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에 눈을 뜬다.
오늘도 어제 약속했던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이쯤되면 이것이 나와의 약속인지 아니면 내가 정한 허망한 목표인지 의문이 든다.
힘겹게 일으킨 몸은 내 몸 같지가 않다.
도통 힘이 들어가지 않고, 차가워진 공기에 살을 내놓기가 두렵기만 하다.
게절이 온다. 겨울이 온다.
그 말은 곧 해를 넘길 때까지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올해 무엇을 했던가.
새해에 다짐했던 것들을 떠올려본다.
부질없이 무너져버린 목표라는 이름의 허울들.
그렇게 무너져버린 것들이 지금 나를 뭉개고 있다.
작년의 것들과 재작년의 것들과, 또 그 이전의 것들이 나를 누르고 있다.
이 많은 것들을 모두 짊어지고 다음 해를 살아야 한다.
때로는 아니, 항상 그것은 버겁기만 하다.
내려놓고 싶고, 굳이 짊어져야 하나 싶은데
또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는 게 과연 나의 삶인가 하는 의문에
마치 소중한 추억이라도 되는 듯 그것들을 모두 짊어진 채 기다린다.
나는 내일의 나를 또 다시 마중나와 반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