랑한다.

건물 자체가 완공된 지 안돼서 매우 깔끔하고, 내부가 엄청 넓다. 다만, 그 내부에 비해 주차장은 매우 협소하니, 차량이 있으신 분들은 들어가기 전까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제주 유명 카페들이 그러하듯 음료와 디저트는 모두 가격이 상당하지만, 앉기만 해도 졸음이 살살 쏟아지는 편한 좌석들이 많아서 그냥 가서 몇 시간 눌러앉아 있기엔 최적의 장소다.


종합 평점: ★★★★★



 3층 야외석에 앉아 해가 지는 것과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여자 친구의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여자 친구의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동문 재래시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렇게 옛날부터 유명 하디 유명한 동문 시장이지만 아직도 방문객 편의는 많이 부족한 듯하다. 특히 공영주차장은 매우 협소하고 출구와 입구가 같아서 차량이 조금만 몰려도 엄청난 교통 체증이 발생한다. 겨우겨우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고, 허겁지겁 동문 시장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게살 그라탱과 딱새우 회를 먹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주차할 때는 그렇게 불편하다고 다시는 안 온다고 다짐을 했것만, 맛있는 것들로 배를 채우자 또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 여행을 다니면서 서울을 훨씬 웃도는 물가에 겁이 났었는데, 그와는 완전 반대인 시장 물가에 감동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전히, 주말 저녁 등 사람이 몰릴 때는 웬만하면 방문하지 않을 생각이다.


종합 평점: ★★★★


 

 그렇게 여자 친구는 8시 20분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갔다. 바이바이하고 집으로 차를 돌리는 데 처음 느끼는 감정이 들었다. 여자 친구가 있던 3박 4일 동안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문득문득 들었었지만 막상 여자 친구가 떠난 지금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갑자기 혼자가 돼버린 느낌과 3박 4일 만에 옆에 누가 있다는 것이 당연하게 익숙해졌다는 것이 조금 무섭다는 느낌. 처음에는 단순하게 제주도에 내가 한 달 살이를 하는 김에 여자 친구도 와서 같이 노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확실히 서로를 더욱 많이 알게 된 시간이었다. 


 제주 한 달 살이라기보다는 바쁘게 관광을 다녔던 지난 4일을 뒤로하고, 다시 나는 또 나만의 일상을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 ㅌㅅ후 제주도의 한 달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