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May 28. 2018

10. 왜 자꾸 돈을 빌려준다는 겁니까

인생? 뭐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곳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다. 태어나고 싶어도 돈이 필요하고 살고 싶어도 돈이 필요하고 죽고 싶어도 돈이 필요한 세상이다. 빛을 보려다 빚을 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림자처럼 살아가다 밤하늘처럼 아득해진다. 전쟁통에 월남해 평생을 바쳐 일궈낸 할배와 할미의 일생이, 당신들 자식의 꿈과 청춘이 또 그 자식들의 안락함과 순진무구함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빚의 파괴력은 눈이 부시게 대단했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돈은 안 빌린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 역행하는 곤조가 생긴 것도 다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맛보고 자란 덕이었다. 남들은 돈이 있어도 받는 게 대출이라는데 나는 그 흔한 신용카드도 없고, 학자금 대출은 졸업 1년 만에 완납. 동전으로 살살 복권을 긁어내듯 삶 위를 덮고 있던 회색 빚을 지저분하게 지워가는 게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직장인 말고 다른 선택지가 무엇이 있으랴. 월급쟁이의 신화는 월급에 있다. 그뿐이다. 돈, 돈. 다 그놈의 돈 때문에. 


 박조이가 처음 나에게 그놈의 돈을 빌려준다 했던 것은 2017년 봄이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비가 오면 비가 새고 버스가 지나가면서 "학생입니다"를 외쳐대는 곳. 바깥 환경을 고스란히 안으로 데려온 낡고 오래된 집에서 자취를 하던 나는 겨우내 새 집을 알아보다 실패했다. 봄은 이사라는 고달픔에 실려왔다. 


 방도 사람과 마찬가지라 많이 만나다 보니 감이 왔다. 아, 이 집이다. 여기서 꼭 살아야겠다. 두 계절 헤매다 이상형을 만났다. 서울 중심 역세권에 월세 30, 베란다 있는 4층 남향집. 내가 알아보던 월세 중에 가장 저렴했지만 가장 넓은 평수였다. 가성비 갑, 합리적인 선택은 이 집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 같았다. 해가 쩌릿하게 들어오는 그 집 베란다에 한동안 멍하니 서서 지난겨울을 떠올렸다. 내 형편을 닮은 언덕배기 지붕들, 그 지붕들 뒤로 눈물을 스킨처럼 흡수하던 두 뺨, 두 빰을 비추던 까만 밤 불이 환한 아파트 창문들 그리고 그 창문으로 차마 들어갈 수 없어 남겨진 서러움들.   


 월세는 쌌지만 보증금이 비쌌다. 내가 가진 거에 비해 비쌌다. 천만 원이나 부족했지만 계약을 해버렸다. 원래 인생은 일단 저질러 놓고 수습하는 과정이라 누군가 말했던 거 같았다. 그 수습이 난항을 겪게 된 건 믿었던 전세자금 대출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집주인의 거부로 물거품이 되면서부터였다. 또다시 집을 알아보러 다닐 생각을 하니 아... 끔찍하다 끔찍해, 매일매일 울고만 싶었다. 당시에도 같은 회사를 다니던 박조이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나의 팀장님이었다. 우리는 종종 테라스에서 맞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얘길 나누곤 했는데 내 소식을 들은 그녀가 대뜸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빌려줄게. 천만 원. 그런 집이면 놓치지 말아라."

맹세코 나는 그런 의도도 아니었을뿐더러 뉘앙스조차 풍기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아니 당신이 왜. 내가 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가족도 친구도 아닌 직장 상사일 뿐인 당신이 왜. 그냥 빈말인데 괜히 오버하는가 싶어 괜찮다며 알아서 해결해 보겠다며 손사래를 치며 일어서는데 


"그래도 안되면 꼭 나한테 빌려달라고 말해." 

라고 강조하는 게 아닌가. 이 여자, 진심이구나. 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녀의 진심이 빛을 발한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돈을 빌려달란 말을 하기 위해 친구 몇 명을 만나러 다니는 동안이었다. 부탁할만한 친구가 세명 있었고 두 친구에게서 그렇게 큰돈은 당장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 그럼에도 초조하지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안되면 박조이가 있잖아. 모두 안된다고 해도 박조이가 있잖아.' 누군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돈을 빌리러 다니는 사람을 당당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돈은 세 번째로 만난 친구에게서 빌렸다. 8년 다닌 직장에서 받은 그녀의 퇴직금이었다.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내년에 갚아도 된다고, 네가 내 돈 떼먹을 아이냐고. 담담히 말하는 그녀의 돈을 나는 천천히 갚아낼 재간이 없었다. 5개월 만에 친구에게 진 빚을 갚고 박조이와도 채무 관계가 아닌 팀원과 팀장의 관계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경주마처럼 내달렸다. 2018년의 봄. 박조이가 또다시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지난번이 집 때문이었다면 이번엔 돼지갈비 때문이다. 그렇다. 고작 돼지갈비 때문이다. 지난번이 당혹스러움이라면 이번엔 코웃음 수준이다. 


