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처음으로 의뢰가 들어온 일은 자동차 PT건이었다. 기한은 일주일, 제안은 총 2번. 어째서 마감이란 단어는 진통도 없이 태어나 그대로 정해져버리는 것일까. 단어에게도 의지가 있다면 마감은 아마 다음 생은 마감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마감 때문에 그 주 약속되어 있던 벚꽃 구경과 친구 생일파티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습관처럼 책상에 앉았다. 하던 대로 네모난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보다 더 반듯한 모니터엔 머리를 조아린다. 또 시작이구나. 아무런 생각이 안 나도 뭐라도 가져가야 하는 일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산책을 나가던 일상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순식간에 진통도 없이. 지켜야 할 규율도 따라야 할 상사도 없었지만 나는 또 노예처럼 굴어댔다. 하루 7-8시간 책상 앞에 정직하게 앉아있는 것. 그게 내가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배운 성실하게 일하는 방법의 전부였다.
첫 번째 제안이 있었던 날은 원래 남자친구와 벚꽃 구경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아쉬운 마음에 얼굴이라도 잠깐 볼까 싶어 남자친구 집엘 들렸다가 펑펑 눈물을 쏟고 왔다. 하기 싫다고, 다시 갇혀 있게 된 기분이라고, 놀러 가고 싶다고, 왜 이렇게 죽을 거 같은지 모르겠다고. 왜 얘 앞에서만 이런 꼬맹이가 되어 버리는 건지 그 이유도 모르겠다. 나는 너무 모르는 거 투성이인 채로 어른이 되어버렸다.
촉박한 마감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기로 했다. 일주일만 꾹 참고 견디면 다시 쉴 수 있으니까. 그래, 딱 일주일만 희생하자. 헌데, 일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들어왔다. 두 번째 의뢰인은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알게된 사람이었고 세 번째 의뢰인은 두 번째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었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은 이주가 되고 삼주가 되고 벌써 한 달하고 보름이 되었다. 이 업계에도 오픈빨 이란 게 있는 건지 우리가 나름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어플 광고, 치킨 광고, 게임 광고, 금융 광고 그리고 서울시 관련 광고까지 하게 되었다. 회사를 나왔지만 회사를 다닐 때처럼 초조하고 촉박한 날들이 이어졌다.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과감히 일을 열심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은 언제나 내 인생에서 최우선 순위였다. 회사라는 곳을 선택한 순간부터 결정된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인생에서 2순위는 대부분 버려졌다. 낮에는 해를 보고 봄에는 꽃을 보고 정갈한 한 끼를 먹고 누군가와 기쁨을 나누고. 모두가 일상이라 부르지만 결코 일상적일 수 없는 일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어갔다. 그리고 지금, 그 생활이 다시 반복되려 했다. 이럴 거면 회사를 왜 나온 걸까. 냉정히 생각해보았다. 백수가 되고 나서 무엇이 가장 행복했었는지.
일상의 회복.
현재 내 삶의 우선순위는 일이 아닌 일상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종종 우울하고 비관적이었다. 도무지 삶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서. 그랬던 나를 일으켜 준 것은 정말 사소한 하루하루들이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해가 떠 있는 남산 공원을 걸어봐. 노을 지는 한강을 따라가봐. 3시간 동안 푹 익힌 짭조름한 장조림을 만들어 먹어봐. 목적 없이 책을 읽어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려봐.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공감해줄 누군가를 만나봐. 너는 분명 살고 싶어질 거야. 미친 듯이 삶이 소중해질 거야. 회사를 차리고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일 때문에 꽃구경과 친구 생일 파티를 취소한 일이다.
회사를 다닐 때나 회사를 차렸을 때나 똑같이 일은 해야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하루에 대한 경영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것. 내가 어떻게 하루를 쓸 것인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반지와 같은 엄청난 권한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는 책상으로부터 탈출했다. 그런 방식으로의 열심히가 무의미했다. 하루의 절반은 나를 위해 쓰고 나머지 절반을 일을 위해 썼다. 도서관을 다녀오고 등산도 다녀오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낮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저녁부터 일을 시작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생각하는 게 직업인 사람이고 생각은 책상이 아니라 도서관을 가다가도 등산을 하다가도 영화를 보고 책을 읽다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회사라는 곳이 그런 방식을 허용하지 않을 뿐이었다. 편리하게 관리할 수 없으니까.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책상을 떠나자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올랐다. 컴퓨터에서 자료를 보며 떠올린 아이디어들은 키보드처럼 네모나고 모니터처럼 반듯했다. 산책을 하다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말랑말랑했고 둥그렇기도 했고 뾰족하기도 했다. 그래서 쓸데없고 그래서 또 쓸데가 있었다. 나중에는 PPT 파일로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만 책상에 앉았다. 더 이상 일이 끔찍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일이, 이 직업이 오랜만에 다시 즐거워졌다.
일은 소중한 일부여야 한다. 전부가 되어버리면 모든 게 엉망이 된다. 덜 열심히 해야 더 열심히 지속되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외부 미팅 때문에 새벽 1시가 넘어서 스케줄이 끝난 어느 밤. 피드백이 잔뜩 주어져 수정할게 산더미인데도 스타워즈 아트가 해탈한 도인처럼 말했다.
"그래도 내 일이라 생각하니까 부담이 없어요. 망해도 우리가 망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하면 되는 거에요."
너무 열심히였나 보다. 직장생활의 우리는. 내가 잠깐 쉬는 것도 다른 팀원에게 피해가 갈까 회사에 손해가 될까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사업은 피해가 고스란히 내 몫이 되니 오히려 좀 덜 열심히 해도 된다는 논리다. 이상한 말이지만 수긍이 가는 나도 이상한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밤이 깊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일거리를 잔뜩 안고 돌아가는 텅 빈 거리에 낄낄낄 소리가 울릴 정도로 웃어댔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뭐 하는 사람들이냐 물을 때마다 대답하기가 곤란했었는데 이제야 좀 갈피가 잡힌다.
"아, 저희 말인가요? 저희가 누구냐 하면 말이죠. 회사를 차려 놓고 하루를 경영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장답게 그리고 사람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