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없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 진짜, 이렇게 차린 게 억울해서라도 우리 진짜 성공하자!"
회사를 차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조롭게 풀리는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항상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가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았다.
온라인 법인 설립 시스템이라는 것을 스타워즈 아트를 통해 처음 알았다. 사이트에서 지시하는 수십 장의 PDF 내용을 잘 살펴본 후 절차대로 따라 하면 회사가 차려진다 하였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도 인감도장뿐, 다른 것은 필요치 않았다. 이런 일에 제일 빠삭한 스타워즈의 지휘 아래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회사 주소지를 적는 란에는 박조이 팀장의 집 주소를 적어냈다. 우리 중에 한 명이라도 자신 명의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자본금을 적는 란에는 0원을 적었다. 사실이었다. 우리는 뭣도 없었다. 막상 이렇게 적다 보니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으론 '괜찮아 바닥에서 시작하니까 올라갈 일 밖에 없어' 긍정의 힘으로 정신승리를 해가며 결정한 일이었지만 하나하나 우리가 가진 것들이 나열될수록 '내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불안이 올라왔다. 이래서 사랑 하나면 살 수 있다던 수많은 예비부부들이 혼수와 집 장만을 하면서 그렇게나 헤어졌나 보다 생각했다. 마음으로 이겨낸 현실도 막상 눈앞에 펼쳐지면 흔들리는 게 사람인 것을, 나는 법인을 설립하는 내내 두 사람에겐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참 가을 낙엽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우리의 대표는 우리로 정했다. 그러니까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고 집이 있고 우리가 팀장이라 부르는 박조이 한 사람이 아니라 세 명이 모두 동일한 지분을 가진 공동대표로 신청한 것이다. 대표라는 명칭도 과분해 우리는 신청서 어딘가에 쓰여 있었던 공동 수행원이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것만으로도 며칠은 걸렸다. 세명이 모두 동시에 절차를 진행하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컴맹이었고 우리네 팀장님들이 그러하시듯 박조이는 연말정산도 혼자 하기 벅찬 수준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한 명이 잘못하면 다시 셋이 각자의 집에서 동시에 작성하고 또다시 신청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우리가 이제 '완벽해'를 외치고 승인을 기다리던 어느 날은 담당 직원이 전화가 와서는 이런 케이스가 별로 없어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에러가 나니 처음부터 다시 신청을 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오기라도 이 회사를 성공시키리라 다들 전의를 불태웠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인터넷상의 절차를 마치고 우리는 최종 등록을 위해 주소지에 해당하는 지방법원, 그러니까 박조이의 동네로 모였다. 그곳에서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여 접수하는 일을 두어 번 반복한 끝에 드디어 사업자 등록증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우리를 향한 세상의 두 가지 시선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대단하네요 우리 아들이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회사를 차릴 생각을 다하고"
서류를 봐주시던 직원분이 나와 스타워즈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다가 말했다.
"아니에요 저희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차려만 놓는 거예요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시도하는 게 얼마나 대단해요. 우리 아들은 서른이 다 되도록 집에서 놀고먹기만 하는데."
어쩌면 인사치레와도 같았던 직원 아주머니의 말이 나는 고맙기도 또 슬프기도 했다. 누군가 우리를 대단하다 여겨주고 응원해준다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구석에선 '아... 나도 좀 놀고먹으면서 살아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본능적으로 아주 잠깐 스쳤던 것 같다.
나머지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세무서로 장소를 옮겼을 때, 우리의 행보에 대해 방금 전과는 또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자본금 0원으로 무슨 사업을 해요."
그게 딱히 법인 설립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서 굳이 우리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으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직원의 말을 나는 똑똑히 듣고야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뱉어버린 그녀의 말이 나는 슬프기도 또 고맙기도 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 그 한마디를 어떠한 말로도 반박할 수 없음이 슬펐지만, 또 그런 상황에서도 이걸 하겠다고 여기 이러고 있는 우리 세 사람이 참 든든하다 새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법인 설립을 마치고 우리는 뒤늦은 점심으로 감자탕을 말아먹고서 박조이가 단골이라는 카페를 찾았다. 비엔나커피가 유명하다는 그곳에서 우리 셋은 일제히 비엔나커피를 시켜놓고 자리를 잡았다.
"회사 철학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각자 이 회사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그런 거 있어?"
"그냥 당장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보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광고대행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단 돈이 있어야 뭐 새로운 거,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할 거 아니에요."
"우리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광고는 그중에 그냥 하나인 거고 다시 그게 주가 되면 의미 없을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우리 회사 프로젝트 안에서 서로 도우면서 할 수도 있는 거고."
박조이의 물음에 나는 현실적으로 스타워즈는 이상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박조이는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냈다.
