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by Ahchacha, 홍차 (feat.연우제다)
지난주 금요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센 비가 한차례 쏟아지다 ‘어제 무슨 일 있었나?’ 싶을 만큼 화창한 토요일이 다음 날을 반겨주었다. 그 반가운 마음을 잇따라 다우들과 함께 하동 차밭으로 향한다.
갑자기 하동 차밭이라, 별안간 이곳을 방문하게 된 연유로는 일상에서 여유로이 차를 마시다 떠오른 생각에서 시작된다.
'차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농가에서는 어떻게 찻잎을 따고 덖을까?'
언제든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차 한 잔 뒤에 숨어 있는 수고와 정성이 알고 싶어졌다. 분명 차나무는 한 종류인데 방식에 따라 녹차가 되기도, 백차가 되기도, 홍차가 되기도 하니 제다 과정이 궁금해진 것이다.
마침 5월은 햇차 시즌이기도 하고 다양한 차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해서 방문을 고심하던 찰나에 모임에서 제다 체험을 진행한다고 하여 일말의 고민 없이 참여 버튼을 눌렀다.
서울에서 경상남도 하동까지 장장 5시간이란 먼 거리를 달렸다. 그럼에도 푸릇한 전경과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니 차밭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참 이상하지. 자연에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놓이는지 모르겠다. 애쓰는 내가 보이지 않고 예민하고 날이 선 사람도 그 누구보다 유해진다. 어릴 적부터 애어른 같고 차분하단 말을 자주 들어왔는데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모습과 유치한 모습이 절로 나온다.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일까? 결국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내 모습이겠지만, 그럼에도 후자의 모습으로 살고싶다. 나는 늘 단단해지기보다 말랑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좋은 순간엔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상황이 좋지 않을 때야 말로 진정 내 모습이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 찰나의 짜증과 욱함을 어떻게 표출할지는 결국 본인이 정하기 나름인데, 아직 그 찰나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 걸 보면 조금 더 인고의 수련이 필요할 듯하다. (어쩌다 보니 자아성찰의 기록이 됐다.)
농가에 도착 후 제다 체험 전, 간단히 짐을 풀고 나오니 사장님께서 따뜻한 차 한잔을 우려 주셨다. 연우제다에서 직접 만든 녹차인데 무려 우전이다.
우전이란? 雨(비 우), 前(앞 전)의 한자가 사용되며, 비 오기 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매년 4월 중순경, 24 절기 곡우 전에 잎차를 따고 그 보송한 솜털의 어린잎을 300도 고온에서 여러 번 덖고, 비벼서 고급 녹차를 만든다.
수색은 맑은 연초록에 가깝고, 갓 덖은 듯한 고소함과 약간의 해조류 향이 났으며, 비교적 떫고 씁쓸함이 적은데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되게 청순한 느낌이 든달까.
" 사장님, 차가 너무 맛있어요. "
" 감사합니다. 이번엔 다른 차 우려 드릴게요. "
다음은 홍차다. 홍차 중에서도 세홍.
세홍이란? 細(가늘 세), 紅(붉은 홍)의 한자가 사용되며, 비가 내린 이후 매년 4월 말 ~ 5월 초경 채취를 시작한다. 녹차와 달리 산화 과정을 거치며, 조금 더 숙성시켰을 때 홍차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세홍은 이번에 처음 마시는데 시중에 맛본 홍차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나서 놀랐다. 마치 차 수업에서 맛본 고급 정산소종처럼 말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아니, 과장 없이 실로 감동의 맛 그 자체다.
저는 분명 수줍음을 겸비한 I형인간인데요, 다실에서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 떨어가며 다우 분들에게 세홍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답니다. 한국 차가 이리도 맛있는데 사장님께 세홍을 조금 더 홍보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니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만들어 보겠다고 하셨다.
약간의 조청 맛이 느껴질 만큼 달큰함과 고소함이 어우러져 처음엔 황차인가 싶었는데 한잔 다 비우고 보니 홍차다운 깊은 맛으로 마무리된다. 어떠한 첨가물이나 가향 없이 순수 잎차로서, 블렌딩티와 같은 다양함을 연출하니 그저 감동의 맛이라 표현할 수밖에.
차를 마시면서 농가 사장님의 기본적인 이론 수업을 듣고, 본격적으로 외부 산지로 나가 채엽을 시작한다.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 섬진강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하동의 차밭. 이 드넓은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과 마음이 개안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 우리는 약 1시간 동안 1kg를 목표로 찻잎을 따기로 한다. 고로 10명이서 10g 정도는 수확해야 한 사람당 겨우 2~3번 우려먹을 수 있다는 것. 자자, 전우들이여 힘내보자고.
