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백수가 되었을 때
정말 평범한 목요일 아침이었다. 매일 아침이면 ‘아직도 0요일 시롸냐’로 카톡을 시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런데 이런 빅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오전의 짧은 면담 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짐을 챙겨 나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디로 이동을 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 매번 지나치던 스벅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커피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네이버에 실업급여를 검색했다. 내 마음은 급한데 속 시원한 정보글이 없어서 당장 1350(고용노동부 상담 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10분간 상담을 했다. 다행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휴 내 인생에 실업급여를 받겠다고 생각할 줄이야.
그런데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이전 회사에도 연락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망할… 머리가 복잡해서 다음 주에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기간이 있으니까.
곧 12시가 되었고, 매일 같이 밥을 먹던 동료들을 밖에서 만났다. 맘스터치 김떡만을 씹으며 회사도 같이 씹었지만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된 걸까,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다음 주 저녁에 만나자며 헤어지고는 서점에 들어갔다. 왠지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평소에는 사진 찍는 걸 항상 까먹고 나중에 아쉬워했었는데. 그냥 순간 ‘앗, 이건 찍어야 해!’라는 생각이 스쳤다.
평일 낮에 서점에 간 건 광화문 근처에서 면접을 보고 갔던 이후 처음이었다. 역시 평일 낮의 서점은 참 평화롭구나.
책도 찍어보고, 사람이 없는 공간도 찍었다. 이 순간의 감정을 담아서. 한때는 혼자 서점 가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전자책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는 좀 흥미가 떨어졌다. 그리고 가방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서서 책을 보는 건 포기했다.
아, 이제 뭐하지 생각하는데 또 폰 배터리가 없다. 오늘 저녁 PT는 미룰 수도 없어서 집에 못 가는데.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카페에 갔다. 이번엔 스트레스받으니까 내 최애 아이스 바닐라 라떼.
빵빵한 백팩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참내 이러려고 들고 다니는 백팩이 아니었는데. 역시 유비무환이구나. 구질구질하게 쇼핑백에 짐을 싸들고 나오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매일 아침 카톡을 하는 K직딩팸 친구들에게 제일 먼저 얘기했다. 우리는 평일의 모든 것을 공유했으므로ㅎㅎ 친구들은 처음엔 놀라더니 곧 안 그래도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았다며 잘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잠시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영화 보러 갈 거라고 했더니 친구는 영화 관람권과 팝콘까지 야무지게 보내주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출구로 나가는데 하늘이 또 너무 예쁘잖아? 퇴사하기 참 좋은 날씨다. 이런 건 또 찍어 줘야지.
완전 가을 하늘이다. 날씨라도 좋아서 다행이야. 날씨까지 구렸으면 기분 더 개 같았을 텐데.
이 영화관 진짜 오랜만이다. 이렇게 사람 없는 영화관도 오랜만이고. 그나저나 공조2를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이야. 오히려 아껴두길 잘했지 뭐. 행복한 두 시간이었다...
영화 보고 나왔는데 왜 해가 벌써 져...?
역에서 나와서 헬스장 걸어가는 길. 노을이 참 예쁘다. 자주 보던 풍경인데도 오늘은 괜히 아련한 느낌. 은 무슨 운동이나 가자.
오늘도 한 시간 동안 열심히 하체를 조지고, 혼자서 운동을 했다. 낮에는 오늘 도저히 운동할 기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역시 몸을 움직이는 게 낫다. 트레이너쌤이 세주는 숫자에 집중하며 스쿼트를 했더니 잡생각을 미룰 수 있었다. 기구 운동이 끝나면 늘 유산소를 하는데 마운틴 런닝머신? 각도가 기울어지는 런닝머신을 타면 두세 배는 힘든 것 같다.
이 런닝머신 앞에는 GX룸이 있어서 항상 사람들이 안에서 춤을 추는 게 보인다. 오늘은 처음 보는 남자 강사님이 있었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는데도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각도를 더 올려야지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왼쪽 위에 뜨는 시간만 보면서 걸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방 30분이 지났다. 땀이 흐르는 게 느껴져서 뿌듯했다. 아, 나는 고민이 있어야 운동이 잘 되는 거였구나.
집에 와서 씻고 식탁에 앉아 간단한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 아빠한테 말을 꺼냈다.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그렇게 놀라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서 그런가? 어쨌든 숨길 것도 아니니까 당장에 말하는 게 낫다. 그런데 아직 J에게는 말을 못 했다. 내일 만나서 해야지. 다시 마음이 무겁다.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