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적게는 3명, 많게는 7명. 회사를 다닐 때 나는 팀에서 아주 작은 부속품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대체될 수 있고 여차하면 없어져도 무방한. 팀 역시 마냥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우리 팀 같은 팀이 또 여럿 이루어 만들어진 조직이 회사였고 우리 팀 역시 그 조직의 부속품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대체될 수 있고 여차하면 없어져도 무방한.
처음엔 내 직업에 대해, 커리어에 대해 나름의 이상과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맡은 일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믿었다. 그만큼 몰두한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내가 그만두면 회사에 큰일이 나는 줄 알면서.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는 잘 굴러갔고 세상도 잘 돌아갔다. 직장 생활 3년 차쯤. 회사의 생리를 완전히 이해한 나는 똥 싸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일부러 배우려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그리되었다.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나를 대체할 사람들은 이미 많으므로. 팀이라는 이름 하에 말이다.
신선한 생각은 보통 처음에 '탁' 전등불을 켜듯 떠오르고 깊은 생각은 서서히 모닥불을 피우듯 '스멀스멀' 떠오른다. 어떤 아이디어는 신선해야 맛이었고 어떤 아이디어는 깊어야 맛이었다. 당연히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가는 것은 후자였다. 그러나 공들인 거에 비해 결과가 시원찮을 때도 많다. 특히 여물지 않은 주니어 시절에는 더더욱. 그래서 나는 효율을 택했다.
이 회의는 오늘의 to do list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을 하다만 반쪽짜리 아이디어를 회의실에 들고 간다. 6명, 우리 팀이 둘러앉은 회의실. 아무렇지 않은 듯 모두 웃고는 있지만 그 애꿎은 웃음이 오히려 더 적막하다. 내 차례가 오면 별거 아닌 생각을 정말 별거 아니라는 투로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한 이유와 의도에 대해서 아주 그럴싸하고 장황하게 썰을 푼다. 그리고 짜잔, 그 반쪽짜리 아이디어를 공개한다. 어떤 이는 내 아이디어를 다단계 옥장판처럼 쳐다보고 어떤 이는 마지막 남은 잎새처럼 쳐다본다. 속고 또 속지 않는 혼돈의 카오스, 핑계나 다름없는 변론을 마침표로 노트북을 덮는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저는 여기까지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아무리 고민도 안 해봤으면서 그런 척하며 당당하게 팀원들을 바라본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이제 너희 차례야. 우리는 한 배를 탔잖아.' 그렇게 미처 정리되지 않은 나의 아이디어는 아주 공을 들인 탐스러운 빛과 모양의 고급진 똥이 되어간다. 자, 이제 누군가는 이 똥을 치워야 한다. 내가 쌌지만 우리의 똥이다. 팀이라는 이름 하에 말이다.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사람은 단 두 사람. 나보다 고민을 많이 한 사람과(대게 팀장급의 사람들이다) 바로 나, 본인이다. 운 좋게 나보다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이 이 똥을 한번 된장으로 만들어보자 마음먹으면 그때부터는 골치가 아파진다. 나는 카피라이터여서 비주얼보다 카피가 메인인 아이디어가 어쩔 수 없이 많았다. 그러면 비주얼에 대한 디벨롭은 스타워즈 같은 아트들에게 돌아갔다.
"이 카피에 비주얼 다시 고민해봐."
팀장의 한 마디에 똥 치우기에 가담된 사람들이 밤을 새운다. 내가 못한, 아니 안 한 나머지 반쪽의 고민을 대신해주기 위해서. 처음부터 내가 해야만 했던 그 고민을 위해서.
그게 효율이라 믿었다. 카피와 아트 명백히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나누어져 있으니 각자 자신이 잘 하는 거에 힘을 쏟으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그 사람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사람이 아트니까 비주얼은 알아서 해주겠지.' '이 사람이 팀장이니까 판단은 알아서 해주겠지.' '이 사람이 감독이니까 컷은 알아서 찍어주겠지.' '이 사람이 전문가니까 알아서, 다 알아서 해주겠지.'
내가 쏘아 올린 아주 자그마한 똥 덩어리는 여기저기 구르고 굴러 빅똥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빅똥을 보며 나는 그저 의아해했다. '이상하다... 왜 보람이 없지? 하긴, 광고주가 컨펌한게 다 그렇지.'
똥을 싸지 말아야겠다 결심한 건 부끄럽게도 얼마 되지 않았다. 회사를 차리고 아트 하나, 카피 하나, 팀장 하나의 인력 구조로 일을 하다 보니 누가 누구 똥을 치워줄 여력이 안되었다. 그게 누구의 아이디어든 자신의 안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끝까지 져야만 다른 사람이 고생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늘 하던 대로 카피에 대한 생각을 먼저 했다. 나는 카피라이터니까. 그렇게 카피에 대해 시간을 다 써버리고 비주얼은 그냥 대충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가져가 회의를 했다. 스타워즈 아트는 매 회의 후 내 아이디에 대한 비주얼을 새로 찾았다. 회의가 끝나고 내가 잠들면 새벽 5시나 6시쯤 정리된 파일이 스타워즈 아트에게서 와 있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몇 번 반복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똥을 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 뒤로는 생각의 순서를 조금 바꿔보았다. 명확한 콘셉트가 떠오르면 비주얼부터 찾았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레퍼런스를 찾거나 컷들이 생기면 그것에 맞춰 카피를 썼다. 비주얼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카피가 완성되었음에도 들고 가지 않았다. 시간이 배로 들었다. 시간을 들인 만큼 역시나 티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알아주는지, 일이 조금은 수월해졌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나, 본인. 내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이나 애착도 이전보다 강해졌고, 내가 찾아간 수십 장의 컷 중에서 스타워즈 아트가 한 컷이라도 건지면 나는 그게 카피를 잘 쓴 것보다 보람 있었다. 그래도 똥은 안 싼 거 같아서. 팀원의 수고를 10분은 덜어주었다 생각할 수 있어서.
퇴사한 후 새로운 취미인 그림 그리기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내가 잘하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못해도 스스로 완성해 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는 도화지를 사고, 누구는 밑그림을 그리고, 누구는 색을 칠해야 했다면, 과연 재미있었을까. 내가 그린 그림이라고 느껴졌을까.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 누구의 마음에도 들지 않는 불구의 형체가 슬며시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건다.
"엄마, 네가 이렇게 나를 병신처럼 낳았잖아요."
최소한 내 선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전체를 그리고 난 다음 그 이상을 해줄 누군가의 손길을 바라야 하는 것이 팀워크의 기본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효율은 아닐까. 우리가 하는 일은 짧은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은 생산품을 만들어내냐의 싸움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마음에 드는 생각을 만들어내냐의 문제이다. 내 마음에 들지도 않는 생각이 다른 사람 마음에 들어가길 바라는 건, 그건 진짜 다단계 옥장판 외판원 같은 심보다.
도화지에 삐뚤빼뚤한 연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걸 감추기 위에 초록색과 조금 덜 녹색인 초록을 섞어 칠해보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망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쉽게 찢어버릴 수가 없다. 망한 이 그림마저 너무나도 내 것이기에. 그저 뒷장에 다시 그려볼 뿐. 이번에는 고심하며 아까와는 다른 색깔들로 골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