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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Sep 08. 2018

꿈에

꿈꿨을 때 쓴다 


 일 년 전 퇴직을 고민하던 시기에 오랜만에 대학 동기 녀석을 만났더랬다. 만남의 주제는 파혼, 주제의 원인은 도박이었다. 결혼 자금을 도박으로 모조리 날렸다고 했다. 왜 그랬냐 물으니 그 친구 하는 말이 회사를 다니기가 너무나도 싫었다는 것이다. 결혼은 해야 되는데 돈은 없고, 돈은 없는데 회사는 다니기 싫고.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나름 투자를 했는데 빈털터리가 되어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여자친구와도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는 그런 가슴 아픈 도시 남자 이야기. 


 에라이 등신 새끼야 욕을 하다가 그래도 아직 젊다는 게 어디냐 위로를 하다가, 술에 취해 왔다 갔다 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자 마음먹었다. 그 친구가 날린 돈이 내년쯤 내가 받게 되는 연봉 정도였는데 회사 다니기 싫다고 도박으로 몇 달 만에 그 돈을 날린 애도 있는데 한 일 년쯤 내 연봉 나한테 투자한다 생각하고 직장인 말고 이것저것 딴짓 좀 해보는 게 뭐 그리 벌벌 떨 일인가 싶었다. 도박에 비하면 참으로 건전한 투자가 아닌가.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내 명의의 회사를 차리고 얼마 후, 꿈에 그 친구가 나왔더랬다. 길거리에서 조금 시들었지만 아직은 쓸만한 빨간색 꽃 한 다발을 들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하며 무슨 꽃이냐 물었고 그 친구는 이제 필요 없어졌다며 꽃을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나는 아까운 마음에 너에게 필요 없으면 내가 갖겠다며 바닥에 떨어진 빨간 꽃다발을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뱃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더니 볼 일이 급해져 안절부절 뒷간을 찾았다. 한 건물로 들어가 변기를 보고 안심하려는데 아니 글쎄 이놈의 변기가 고정이 되어 있는 게 아니어서 발로 툭툭 건드리면 저만치 도망가는 게 아닌가. 큰일이다 나는 곧 똥이 나올 거 같아 죽겠는데. 도망간 변기를 또 발로 툭툭 차서 바닥에 뚫려있는 큰 구멍에 겨우 다시 맞춰서 볼일을 보았다. 시원하게 일을 처리하고 물을 내렸는데 망했다 똥이 변기에서 폭죽 터지듯 튀어 올라 사방으로 흩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친구에게서 주워온 빨간 꽃잎에 샛노란 똥물이 튀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친구에게 문자로 꿈을 소상히 적어 보냈다. 친구는 별 웃긴 꿈을 다 듣는다면서 한참을 껄껄 거리다 "이야 악어야, 너 돈 많이 벌겠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 생각엔 빨간 꽃과 똥이 돈을 상징하는 거 같다며 자신은 도박으로 돈을 땅바닥에 버렸고 너는 회사를 차려 그 돈을 갖는 게 아니냐. 근데 거기에 똥물까지 튀었으니 그 돈이 불어난다는 해석이었다. 음... 뭔지 모르겠지만 꽤 일리 있게 들렸다. 그제야 나는 네가 도박해서 거지가 된 게 내가 회사를 차리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하였다 설명하니 그러면 자기가 해석한 꿈이 더욱 맞아떨어진다며 나의 창업을 되려 응원해주었다. 돈 잃고 여자도 잃은 마당에. 등신 새끼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진정한 친구였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내가 진정 성공해 건물을 세우면 지금 받는 연봉으로(등신이지만 나름 대기업에 다닌다) 우리 회사 수위를 시켜주겠노라 약속했다.   


 한껏 기분이 들뜬 나는 꿈의 내용과 친구의 해석을 박조이에게 아주 열심히 열심히 설명했고 우리가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겠다며 좋아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허상을 붙잡고 그 순간만큼은 절실히 그것이 사실이라 믿으며.


 며칠 시간이 지나 들뜬 마음이 가라앉자 내 친구만큼이나 나 자신이 짠해졌다. 친구의 도박에 용기를 얻어서라도 나는 회사라는 굴레를 벗어나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나 보다. 전 재산을 잃은 사람에게 용기를 얻어야 할 만큼 나도 꽤 절박했나 보다. 


 회사를 차리고 반년이 지났다. 이 꿈은 지금까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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