 그날은 정말 이상하게 돼지갈비가 너무 먹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그렇다. 나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자고 싶으면 바로 자야 하는 사람이다. 그게 행복인 사람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월급은 내가 이 두 가지를 포기한 대가였다. 여하튼 그날은 정말 돼지갈비가 먹고 싶은 날이었다. 삼겹살도 아니고 차돌박이도 아니고 돼지갈비여야만 하는 그런 날이었다. 미팅 차 강남에 나왔다가 박조이와 둘이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박조이는 이 근처에 맛있는 돼지갈비 골목이 있는데 저녁으로 돼지갈비를 사주겠다고 했다. 삼겹살도 아니고 차돌박이도 아니고 돼지갈비를 사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날 그녀가 사준 돼지갈비를 돼지처럼 먹었다. 


 이런 게 기적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돼지갈비가 먹고 싶은 날에 돼지갈비 먹을래?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인생의 신비다. 이런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에겐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날 박조이는 1년 만에 다시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 셋의 단톡방에서 대뜸 계좌번호를 불러보라 하였다. 그래도 내가 너네보다는 상황이 나을 테니 생활비로 얼마라도 보태주겠다는 것이다. 퇴사하고 4개월이 지나도록 우리의 수입은 0원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주려고 그러시냐. 돈이 그렇게 많으시냐. 나와 스타워즈 아트는 느닷없이 다짜고짜 돈을 빌려주겠다는 박조이를 한바탕 놀려가며 낄낄거리다 우리 돈 있다고 몇 개월은 더 버틸 수 있으니 걱정 말라하였다. 


 나는 돼지갈비 때문이라 생각했다. 내가 너무 맛있게 먹었나 보다. 그 뭣도 아닌 거에 그리 기뻐하는 게 안쓰러웠나 보다. 혹여 돈이 없어 그런가 싶었나 보다. 짐작했다. 순식간에 돼지고기도 못 사 먹는 서른한 살의 무능력한 실업자가 된 것 같았지만 (어떤 때는 맞지만 어떤 때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또 안심이 되었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이번에도 당당하게 돈을 빌리러 다닐 수 있겠구나. 다 안되다고 해도 박조이한테 말하면 되겠구나. 나는 생활비라는 전쟁에 또다시 튼튼한 방어기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중도 퇴사자들의 연말정산 기간. 박조이는 세금폭탄을 맞았다. 작년에 이직을 두 번 하면서 미리 환급을 받아서 그렇다며 경제관념이라고는 지출과 저축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어쨌거나 박조이는 수백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에게 돈을 빌려준다 호기롭게 말하던 그녀는 정작 예고 없이 날아온 세금폭탄을 방어할 돈이 없었다. 당장 현금이 없어 할부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했다.  


 그런가 보다 흘려듣다 갑자기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자기도 얼마 없으면서 나와 스타워즈 아트한테 생활비를 보태준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할부 안된다 하면 말하세요. 돈 빌려드릴 테니까." 

이번엔 내 쪽에서 호기롭게 돈을 빌려준다고 했다. 나와 스타워즈 아트가 십시일반 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스타워즈 아트는 '그래요 서로 돕고 삽시다' 했고 박조이는 '푸하하' 웃었다. 


 사실 나는 조금 화가 났다. 누구에게 나는 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분했다. 왜 정말 필요한 순간 돈을 빌려준다는 사람은 나보다 없는 사람이거나 나보다 아주 조금 더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보다 엄청 많이 있는 사람이 빌려준다 하면 서로 부담도 없고 얼마나 좋을까. 어렵게 자신의 퇴직금을 내어준 내 친구도 자꾸만 돈을 빌려주겠다는 박조이도 그리고 돼지갈비를 돼지처럼 좋아하는 나도 우리는 서로에게 나보다 없는 사람이거나 아주 조금 더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 분했다.   


 박조이에겐 기꺼이 돈을 빌려줄 부자 친구들이 아주 많을 수 있다. 그리고 없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나이와 연차지만 그리고 또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씩씩거리며 분해하며 돈을 빌려준다 했다. 누구에게 빌리고 다녀도 최후의 보루로 우리가 있으니 당당하게 빌리고 다니라고. 실은 그 말이 꼭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사스러워 못했지만.    


 나는 빚이 싫다. 무서워서 싫다. 밤 길보다 무섭고 귀신보다 섬뜩하다. 빚은 꼭 갚아야 한다. 빚을 빚이라 여기지 않으면, 빚을 빚처럼 쌓아만 놓으면 언젠가 그 빚은 제값을 치르러 온다. 혼자 오지 않고 후회를 몰고 온다. 분명히. 


 "알아보고도 안되면 꼭 말하세요."

나는 그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번 더 강조해 말했다. 


 마음에도 빚이 있다면 꼭 갚아야 된다. 그런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에겐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9. 하루를 경영하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