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개구리를 내일로 미루는 능력(2)
40년이 가까운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문구는 바로 이거다.
개구리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먹어라.
이 문구는 20대 초반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읽었던 실용서에서 만났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내 인생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내가 읽은 책은 원작이 아니라, 원작을 인용한 책이었다. 아마도 원작은 2001년에 “개구리를 먹어라”라는 베스트셀러인 것 같다.)
아무튼. 이 개구리 이야기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매일 개구리를 한 마리씩 먹어야 한다면
하루 중 언제 먹는 것이 좋을까?
염두할 점은 서양에서 개구리란 대단히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점이다. 하긴 ‘개구리 왕자’에서도 공주가 개구리에 키스하는 것을 엄청 대단한 일을 해낸 것 마냥 표현했었지. 우리야 어렸을 때 개구리 왕눈이를 보고 자랐고, 횟집 스끼다시(밑반찬이 옳은 표현이다)로 개구리 뒷다리 튀김이 나오기도 하니 거부감이 덜 하겠지만. 이건 미국인 책이니 미국인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개구리를 먹는 것이란 극도로 하기 싫은 행위이다. 이렇게 징그러운 개구리를 하루에 한 마리씩 반드시 먹어야 한다면? 언제 먹는 것이 좋을까?
그 책이 제시하는 정답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라고 한다. 하루종일 “아... 오늘도 개구리 먹어야 하는데...”라고 개구리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먹어치우는 것이 정신건강에 가장 좋다는 말이다. 하루종일 개구리의 망령이 사로잡혀서 사느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치워 버리고, 홀가분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이 내가 읽은 책의 주장이었다.
나는 이 주장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는 내 태도를 ‘눈 뜨자마자 개구리를 먹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일이면 얼른 해치우고 자유로워지는 쪽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하루종일 마음 한편에 개구리가 찝찝하게 얹혀있지 않는다. 아침에 개구리를 먹어치우면 그날 하루는 개구리에서 해방이었다.
예를 들면 냉장고 손잡이가 부러졌을 때 대처하는 방식 같은 것이다. 예전 같으면, “A/S 받아야 하는데... A/S 비용은 또 얼마나 들려나... 주말에도 A/S 되려나... “라고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을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은 고장 난 냉장고 문을 쓰며 불편하게 열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도저히 못 견디겠을 때가 되어서야 마지못해 A/S 센터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난 일주일 동안 개구리를 먹지 않고 스트레스만 받아온 것이다.
하지만 저 문구를 만난 이후로 나는 차츰차츰 달라졌다. 냉장고 손잡이는 부러졌고, 이대로 두고 쓸 수는 없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순간! 곧바로 A/S를 접수했다. 그 자리에서 깔끔하게 개구리를 먹어 치운 것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개구리에서 손쉽게 해방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삶은 많이 편안해졌다. 사실 대부분의 일은 일단 해 보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많았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을 중고장터에 내놓는 일
만기 된 적금을 처리하는 일
다 써가는 화장품을 주문하는 일
사실상 마음으로는 이미 안 하기로 결정해서 거절을 통보하는 것만 남은 일.
대부분의 일이 마음먹고 시작하기가 어렵지 실제로는 해 보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른 해야 하는데... 하기 싫다... 그래도 해야 하는데...’ 라며 미적거리며 고통받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다.
특히 전화하는 일이 그랬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화하는 것을 약간 두려워하는 편이다. 나에게는 ‘전화하는 일’이 ‘개구리를 먹는 일’인 것이다. 그런 고로 되도록이면 카톡, 문자, 이메일 등으로 해결하는 편이다. 딱히 불편함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 즉시 개구리를 먹어치우는’ 방향으로 인생을 전환한 후에는 전화를 애용하게 되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답문이 올 때까지 마음속에 개구리를 품고 있기 싫었다. 의식적으로 전화를 애용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인생이 편해졌다.
예를 들면 맛집에 가서 포장을 해 오고 싶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 같은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인터넷이나 네이버지도 같은 어플로 그 식당을 검색했을 것이다. 어플에 나와 있는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어플에 나와 있는 정보로 배달이 되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영업시간과 인터넷에 나온 영업시간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주말에는 바빠서 포장을 안 해 준다고 구석에 작게 쓰여 있는 것을 내가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화해서 “오늘 영업합니까? 포장되나요?”라는 두 마디 질문이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다 보니 나는 전화를 애용하게 되었다. 전화라는 개구리만 먹어치우면 나는 가장 빠르게 평안에 도달한다.
당연히 처음부터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노력으로 한 두 번 쉽게 일에서 해방되다 보면 성공의 경험이 생긴다. 개구리를 먹는 것도 관성이 생기면 생각보다 쉽다. 하다 보면 는다는 말이다. 전화를 거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야 당연히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도 힘들다. 할 말을 머릿속으로 충분히 시뮬레이션하고 나서야 통화버튼을 누르곤 했다. 하지만 전화로 손쉽게 문제를 얻었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난 전화 거는 일도 많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개구리를 재빨리 먹어치우는 습관을 유지하며 15년을 지냈다. 뿌듯했고, 만족스러웠다. 인생의 공략집을 보고 치트키를 획득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만능열쇠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놀랍게도 나는 15년간 만족해 온 이 습관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먹어야 하는 개구리를 최대한 미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미루려고 애쓰고 있다. 미루는 게 뭐 어렵냐고 할 수 있지만 즉각 즉각 일을 처리해 버리는 것이 몸에 배어버려서 미루기가 쉽지 않다. 정말이지 내 앞에서 징그럽게 울어대는 개구리를 해치우지 않고 놔두는 일은 참 고역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미루고 버텨야 하는 곳도 있다. 바로. 바로 “회사”라는 이상한 곳에서는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