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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Oct 27. 2022

당당하게 니삭스를 신을걸

머리띠도 메리제인 슈즈도 당당하게.

1. 

몇 년 전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공개한 본인의 옷장에는 회색 반팔 티셔츠와 진회색 후디밖에 없었다. 딱히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항상 같은 옷-검정 터틀넥 상의에 리바이스 청바지-을 입었으니까 말이다. 두 분 다 글로벌 IT 기업의 수장이니, ‘너무 바빠서 옷 고르는 데 할애하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이유가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옷 고르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바쁘지 않다. 그리고 아무리 패션에 관심이 없더라도 매일 같은 옷만 입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단벌 패션을 고수하는 행위도 잡스나 저커버그 정도는 되어야 사회적으로 너그러이 용인되는 법이다. 나 같은 범인이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면 오히려 튀지 못해 안달 난, 모난 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리고 모난 돌은 결국 정에 맞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고로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좋은 싫은 다양한 종류의 옷을 사야만 한다.  



2.

어디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옷차림뿐일까.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이다.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거의 없는 사람들조차 최소한의 관리는 하고 사는 것 같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주기적으로 이발을 하여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머리 길이를 비교적 자유롭게 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마냥 길어질 때까지 방치하는 여자는 드물다. 할머니들도 파마가 풀리면 빠글빠글해지도록 파마를 다시 한다. 머리가 짧든 길든, 나이가 많든 적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 씩이라도 머리를 손질하며 사는 것이다. 마치 머리를 관리하는 것이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필수 덕목인 것 마냥 말이다.  



3.

결국 우리는 평생을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결정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선호하는 옷차림이 나의 스타일과 충돌할 때 발생한다. 사회가 선호하는 옷차림은 ‘세련되었다’, ‘힙하다’, ‘고급스럽다’ 같은 다양한 종류의 찬사를 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촌스럽다’,‘스타일이 구리다’, ‘패션 테러리스트다’와 같은 조롱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TPO에 맞지 않는 무례한 옷차림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저커버그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해 비난을 받았는데, 나는 이것이 자유로운 IT 회사의 문화를 대변했다기보다는 ‘무례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함으로써 권력을 과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내가 말하는 충돌이란 말하자면 HOT라는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던 문희준 씨의 ‘애교머리’ 같은 거다. 본인은 좋아하지만 현재 유행과는 맞지 않는 스타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촌스럽다는 대중들의 평가를 두고 “두발 단속받는 고등학생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머리를 누군가에 의해서 바꿀 필요는 없지 않으냐”라고 성토했던 문희준 씨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4. 

내가 문희준 씨의 말에 공감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차림새도 쉬이 하기 힘든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좋아하는 옷차림은 고등학교 교복 같은 스타일이다. 2013년도에 방영된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면 대충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위해 좀 더 친절하게 설명을 하자면, 나는 맵시롭게 꼭 맞는 블라우스에, 펑퍼짐하지 않은 교복 마이(재킷이 맞는 표현이다), 무릎 위까지 살짝 올라오는 주름치마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옷차림에 화룡점정으로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니삭스(일명 반스타킹)에 메리제인 슈즈(발등을 지나는 끈이 있는 구두)를 신는 것을 좋아한다. 

헤어스타일도 그에 걸맞게 옛날 여고생이 할 법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특히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머리띠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안타깝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러한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시기가 중고등학생, 많이 봐줘도 대학생까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작 고등학교 때에는 이해할 수 없는 교칙 때문에 치마는 무릎을 덮는 길이로 펑퍼짐하게 입었어야 했고, 양말은 발목까지 오는 흰 양말을 신었어야 했다. 



5.

