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복

by 차로

타이밍도 참 묘하지. 내 인생의 방향성이 한 달 사이에 아주 극적으로 뒤집히고 있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실 속은 멀쩡하지 않았지만), 가고 싶었던 회사에 이직을 했다.

하지만 이전 회사에서의 업무 스타일이 꽤나 배어있었던 것인지, 새로운 회사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해서 두 달 반 정도만에 그만두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문제가 아닌, 직무가 가진 본질적인 부분을 정통으로 맞닥뜨리게 되었다랄까. 원래 이 직무를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일을 하는데, 그동안 참 운 좋게 일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불규칙한 일정과 삶과 업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회사에서는 경계가 아예 없어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삶의 주체성을 잃은 기분까지 들었으니,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남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를 겪고 나서 퇴사를 한 후, 다음 날이었을까. 나에겐 또 다른 이별이 찾아왔다. 약 6년 정도 교제를 했던 관계의 마침표가 찍혔다.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온 메시지 한 통. 6년이라는 관계의 끝은 단 6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서로를 잡지 않았고,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지도, 심지어 통화를 하지도 않은 채 그 사람은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슬픈 감정보다 공허한 느낌이 앞섰다. 매일 연락을 하던 누군가가 한 순간에 없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잔잔하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하지만 난 아프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미 했어야 했던 일을 상대가 대신해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올해 초에 재미로 봤던 사주 내용이 떠올랐다. 내년을 위해 올해는 삶의 방향을 '세팅'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 보니 아주 제대로 세팅값 초기화의 과정인 듯하다. 일하면서 느껴지는 보람도 좋지만 아무래도 나를 더 아끼면서 내 일상의 텃밭을 가꾸는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 잡초도 뽑고 거름도 주고 좋은 햇살도 쬐고. 나중으로 미루어만 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도전하고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행복 이전에는 불행. 불행 다음에는 행복.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오늘을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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