"난 다 좋아. 근데 더 중요한 게 나는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우린 항상 을이었잖아. 안 되는 것도 맨날 밤새우면서 다 된다 하면서 했잖아. 난 이제 그거 하기 싫어.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무례한 사람들 일 받으면서 네네 하는 거, 그것만 아니면 돼. 작은 거 하나를 해도 우리가 잘 해내면 이런 업계는 입소문이 금방 나니까 굶어 죽지는 않겠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서로가 지향하는 회사의 그림들이 서툴지만 아주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사소하게 어긋나고 부딪히는 부분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것조차 큰 기쁨이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고 다시 솟아오르기를 반복하듯, 말과 말이 부딪치고 깨져도 결국 하나로 이어져 거대한 흐름이 되는 이 이야기들이 나는 바다처럼 좋았다.
"직책은 없어도 역할은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명함은 필요 없어. 요새 그런 거 뭐 필요하냐. 우리 찾는 사람들은 어차피 다 알음알음 먼저 알아서 연락하는 걸 텐데. 아, 맞다 월급은? 수익은 어떻게 나눌래?"
쉴 틈 없이 불어닥치던 박조이와 우리의 파도가 잠시 잠잠해졌다.
"월급은 N분의 1로 하시죠."
예상치 못한 쓰나미였다. 그럼에도 스타워즈는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듯 중심을 잃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들어온 일들, 그래서 혼자 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가 있어도 그 일을 통해 얻은 수익은 모두 3분의 1로 나누어 갖겠다는 얘기였다. 또 누가 어떤 프로젝트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수치화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고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계산적으로 일일이 그것을 따져 묻고 싶지 않다 했다.
"완전 사회주의네 이거, 너 안 억울할 자신 있냐? 만약에 어떤 상황에서 일은 네가 다 해야 되는데... 솔직히 아트가 너 하나인데 네가 해야 할 일이 제일 많을 수도 있어, 안 억울하겠냐고."
박조이는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나도 사실 처음엔 우려했다. 내게 개인적으로 들어온 제안이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많은 프로젝트도 똑같이 나눠가져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뒤에 이어진 생각은 '이 사람들은 내가 혼자 해야 하는 일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어떻게든 나눠서 도우려 할 사람들'이었다. 3년여를 함께 하며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우리라면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리고 더 최악의 상황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 간의 월급에 차이가 생겨버린다면, 그래서 누구 한 사람이 자신이 다시 노동자 신세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더 많은 월급을 위해 경쟁하려 하거나 더 큰 인센티브를 위해 자신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그때에도 셋이서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까? 아마 그렇게 된다면 이 법인의 존재 이유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팀장님만 괜찮으면 저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월급은 공평하게 N분의 1. 사실 팀장님 연봉이 제일 높았으니까 피해도 제일 클 거 아니에요."
나까지 이 사회주의적 물결에 합류하자 박조이는 껄껄 웃으며 너네가 말한 거니까 후회하지 말라는 둥, 그래서 내가 돈 더 달라 그러면 너네가 줄 거냐는 둥, 내가 뭐 돈 많이 벌자고 너네랑 회사 차린 것도 아닌데 자신은 상관없다는 둥 하면서 N분의 1 월급제를 받아들였다.
월급뿐만 아니라 일체의 비용, 사소한 밥값에서부터 회사 운영에 필요한 앞으로의 자금 모두를 N분의 1로 정했다. 그동안은 셋이 만나면 팀장님이 밥값을 내고, 우리는 얻어먹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었다. 우리보다 많이 버니까, 팀장이니까 저 사람이 계산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윗사람과 수평적이고 동등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어떨 때는 지극히 수직적인 관계를 원하는 모순 덩어리의 내가 있었음을 반성했다.
실수를 했을 때, 그러나 내가 책임지고 싶지는 않을 때, 나서고 싶지 않을 때 그래서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안 좋게 보이고 싶지 않을 때, 임원급의 말이 잘못되었다 생각될 때 그러나 내가 직접 말할 용기는 없을 때,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싶을 때 그런데 공짜로 먹고 싶을 때. 나는 내가 필요한 순간에만 극진히 수직적으로 팀장님을 따랐다.
나에게 월급을 N분의 1로 한다는 것은 수익을 똑같이 나눈다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팀장이기에 지니고 있어야 했던 책임감과 부담감, 생각의 무게감과 팀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이 모든 것들도 똑같이 N분의 1로 나눠 가져야 함을 의미했다.
이제 어떤 식으로든 무임승차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버스를 태워줄 이는 더 이상 없다. 우리는 차 한 대에 나란히 놓인 세 대의 운전대를 잡고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