구시대적인 교칙 때문에 해소되지 않은 나의 욕구는 대학생이 되고 폭발했다. 나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부지런히 니삭스를 신었고, 머리띠를 했으며 짧은 주름치마를 입었다. 다행히도 내가 대학교 1학년일 때에는 니삭스와 짧은 주름치마가 소소하게 유행하고 있었다. 물론 긴 머리에 머리띠는 여전히 좀 촌스러운 취급을 받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맺힌 한을 푸는 사람처럼 대학교 내내 치마를 입고 니삭스를 신었으며 머리띠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좋아하는 차림새는 점점 더 촌스러워 보였다. 동시에 그동안 차곡차곡 나이를 먹은 나의 얼굴은 여고생 스타일의 코디를 소화하기에 더욱더 버거워졌다. 하지만 애교머리를 도통 포기하지 못하는 문희준 씨처럼 나는 계속해서 그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 대학생도 아직은 학생이니, 딱 대학생까지만 니삭스를 신고 그만두자 생각했다. 



6.

만약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취직을 했으면 이러한 옷차림과는 작별을 고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저 개성 강한 대학생의 옷차림으로 무난하게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어차피 하루 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해야 했고,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으니, 자기만족 차원에서 니삭스와 머리띠를 좀 더 유예해도 괜찮겠다고 합리화했다. 물론 좀 창피할 때도 많았다.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하철에 탈 때마다 신경 쓰였다. 얼굴은 저렇게 나이를 먹었으면서 고등학생 같은 차림을 하고 다닌다고 비난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중요한 발표라도 있는 날에는 절대로 니삭스를 신지도, 머리띠를 하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옷차림을 하면서 이렇게 주눅이 들었던 데에는 엄마의 구박도 한몫했다. 엄마가 보기에도 딸내미가 나이에 맞지 않는 차림을 하고 다니는 꼴이 싫었을 테니 일면 이해는 간다. 그냥 무난하게만 하고 다니면 되는데, 공들여서 촌스럽게 하고 다니는 폼이 못마땅하셨을 것이다. 특히 집을 나서기 전 엄마의 못마땅한 눈길이 내 머리띠에서 니삭스까지 훑고 지나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에서 미란다가 하이힐을 신지 않은 앤디에게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았던 장면 같았다. 엄마의 눈빛에 나도 졸았지만 앤디와 달리 나는 딸내미라는 직책에서 해고될 염려가 없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출근하고는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20대 후반까지 니삭스를 신고 머리띠를 했다. 하지만 내가 니삭스를 더 이상 신지 않는 이유가 ‘30대가 되어서까지 교복 같은 옷을 입기는 민망해서’는 결코 아니다. 그저 신을 만큼 신어 미련이 남지 않았을 뿐이고, 보풀이 일어나고 해진 마지막 니삭스를 버린 후 더 이상 신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새 니삭스를 장만하지 않았을 뿐이다. 



7.

오히려 후회가 되는 것은 딱히 TPO에 어긋나는 차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눈치를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무려 서른 살 가까이까지 니삭스를 신고 머리띠를 할 만큼 그 스타일을 좋아했으면 좀 더 당당하게 하고 다닐 것을 그랬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옷차림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엄마의 못마땅한 눈길에 왜 민망해했으며, 어째서 지하철 같은 칸에 탄 낯선 이들의 시선까지 의식했을까. 


니삭스를 신고 머리띠를 한 예전의 나를 만난다면 말해주고 싶다. 남들은 진짜로 나에게 관심이 없고, 20대는 충분히 어린 나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유행에 따르지 않으면 눈총을 받는 시대는 점점 지나고, 모든 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롱 패딩만 입는 것을 자조하는 시대가 올 테니 부끄러워 말고 입고 싶은 대로 입으라고 말이다.  





+후회 그 후...

많은 커플들이 본 결혼식을 하기 전, 결혼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스튜디오 촬영’이라는 것을 한다. 보통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신랑은 그에 걸맞은 턱시도를 입고 촬영하지만, 우리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대신에 교복을 입었다. 나이 먹고 이 무슨 주접이냐 비난하는 이도 분명 있을 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남들 시선에 내 옷차림을 검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예쁜 옷을 입고 의미 있는 사진을 남긴다는데, 남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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