참고로, 차밭에선 어떤 향도 닿으면 안 돼서 향수 및 화장은 물론 선크림도 피해야 한다. 땡볕 아래에서 일을 해야 하니 긴 팔, 챙이 넓은 모자 그리고 팔토시 혹은 쿨토시를 꼭 착용해 준다.
전우들과(?)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어린잎이 보이는 찻잎을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 오로지 찻잎에 집중하다 보니 잡념은 사라지고 어째 반복적인 노동의 행위에 점점 더 길들여졌다. 그러다 잠시 고개를 들어 차밭 풍경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무더운 날이었지만 더움도 잊은 채, 태어나 처음으로 만들 차를 생각하며 열심히 잎차를 땄다.
우리가 채엽한 잎차는 홍차를, 체험용으로 미리 채엽된 잎차는 녹차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녹차는 산화가 되지 않도록 여러 번 덖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마솥에 280~300도 고온으로 약 5분간 살청 (덖음) → 유념 (비비기) → 다시 또 200~220도로 6분간 살청 → 유념 → 0~120도로 90분간 살청 → 건조하여 비로소 녹차가 탄생이 된다.
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임을, 잎차 한 줄기조차 소중히 아껴야겠단 교훈을 얻는다. 사실 차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마시는 커피, 와인 등등. 세상은 무엇 하나 쉽게 만들어지고, 얻어지는 게 없음을 깨달은 것 까지도 이 교훈에 내포되어 있다.
이어서 홍차를 만든다. 홍차는 녹차와 달리 산화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데 채엽 후 알맞은 온도로 안에서 한번, 밖에서 한번 위조 (시들리기) → 시들린 찻잎을 유념 → 적당한 온/습도를 유지하며 산화를 일으키고 → 건조 → 가마솥에 덖어주어 일정 수분을 남기고 맛과 향을 유지하여 탄생된다.
본격 홍차가 탄생하기 전, 위조 이후에 약 28도 황토방에서 우리와 함께 하룻밤을 자야 했는데 나는 바로 그 옆에서 여러 번 홍차를 유념하고 사심을 담아 코 박고 킁킁대며 실시간 변화되는 향을 맡았다.
처음엔 풋사과처럼 풋내가 났고, 달콤한 샤인 머스켓 향이 났다. 이후엔 놀랍게도 대만 타이베이에서 맛본 동방미인처럼 스파이시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신기하다. 어떻게 같은 잎차로 이렇게 다른 맛과 향이 날까.
다음날, 함께 푹 잠자고 일어난 홍차를 건조 후에 가마솥에 살짝 덖어주니 드디어 완성이다. 자, 이제 소량의 맛 좀 볼까?
농가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분명 홍차인데 청차의 동방미인향이 난다 표현하셨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군.' 내심 뿌듯함을 느끼며 꽃향이 피어오른 홍차 한 잔을 맛본 순간, 나를 포함한 다우 모두 동시에 눈이 휘둥그래지며 감탄을 금치 못 했다. 산뜻한데 달다. 단데 산뜻하다. 이 여운이 입안을 가득 맴돌았기 때문이다.
" 미쳤다. 이거 팔아도 되는 거 아니에요? "
" 우리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는 거 아니야? "
그 정도로 만족스러운 맛이다. 하루아침에 탄생한 홍차는, 햇빛에 조금 더 건조한 뒤에 숙성하여 마셔주면 지금보다 진한 맛이 느껴질 거라고 하셔서 약 일주일정도 묵혀 두었다 맛보려고 한다.
제다 체험을 경험한 뒤, 다시 서울로 향할 때 비밀의 화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하동에서 경험한 제다 체험은 마치 어딘가에 꽁꽁 숨겨있다 찾은 나의 힐링 장소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 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이 가사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항상 '옳은 정답'을 찾기 바빴는데, 옳은 정답도 영원히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더라. 완벽과 정답을 추구하기보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에 초점을 두었더니 이전보다 몸과 마음이 평온해졌다.
자그마치 14년간 타지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중이다. 외로운 싸움의 연속이지만 어찌저찌 잘 버텨주고 있는 걸 보면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닌가 보다. 화려한 삶보다 정적인 삶을 좋아해서 서울이 아닌 경기 외각에서 유유자적 지내는 중인데, 이보다 더 조용한 차밭에 다녀오고선 '그래, 나는 이런 삶을 좋아아지.'하고 내면의 나를 겨우 바깥으로 꺼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차가 좋은 건, 잊고 지낸 나를 자주 마주한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는 증상이기도 하다. 우리 삶에 느긋한 마음을 선물해 주는 것만으로도 차라는 존재는 이로운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나는 이로운 문화에 조금이나마 일조하는 것이 목표이지 않을까.
체험 이후, 몇 안 되는 기억 보관함에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자리 잡힌 듯하다. 삶의 어지러움이 밀려올 때면 조용히 꺼내어 바라보고 싶은 그런 장면들로 차곡차곡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