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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Aug 16. 2018

14. 회사 친구

인생? 뭐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전 직장에 와 있다. 우연히라도 들리고 싶지 않았는데. 아아, 끔찍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쌍욕 하고 싶다. 익숙한 건물 불편한 공기.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거라 호언장담했건만 이런 식으로 들어오게 될 줄이야. 프로그램 제목은 정말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 박조이, 스타워즈. 우리 셋 앞에 엄대장이 앉아 있다. 국장이나 됐으면서도 아직도 분홍 티셔츠에 검은색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다. 여전한 사람. 그 오른편으론 권선생이 있다. 몇 주 전에도 나와 같이 불족발을 뜯었다. 우리 다섯은 전, 전 회사에서 한 팀이었다. 꽤 오랫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주며 함께 일했다. 우리 앞에 앉은 이 둘을 져버리고 택한 회사가 바로 여기,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였다.


 다섯이 함께 일했던 회사는 대표이사가 바뀌면서 급속도로 망해갔다. 예견된 수순이라 그리 놀랍진 않았다. 팀장이었던 박조이는 여기저기 팀으로 옮길만한 곳을 수소문했다. 나와 스타워즈는 그녀와 함께 원래 이 자리에 있던 회사에 입사 할 수 있었다. 우리 둘의 몸값은 싸다는 게 메리트였다. 어느 회사든 대리급이 가장 뽑아 먹기 좋은 연차다. 일은 일대로 시키고 돈은 작게 줄 수 있는 마지노선의 직급. 몸집이 큰 부장급의 엄대장과 권선생까지 데리고 가는 건 박조이에게도 무리였다. 서로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해했지만서도 어쩐지 우리 셋이 한꺼번에 움직이게 되면서 그 둘을 놓고 가는 꼴이 돼버렸다. 그게 미안했다. 아마, 나와 스타워즈보다는 팀장이었던 박조이가 남은 둘에게 가장 미안했을 것이다.  


"엄대장이 뭐라고 한 줄 알아? 내가 미안하다니까 같이 못 데리고 가서 미안하다니까 너랑 스타워즈에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더라. 너무 바보 같은 사람이야. 너무 착하고 너무 바보 같아..."


 그날 박조이는 정말 많이 울었다. 나는 옆에서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담배만 피워댔다. 집에 가는 길 혼자가 되어서야 마음이 먹먹해져 울컥울컥 하는 걸 몇 번이나 참았다.


 엄대장은 원래 나와 스타워즈의 팀장이었다. 한 번은 내 생일이었는데 대뜸 "뭐 해요? 생일인데, 일 없으면 퇴근해요."라고 해서 한시인가 두시에 퇴근을 하고 남자친구와 남산에 가 남산돈가스를 먹었다. 연말 체육대회 종목 중에 탁구가 있었는데 그는 야근을 끝내고 밤 12시까지 나에게 탁구를 가르쳐줬다. 나는 그 해 탁구 여자부 1등을 했다. 일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휴식기가 찾아오면 나는 엄대장, 스타워즈와 셋이 점심시간 삼십 분 전에 스르르 나가 밥을 대강 먹고 피시방으로 달려가 오버워치를 하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쯤 지나서야 또 스르르 회사로 돌아오곤 했다. 외부미팅을 하고 들어온 척 어설픈 연기를 해가며.... 다시 오지 않을 호시절이었다.


 박조이가 우리 모두의 팀장이 된 건 엄대장이 그녀에게 나와 스타워즈를 어찌 보면 부탁했기 때문이다. 빨리 클 수 있는 아이들이라고 자신이 데리고 있는 것보다 좀 더 배울 게 많은 팀장 밑에 있는 게 좋지 않겠냐고. 그리고 그 자신도 팀장직을 내려놓고 우리와 함께 박조이의 팀원이 되었다.


 엄대장의 부탁 아닌 부탁으로 팀 개편이 되면서 권선생도 만났다. 당시 나는 매년 3주씩 휴가를 내고 혼자 유럽여행을 가는 게 인생의 낙이었던 시기였다. (외국계 회사라 가능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로 호시절이었다. 정말로...) 그 해에는 스페인 여행을 준비 중이었는데 권선생이 자신은 유럽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니, 여행을 그렇게나 많이 다니면서 말이 되냐고 물으니 혼자서는 무서워서 그리 멀리 못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면 같이 가세 했더니 우리는 어느새 진짜로 스페인을 같이 가고 있었다.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2주 동안 한 방 한 침대를 쓰며 스페인을 돌아다녔다. 혼자 다닐 때는 길을 잃으면 모든 게 내 탓이요 딱히 화가 나지 않았는데 둘이 여행을 다니니 쟤 탓인 거 같아 순간순간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괜히 짜증을 내거나 화풀이를 했다. 그러다가도 빠에야를 한 입 베어 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깔 웃음이 났다. 이 맛있는 걸 함께 기억할 이가 있다는 게 기뻤다. 물고기도 아닌데 파도 타듯 오락가락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어이없어 했다. 그러면 나는 헤헤 거리며 그녀를 놀린다거나 기분을 풀어주려 재롱부린다거나 하다 보니 여행이 끝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토요일 필라테스 반을 같이 수강했다. 일주일에 6일이나 만나는 사이였다니. 엄연히 직장 상사인데. 나보다 7살인가 더 많고 연차도 그만큼은 차이 나는 회사 사람하고 말이다.  


