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의 컨펌 방식은 꽤나 민주적이다.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아이디어를 보고 누구의 어떤 아이디어가 좋았는지 투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가장 많은 투표를 얻은 아이디어 순으로 시안으로 개발해 클라이언트에게 들고 간다.
셋이 처음 만났던 회사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통이자 나름 이 업계에서는 획기적인 프로세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종 컨펌의 결정권은 언제나 팀장인 시디(Creative Director)에게 있다. 팀원 전원이 싫어하는 아이디어라도 상관없다. 팀장이 좋다고 하면 그게 시안이 된다. 팀장 본인의 아이디어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밤새서 생각했지만 탈락한 아이디어들이 그 아이디어에 비해 무엇이 문제인지 꼬집어 주는 팀장은 많지 않다. 마감은 스키니진만큼이나 타이트하고 피드백은 미니스커트처럼 칼 같다. 도통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조이는 시디계의 이단아다. 팀원들의 생각을 어쩔 때는 정말 집요할 정도로 꼬치꼬치 캐묻는다. 가끔 스타워즈가 우주로 둥둥 날아갈 듯한 날것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이 둘의 대화는 한편의 수사물이 된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지금 니 머릿속에 다 있는데 표현이 안된 거지? 그래서 그림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그렇다면 이 레퍼런스는 안 맞지 않을까?"
집요한 물음 뒤에 따라붙는 끈질긴 대답. 핑퐁 하듯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둥둥 떠 있던 아이디어가 어느새 윤곽이 잡혀 다음 회의 때는 꽤나 근사한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렇다. 디벨롭(develop)이다.
전 직장에서 이런 회의를 처음 겪어본 동료들은 신기해했다.
"자자, 아이디어 다 펼쳤으면 하고 싶은 아이디어에 자기 이름들 쓰세요"
박조이가 담배를 피우러 간 사이 남은 팀원들은 마음에 드는 것에 사인을 한다. 유형들도 다양하다. 자신의 아이디어에는 투표 안 하는 양심족, 자신의 아이디어에는 꼭 투표하고 보는 셀프족, 복수 투표가 가능해도 한 개 이상은 하지 않는 소신족, 큰 고민 않고 잽싸게 투표하고 박조이를 따라 담배를 피우러 가는 직관족. 그렇다 이건 나다.
득표 수가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우리 팀이 미는 아이디어로 선정한다. 쇼미더머니급은 아니지만 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최다 득표를 하기도 한다. 물론, 시디의 권한으로 떨어진 아이디어를 살리거나 최종 결정을 뒤집을 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팀원들의 동의하에 이루어지고 우리는 이것을 민주독재라 불렀다.
확실히 호불호가 갈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빠짐없이 듣고 투표를 하고, 또 투표를 한 이유까지 들어야 회의가 끝난다. 회의 시간이 당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다. 직책이 높은 차부장급의 사람들은 시디뿐 아니라 햇병아리 인턴에게까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평가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리니 부담감이 커진다. 기존의 회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불호로 기울어진다.
분명 단점이 존재함에도 우리가 이 방법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렇게 회의를 해야 내가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납득을 해야 다음번 회의에 디벨롭된 아이디어를 가져갈 확률이 높아진다. 날것의 아이디어를 스스로 디벨롭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돼지저금통에 동전 쌓이듯 실력이 쌓일 확률도 높아진다. 설령 그 아이디어가 팔리지 않는다 해도.
나는 컨펌 투표제의 수혜자다. 일에 있어서는 효율을 가장 우선시하는 나이지만, 그래서 의미 없는 회의 시간을 저주하는 나이지만, 이런 회의 방식이 개인으로 보아도 더 이롭고 팀으로 보아도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팀원으로서 역량을 발휘할 시간을 앞당겨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납득.
얼마나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는 이 두 글자에 달렸다. 한 회사에서 이직하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건 그 회사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 많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게 사람이든, 연봉이든. 납득이 안되면 머물 수가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학창 시절 내겐 교사와 스승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었다.
"모르면 외워"
교사다. 학교를 직장으로 두신 이런 분들에게는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로 시작되는 노래가 어울리지 않는다. 달달달 무식하게 암기했던 과목은 덕분에 만점이었지만 조금만 응용된 문제가 나와도 나는 풀지 못했다. 납득하지 못한 문제풀이의 생명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성인이 되어 회사로 장소가 바뀌자 그 말은 이제 이렇게 디벨롭되어 쓰이고 있었다.
"까라면 까"
정말이지 정강이를 까버리고 싶다.
무작정 암기해서 푸는 문제보다 어떻게든 스스로 이해해서 푸는 문제가 훨씬 재미있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에너지가 소모가 더 크다 해도 말이다. 우리가 회사를 차리면서까지 어떻게든 셋이 함께 일해보고자 이리도 부단히 노력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재미'에 있을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일하는 게 가장 재미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
이해고 나발이고 암기해서 더 많은 문제를 풀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단아로서, 청개구리로서, 어쩌면 또라이질량의 법칙의 주인공들로서 더 이상의 피해를 끼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직장을 옮기는 건 피해를 옮기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회사를 차린 건 그런 이유다. 우리가 최고여서 잘 나가서 자신감이 넘쳐나서가 아니라.
재미있게 일하기 위해서 납득하고,
납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투표할 것이다.
오늘도 또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