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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Jun 15. 2018

11.한 달에 3번 월급 주는 여자

인생? 뭐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월급을 받을 때는 몰랐다. 매달 내 월급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연봉으로 책정될 때는 몰랐다. 이미 내 1년 치 농사가 정해져 있다는 걸. 월급도 연봉도 무의미해진 지금. 우리 셋 중 누군가는 월급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1년 치 농사를 걱정해야 했다.  


 재정관리는 내가, 서류관리는 스타워즈가 맡았다. 박조이는 긍정을 맡았다. 돈은 내년부터 들어오고 올해는 공부하는 해라는 말을 자꾸만 반복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이런저런 일들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는 상태였고 내년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지만 돈은 언젠가 들어올 터였다. 법인통장을 만들어야 했다.  


 미팅이 있어 다 함께 모인 날, 차일피일 미루던 법인통장을 오늘은 꼭 만들자며 세 명의 대표는 세 개의 인감을 들고 학동역 앞에 있는 은행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아무 은행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업자등록증 소재지의 은행으로 가야 한다기에 실패. 서류상 우리 사무실로 기재되어 있는 박조이 집, 그녀의 동네로 또다시 긴 여행을 떠나야 했다. 오후 3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 은행 업무 종료 시간까지는 한 시간 남짓. 그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조금 벅차더라도 오늘 만들어 버리자 합의를 보았다. 보는 사람은 하나도 재미없지만 하는 사람은 살 떨리는 아슬아슬한 시간 곡예. 굳이 왜 저럴까 싶은 3류 서커스단 같은 초초함을 지하철에 태웠다. 


 어릿광대짓은 열차가 달리는 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하나 차지한 자리에 돌아가며 앉아서는 작성되지 않은 서류를 수기로 채워갔다. 박조이가 남산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책받침 삼아 대표님들의 서명이 이어졌다. 그 사이 빈자리가 생겼고 우리는 달리는 사무실에 나란히 앉아 한숨을 돌렸다.  


 30여 분쯤 남겨두고 은행엘 도착했다. 10여 분쯤 차례를 기다린 후,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며 법인통장을 만들어 달라 했다.  


 "죄송합니다"

 여기서도 안된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수기로 적은 서류들이 문제였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렇게 펜으로 적혀 있으면 제가 이런 펜으로 마음대로 수정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런 거는 인정이 안돼요. 문서로 작성해서 주셔야 해요." 

 신입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 그녀는 유치원생 가르치듯 한 손에는 볼펜을 한 손에는 우리의 서류를 들고 친절히 설명했다. 용인에 사는 스타워즈가 이곳에 다시 오려면 왕복 4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무조건 오늘 끝낸다는 마음으로 다시 3류 서커스를 시작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있던 스타워즈는 포토샵을 켜고 마술사처럼 빈 여백의 서류들에 수기로 적었던 우리의 신상정보를 쓱쓱 채워 넣었다. 나와 박조이는 인쇄할 곳을 찾으러 나섰다. 나는 사자를 무서워하는 조련사처럼 허둥지둥 이었고, 박조이는 피에로처럼 웃으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시각이 3시 45분. 다짜고짜 길 건너편 부동산으로 향했다. 부동산 아주머니께 여차저차 상황이 위급하니 인쇄 좀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하니


"그건 곤란해요"

 하셨다. 오늘 도대체 몇 번째 거절인지 모르겠다. 발 길을 돌려 나오다가 부동산이니까 동네 지리는 빠삭하겠지 싶어 여기서 제일 가까운 인쇄할만한 곳을 알려달라 하니 바로 두 블록 밑에 서점이 있다고 했다. 4시라는 은행의 영업 종료 시간은 사자처럼 쫓아왔고 나는 냅다 뛸 수밖에 없었다. 서점에서 인쇄가 되는지 확인하고 다시 냅다 뛰어 은행으로 갔다. 3시 50분. 서류 작성을 마친 스타워즈를 끌고 다시 서점으로, 인쇄를 하고 다시 은행으로. 3시 58분. 겨우 시간을 맞춰 서류를 들이밀고 헉헉 숨을 고르니, 4시. 은행의 셔터가 내려갔다. 


 "죄송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난리를 쳤음에도 또 안된다고 했다. 이건 그냥 만들어주기 싫다는 거 아닌가. 괜한 의심을 하다가 냉정을 되찾고 찬찬히 살펴보니 방금 포토샵으로 만든 서류는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인쇄도 어떤 거는 가로로, 어떤 거는 세로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우리는 오늘 너무 많은 서커스를 펼쳤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오늘 꼭 만들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어떻게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니 한도 제한도 괜찮다면 일단 통장은 만들어는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태어났다. 우리의 비루한 통장이. 죄송하다고, 안된다고, 무리라고. 세상의 거부를 거부해가며 기어코 태어났다. 하루 100만 원 이하로만 이체 가능한, 내 개인 통장보다도 무용지물의 법인이라는 이름의 통장이. 우리의 대책 없음에 어느 정도 통달한 나는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월급 주기 편하겠네요. 욕심 없이 한 사람 당 한 달에 백만 원씩만 벌면요. 이거 원, 각자 삼백씩이라도 버는 날에는 한 사람한테 한 달 월급을 세 번은 주게 될 판이니"

 나는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가끔씩 신이 죽자고 들어주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말이 그랬다. 110만 원. 회사를 차리고 우리의 첫 월급이다. 너무 딱 떨어지면 정 없을까 조금 더 얹어준 게 10만 원인가 보다. 물론 직장인일 때 월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이지만 우리의 한도 제한 월급 시스템으로 보자면 이 돈도 한 사람 당 두 번을 나놔서 줘야 되는 돈이었다. 첫 월급을 지급하는 데에만 5일이 걸렸다. 


 세상 태어나 처음으로 나는 나에게 월급을 주었다. 퇴사 후 5개월 만에 내 계좌로 찍힌 파란색의 입금 표시. 그 작은 청신호에 나는 마냥 들떠 신나 하며 며칠 동안 함부로 쓰지도 못했다. 너무나 소중했다. 110만 원. 돈의 액수가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돈의 가치는 분명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숙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처음은 곧잘 비웃음거리가 된다. 3류 서커스단처럼 위태롭고 우스워 보인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이지만 세상은 그런 우스운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 간다. 우리의 처음이 비록 정답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대안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고. 세상이 돌아간다고.   


 작은 목표가 생겼다. 회사와 나 개인을 위해 좋은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왕이면 한 달에 세 번 월급을 줄 수 있는 재정 담당자가 되는 것.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야무진 목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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