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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Mar 12. 2024

카카오 이모티콘에 그리 큰 뜻이!

나란 여자

스웨덴에서 두 번째 맞는 생일

아이들 생일이야 애들 웃는 얼굴 볼 생각에 엄마가 해야 할 일도 해줄 것도 많아 바쁘지만

내 생일은 그냥 조용히 밥이나 안 하고 애들 숙제시키려고 아웅다웅이나 하지 않으면 좋겠단 마음뿐이다.


유일한 행사라고 하면 외식이랄까?

여행 다음으로 공식적으로 외식하는 일 년에 네 번 있는 생일.

물가 비싼 스웨덴에서 생일은

이곳의 맛집이라는 레스토랑을 미리 예약하고

여기는 오늘 말고는 다시는 못 올지도 몰라!라는 마음으로

먹고 싶은 거 다 시켜서 신나게 먹는 게 날인 것이다.


애피타이저 2가지, 메인 메뉴 4가지 그리고 디저트 4개.

담소 나누며 식사하는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메뉴만 서빙되면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다음을 기다리는 우리.

많이 시켜 먹어도 항상 배가 고프다는 다른 날과 달리

배가터지게 먹고도 다른 레스토랑 보다 금액도 적게 나왔다며

여긴 또 오자며 조잘거리며 나왔다.

미식과는 거리가 먼 이곳에서

드디어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아님 이 레스토랑이 맛있는 건지

참 헷갈린다는 농담도 세 번쯤 해가며 집에 왔다.


침대에 일찌감치 엎드려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쉬고 있는데

지잉 지잉


차작가님 사랑합니다!


뒤를 이어 방으로 들어오는 개선문을 통과하는 군인의 얼굴.

생일날 기분 좋으라고 삼만 원의 응원비를 보낸 저 남자. 내 남편.


"야! 아니 이게 아니잖아. 이렇게 티가 나게 보낸다고?

아니, 그리고 내가 무슨 작가야!

그리고 여기다가 뭐야. 뭘 또 사랑해! 아! 부끄러워.

빨리 삭제해!!!!!"


삭제 버튼이 안 찾긴다는 말에

내가 찾아보겠다며 얼른 찾아 누른 삭제 내 손으로 삭제한 그의 댓글...

그리고 이상한 쪽으로 흐른 말싸움.


"너는 나를 안사랑하냐?"


"사랑이라고? 사아랑??? 갑자기 왜 사랑타령이야.

아니 난 그냥 아직 내가 아는 사람이 내가 쓴 걸 읽으면 부끄러워.

차작가가 머야 내가 무슨 작가야. 너 탈퇴해 탈퇴. 너 읽지 마."


"내가 읽는게 왜 부끄러워? 내가 남이야?

탈퇴? 그래!! 내가 탈퇴한다."


이럴게 아닌데 이상하게 번진 말싸움은

내 글에 첫 번째 응원하기에 회원이 탈퇴한 채로

남편은 다시는 와이프 글을 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끝이 났다.


나는 응원하기를 켜면 어떤 식으로 되는 건지 궁금해서 응원하기를 해달라고 했고

(누가 내 글에 응원으로 돈을 보내주는 날은 멀디 멀었겠지만 알고싶었다. 응원하기가 대체 뭔지..)

남편은 사랑을 담아 와이프를 응원한 것이다.


그가 화가 나서 이야기했다.


"내가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 이모티콘 보내는 걸 본 적이 있어?"

'잉 내가 어떻게 그걸 알아? 나야 모르지?'

"난 안 그래. 이모티콘은 너한테만 보내는 거야. 너는 나한테 이모티콘을 보내냐?"

'나는 안 보내는데. 왜 내가 남편한테 이야기하는데 이모티콘까지 써야 하지?'


응원 글을 삭제해 버린 게 좀 찔렸던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싸우는 도중에 알게 되었다.

그가 보내는 카톡 이모티콘이 사랑이라는 걸.

이모티콘에 그렇게 큰 뜻이 있다는 걸!


나에게 이모티콘은 남발하는 예의에 가까운데.. 남편이랑 이야기할 땐 과한 예의는 필요없잖아.


극 F와 극 T의 만남...


카톡 이모티콘이 사랑이라는 특별한 의미인걸 알게 된 나는

어제부터 남편의 카톡에 아주 어색하게 이모티콘으로 답하고 있다.

그는 이제 만족스러울까?


P.S. 미안한 마음에 이 에피소드는 박제하는 의미로 글로 남겨두기로 결심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지나간 글에 좋아요가 눌리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브런치에 들어왔다가

잠시나마 홈에 걸린 브런치북을 보고 자랑할 사람 또한 남편 밖에 없더라고요.

캡처 떠 보낸 카톡에 기뻐해주던 그는 다시 브런치에 가입을 했습니다.

우리 이렇게 다르지만 13년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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