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우리 앞으로 어쩌냐?"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우리를 받아주는 회사가 있을까?”
“받아준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차려야죠. 이 상태론 어딜 가도 똑같아요.”
퇴사 후 오랜만에 만난 세 명의 퇴사자들, 나와 팀장님의 답 안 나오는 대화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아트님이 말을 꺼냈다.
'회사를 만든다고? 그게 되겠어? 돈이 있냐, 건물이 있냐, 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회사를 차려.'
지극히 비현실적인 계획 같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 다시 착한 노예가 된다는 건 더욱 상상할 수 없기에 그렇게 말이 안 될 것도 없었다.
스타워즈 아트는 나와 동갑이나 나보다 젊다. 연차가 적어서 처음부터 막내 역할을 도맡기도 했지만 사고방식도 훨씬 진취적이다. 예명처럼 우주 정도는 가줘야 인생 제대로 살았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다며,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사는 날이 다가오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하고 소비를 할 땐 제품의 성능보다 그 브랜드의 철학을 사는 사람이다. 남들이 인정하든 말든 조금은 독특한 자신의 소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사는 인생은 스포일러 된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 뒤가 궁금하지 않아요."
그는 우린 아직 젊으니까 안주보다는 도전을 해봐야 한다고, 이제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해보고 싶다 말하며 이직이 아닌 창업을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스포일러 된 영화 같은 삶을 꿈꿨던 사람 중 하나였다. 좋은 것만 골라 먹이고 입히시는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살다가 때가 되면 내 가정을 꾸려가는 당연한 삶. 도미노처럼 차례대로 진행되는 평범한 삶 말이다. 그래서 직장 생활도 되도록이면 오래 하고 싶었다. 차장을 달고 부장을 달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스포일러 된 듯 모두가 아는 이야기들. 재미가 없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가능하면 그렇게 모나지 않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갖은 노력을 다해봐도 결국은 또 이렇게 실패. 평생을 그리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이 매년 덧발라 놓는 색처럼 진해진다.
평범해지는 것만큼 간절하며 또 두려운 것도 없다.
평범함, 그 속에는 정말 많은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 나는 보통의 딸, 그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부모와 떨어져 월세살이를 한다. 내가 혼자 자취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서울이라고 말하면 부모님은 어디 사시냐고 묻는다. 다시 서울이라고 말하면 그다음부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도 다른 딸내미들처럼 결혼 전까지는 엄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 먹으며 한 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특히 숫자들을 볼 때 그러한 마음들은 더욱 커진다. 매달 나가는 월세와 공과금, 120시간이라고 찍힌 밥통의 보온 시간, 미역국 끓여 줄 이 없는 내 생일, 미역국을 먹고 있을 가족들의 생일. 이성적인 숫자들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자극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아이러니의 끝은 그러다가도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문에 하루라도 본가에서 자고 오는 날이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 자신이다. 진짜 이들과 다시 같이 살게 될까 봐. 내가 빈털터리가 되거나 부모 중 하나가 반신불수가 되어 언젠가 다시 한 지붕 아래 살게 될 그날이 찾아올까 봐. 인간은 본성이 고약하고 간사한 존재임을 나는 매번 자신을 통해서 확인한다.
세 명의 퇴사자 중 다른 한 명은 팀장인 박조이다. 사람을 좋아하며 사람 때문에 살며 사람과 함께 죽고 싶은 사람.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내가 지어준 예명처럼 즐거움이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게 이 사람의 아이러니다.
박조이는 원래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였다. 그러니까 이미 회사생활을 일찌감치 정리하고 소속 없는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눈이 반짝반짝한 우리를 만났고 그게 어여뻐 3년여를 함께 하고 있는 분이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광고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우리들과 기꺼이 자신이 떠나온 전쟁터로 뛰어든 의로운 전우였던 것이다. 왜 주변 사람들 중에 꼭 그런 사람들 있지 않나. 적당히 걸리적거리는 게 있을 때 더 강해지는 사람. 자신이 다치는 건 괜찮은데 내 사람들이 다치는 건 죽어도 못 보겠는 사람.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는데, 너네가 밤새우면서 만든 아이디어를 욕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이번 퇴사 이유 중 하나다. 사회에서 만난 팀장급의 사람 중에 이런 마인드는 극히 드물다. 직장 생활이 끔찍한 이유는 대게 직장 상사가 끔찍하기 때문이지 않은가. 어떤 회사든 꼰대 온난화가 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팀장으로서 자신보다 팀원을 먼저 챙기는 상사들은 봄날처럼 사라지고 정치를 잘 하는 상사들만이 여름처름 끝까지 살아남는 관경을 자주 목도했었다. 꿋꿋하게 팀장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며 피어나는 사람, 그런 박조이를 따르는 건 나에게 악조건에서 피어난 꽃을 아름답다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평범하고 싶지 않은 스타워즈, 평범함에 실패한 나, 그리고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박조이. 우리 셋은 몇 번의 만남과 이야기 끝에 이견 없이 회사를 차리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그들보다 조금은 더 현실적인 사람이라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다 합류했다. 창업에서 비전을 보았다기보다는 직장생활에서 비전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둘 다 비전이 확실하지 않다면 차라리 해보지 않았던 일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렇듯 회사를 차린다는 건, 엄청난 결심의 결과는 아니었다. 다른 더 좋은 대안이 우리에겐 없었을 뿐이다.
“너도 너랑 똑같은 딸 나서 고생 좀 해봐.”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아마 우리를 데리고 있던 사장님들도 마찬가지의 심정은 아니었을까?
‘너네도 회사 차려서 너네랑 똑같은 노동자 데리고 일해봐’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장이 된다면 말이다. 내가 그동안 악덕 사장이라 일컬었던 그들의 마음을, 역할을,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명분들을. 따박따박 찾아와 주었던 월급의 다정함을, 군말 없이 곁을 지켜주던 4대 보험의 자상함을.
그러니까 내게 회사를 차린다는 의미는 크게 한 탕 벌어보자가 아닌 크게 한 번 깨달아 보고자 선택한 길인 셈이다. 사업이라는 단어도 거창하다. 실험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내가 어떻게 변할지, 우리가 진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모두 이 사업 실험에 달려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