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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Apr 14. 2018

8. 무직의 대표이사

인생? 뭐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회사를 차렸다. 2개월째 놀고 있다. 일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대표이긴 하나 무직인 신세다. 회사를 차리자마자 일이 들어올 거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뭐라고. 다만 창업 전부터 관심 가져 주는 업체가 몇 있었고, 같이 일해보자는 사람도 종종 있던 터라 굶어 죽진 않겠구나 안심하고 있었다.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걸 잘 알면서도... 참으로 안일한 안심이었다. 


 다 필요 없고 딱 100만 원. 한 달에 그 정도만 벌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하루 두어 끼 챙겨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이면 족하다 싶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욕심이었음을 깨닫는다. 돈이라는 건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것이고, 일이라는 건 누군가 나를 찾아 준다는 것인데, 현재 우리를 찾는 이는 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벌 수 있는 돈도 제로라는 뜻이었다.


 우리 회사에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여기에 있었다. 영업력 제로. 그런 쪽으로는 능력도 안 되고 성격도 안 되는 사람들이 셋이나 모였다니. 갑자기 앞 날이 캄캄해졌다. 영업력 있는 기획자 한 명만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렇게 똑똑한 능력자라면 우리처럼 대책 없는 사람들과는 처음부터 안 맞겠거니 싶어져 아쉬움이 금세 사라졌다.


 본의 아니게 텅텅 비어 버린 이 시간들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궁리하다 브런치를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창업 스토리이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어떻게든 기록해두고 싶었다. 어떤 생각들로 이런 일들을 저질렀는지 언제든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다못해 우리 셋의 추억거리라도 될 수 있게. 소심하게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할수록 점점 재미가 붙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고 응원해준다는 게 하루하루의 원동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창업과 관련된 일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들도 일기처럼 적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 창업 에피소드가 이렇게 빨리 떨어질지 몰랐다. 일이 없으니 당연할 수밖에. 도대체가 쓸 말이 생겨나지 않았다. 한참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가던 차라 뭐라도 적고 싶어, 그때그때 떠오르는 일들을 마구잡이로 쓰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하얀 백지 위에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속이 다 시원했다. 잡생각이라 여겨왔던 생각들이 더 이상 잡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엉켜있던 사고들이 글쓰기를 통해 차근차근 정리되면서 꽤나 쓸모 있는 생각들이 되기도 했다.  


 그림도 그려보기 시작했다. 글의 표지가 될 만한 비주얼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그럴싸한 이미지를 차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의 일 하기 싫어서 회사도 때려치우고 차린 마당이지 않은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남의 거 가져다 쓰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유치하고 없어 보여도 내가 만들어보자 마음먹고 정말 오랜만에 문구점 미술 용품 코너에 갔다. 작은 스케치북과 36색 수채화 색연필, 지우개와 연필깎이를 샀다. 매일매일 스케치북에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그려졌다. 내 그림들이. 중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 때문에 음악, 미술, 체육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체육이었다. 그때 잃어버렸던 미술시간을 서른이 넘어서야 되돌려 받은 것이다. 이건 또 뭐라고 이리 재미있을까. 지금은 그림 그리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날이 풀려서 몸도 조금씩 풀어주고 있다.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흐린 날에서 집에서 간단한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하고 해가 나는 날엔 종종 산책을 나갔다. 한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 산을 타고 올라가는 길, 시장 구경을 할 수 있는 길, 음악 듣기 좋은 길 등 나만의 산책로가 하나씩 늘어갔다. 동네를 발견하고 사람들 구경하고 어제의 딸기 값과 오늘의 딸기 값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어린 날 체육시간 때처럼 햇살을 기다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부산스럽게 하고 있는 일들이 몇 개 더 있다. 인디 음악을 하는 친구가 있어 같이 노래를 만들어 보고 있다. 나는 작사를 맡았다.  


 또 좋아하는 게임을 하다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게임을 녹화해서 유튜브에 올리면 게임채널이 되는 거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하고 스타워즈 아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자기가 편집할 수 있으니 같이 해보자며 순식간에 나를 닮은 캐릭터를 뚝딱 그려내더니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나도 나지만 이 사람도 참 고민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 옛날 모 그룹 회장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해보기는 했수? 해보고 얘기합시다." 우리는 늘 이런 식이다. 그리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유튜브에 게임 영상도 업로드하고 있다. 우습게 생각했었는데 10분짜리 영상에 편집만 8시간이 걸렸다. 1인 방송,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또 하나를 알아갔다.