 팀이 해체되고 권선생은 1년 가까이를 백수로 지내다 한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그게 하필 우리가 이직한 회사와 같은 건물이었다. 그러니까 나와 박조이와 스타워즈가 더 이상은 못 해먹겠으니 차라리 우리도 차립시다 하게 만든 전 회사의 건물. 권선생 네는 1층 우리는 위에 위에 층. 서울이 다 거기서 거기라 해도 이 업계가 아무리 좁디좁다 해도 참으로 희한한 재회였다. 


 얼마 있다 우리 셋은 퇴사를 했다. 또 얼마 있다 우리 전 회사는 이사를 갔다. 또 또 얼마 있다 그 빈 사무실로 권선생 네 회사가 이사를 왔다. 그것도 엄대장과 함께. 권선생의 추천으로 엄대장은 기획과 제작을 모두 디렉팅 하는 조건으로 스카우트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엄대장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일을 주겠다고. 우리 셋이 나온 빈자리를 그 둘이 채우고서 우리에게 일을 주겠다고.


 그래서 앉아 있다. 이 건물, 이 자리. 헤어져야 했던 이유가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게 하늘의 뜻인지 우리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지만 다시 만났다 또 이렇게. 다섯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일 얘기를 하는 듯하다가 샛길로 빠져 너나 할 거 없이 또 헛소리를 해댄다. 나와 스타워즈가 이제 더 이상 막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늙었다는 거 말고는 변한 게 없다.        




 박조이든, 엄대장이든, 권선생이든 어느 시점 이유로 나는 그들을 내 직장 상사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윗사람 가리지 않고 들이받는 불도저급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은,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의 태도다. 그들이 내게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상급자라는 지위나 권력을 행사하는 부류의 사람들,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에게만 목소리 큰, 내가 제일 경멸하는 사람들.


 거의 매일을 보아야 하지 않는가. 가족보다, 내 얼굴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한다. 그래야 월급이 나오니까. 꼴보기 싫은 상사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나는 죽을 것 같았다. 싫은데 애써 웃고, 뒤에서 날 욕 한 걸 아는데도 같이 밥숟가락을 뜨고. 그게 너무 끔찍해서 3개월 동안 퇴근하고 집에 오면 회사에서 먹은 걸 죄다 토해내기도 했다. 작정하고 나를 괴롭히는 상사 앞에서 인턴 나부랭이였던 나는 한없이 나약해졌다. 군대를 다녀오진 않았지만 군대를 가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어져 이걸 버티고 살아돌아온 남자 동기들에게 더 친절해야겠다 마음먹을 정도였다.           


 직장 생활이 배경이 되는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15초짜리 짧은 광고에는 늘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1. 김사원, 최과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껏 과장된 몸짓으로 술잔을 채운다. #2. 학교에서 열심히 볼펜을 잡던 손이 자연스럽게 탬버린을 잡는 손으로 오버랩 된다. #3.오늘도 최과장의 히스테리를 꿋꿋이 참아가며 업무를 보던 김사원이 이유 없이 날아오는 인신공격에 무너져 화상실에 숨어 조용히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내 몸 내가 챙기자, 나를 응원하자 따위의 메시지가 나오고 제품이 나오면 직장인을 위한 광고 완성! 

 


 지겹다. 지겨워. 내가 자라는 30년 동안 이 진부한 장면들은 안타깝게도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휴대폰은 2G에서 5G가 되고 손바닥만 한 컴퓨터를 모두가 한 대씩 휴대하고 다니는 이런 시대에... 기계보다 중요한 게 사람인데 왜 사람은 업그레이드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직장 상사와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피시방 가서 컵라면에 게임 한 시간 때리는 장면도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상사가 특이 케이스나 한낱 운으로 치부되지 않는 날이 모두에게 오기를 바란다. 일의 효율 때문에 부여한 직책을 자신의 무기라 믿는 사람들. 폭염과 함께 제발 사라져라 사라져. 가뜩이나 더워죽겠는데 힘없는 사람 괜히 화병 나게 하지 말고.  




 스페인을 다녀오고 얼마 후, 과자며 기념품을 건네기 위해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이 핸드폰 속 스페인 사진들을 구경하다 반짝이는 타일들이 유난히 예뻤던 스페인 광장에서 권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묻는다.  


"같이 간 이 여자는 누구야?"


"아~ 친구야 친구, 회사친구."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너무나 진심이라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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