 이것이 법인을 설립한 후의 내 일상이다. 분명 일이 없는데도 스케줄이 꽉 차 있다. 글쓰기 시간, 미술시간, 체육시간, 음악시간에 특별활동 게임시간까지... 무슨 백수가 이리 바쁘고, 무슨 대표가 이리 하찮을까 싶은데 중요한 건 하루하루가 정말 즐겁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재미있구나, 내가 이걸 재미있어 하는구나를 매번 느끼면서 매 순간 행복해하고 있다. '어후 일하기 싫어, 월요일 싫어, 출근하기 싫어, 살기 싫어' 하루 온종일 싫은 거 투성이었는데 지금은 하루 온종일 재미진 거 투성이다.  


 박조이와 스타워즈의 생활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박조이는 일주일에 두 번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 SNS에 올린 공지사항을 보고 지인들과 지인의 지인들이 모였다고 했다. 장소는 비엔나커피가 맛있다는 박조이의 동네 카페. 지난번 우리가 월급 협상을 했던 바로 그 카페다. 수업료는 자유. 자기가 내고 싶은 형태로 내면 된단다. 어떤 이는 농장에서 직접 짠 사과즙을 수업료로 보내왔고, 또 어떤 이는 꽃 시장에서 산 꽃을 한 움큼 지불했다 하였다.


 스타워즈 아트는 요즘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개그맨 후배들을 도와 영상 촬영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 일러스트레이터인 친구와 협업을 하고, 다분히 오타쿠적인 취향이 드러나는 애니메이션도 틈틈이 그리고 있다. 어쩜, 세명 모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잘 살고 있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죄다 돈 안 되는 일들로만 골라서. 그럼에도 아주 행복하게. 


 어쩌면 인생에서 예체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었는지 모른다. 대학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국영수 위주로만 진행되었던 10대의 날들과, 연봉 하나만을 바라보고 직장 업무 위주로만 진행되었던 내 20대의 날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하마터면 고3 같은 30대를 살아버렸을지도 몰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맘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일이 없어서, 아무도 우릴 찾지 않아서 감사했다. 이런 사소한 거에도, 이런 돈 안 되는 거에도 행복해하며 살 수 있다니. 떠오르는 태양에도 불어오는 바람에도 따뜻한 온수에도 일어나 먹을 밥이 있다는 것에도, 작은 일상에도 감사하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왜 그렇게 날이 선 채로 화병 걸린 사람처럼 살았는지 지난날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맑아질 수 있을까. 나는 너무 오랜만에 누려보는 평화에 취해 차라리 이대로 영영 일이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바라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속세와 연을 끊은 비구니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사월의 봄이 다가왔다. 내 생일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이 친구 저 친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일이라는 핑계로 만나게 되었다. 퇴사 후 나의 삶을 적잖이 궁금해하던 친구 한 무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민낯의 체크무늬 셔츠, 온화한 미소를 장착하고 감바스를 대령하는 나를 보고 그들은 이것은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수준이라며 놀라워했다. 


 "나 지금 리틀 포레스트인 줄 알았잖아, 이게 가능해? 얘가 이렇게 된다는 게 말이 돼?"

악으로 살고 깡으로 버티며 이 악물던 모습에만 익숙했던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해도 허허 웃으며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내 모습을 상당히 낯설어했다. 나는 안주가 떨어질 때마다 미니 핫도그를 튀기고 김치부침개를 부치고 파스타를 볶아내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어차피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었잖아. 근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도 없는 음식들을, 뭘 먹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급하게 흡입하며 살았던 거 같아. 앞으론 배부르게 안 먹어도 되니까 조금만 먹더라도 그렇게 놓쳤던 거 하나하나 다 느끼며 살고 싶다." 


 금호동 김태리가 되어 신명하게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고 있던 그때. 오랜만에 박조이 팀장과 스타워즈 아트가 있는 채팅방에 메시지가 울려왔다. 


"너네 행복하니?" 

박조이였다.

"네 저는 행복합니다."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왠지 불길했다.

"해야 되면 하겠지만 하고 싶어서 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나는 만우절에 태어났지만 거짓말하는 능력은 없었다. 


"우리 일 들어왔어. 오티는 내일모레. 가능해?"


 비구니 같던 선하심이 김태리 같던 청정함이 한순간에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이고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친구들이 하는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없어진 줄 알았던 독기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우리 회사로 들어온 첫 의뢰였다. 기뻐해야 했지만 나는 분명 절망하고 있었다. 어째서 일까. 도대체 나는 어떻게 돼먹은 애가 이 모양인가. 나 따위가 정말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까. 나처럼 일하기 싫어하는 대표이사가 있을까. 순식간에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네 가능합니다."

짧게 대답을 보냈다. '이틀 밖에 안 남았네...' 나는 태어난 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내일이, 내일모레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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