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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Sep 06. 2018

꼭 한 숟가락을 남긴다

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꼭 한 숟가락씩 남겼다. 어차피 다 아는 맛이니 별다른 욕심이 나지 않는다. 적당히 배가 차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한참 다이어트한다고 별의별 생난리를 치던 대학생 때였는지, 부모의 관심이 고파 일부러 입맛 없는 척하던 학창 시절이었는지... 본가에 가면 엄마는 내 밥을 새 모이만큼 퍼준다. 어차피 남길 거 아니까 차라리 모자라게 먹고 더 달라고 하는 걸 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인듯하다.


 외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그릇을 싹싹 비운다. 배가 불러도 위를 늘려 음식을 꾹꾹 입속으로 눌러 담는다. 혼자 나와 살다 보니 그 밥 한 숟가락 버리는 것도 아깝고 다 돈이 다 싶어 정말 맛있게 비운다. 그리고 외식은 늘 있는 일은 아니니 지금 안 먹으면 이 음식 또 언제 먹을까 싶어 의지가 생긴다. 먹어야겠다. 더 먹어야겠다. 다 먹어야겠다.  


 최근 남자친구가 일자리를 잃었다. 알바로 일하던 가게가 없어진 댔다. 망한 거다. 고작 몇 개월 일했을 뿐이지만 관심사나 나이대가 비슷해서인지 일하던 사람들끼리 꽤나 돈독해졌다. 다시는 함께 일하지 못할 거란 아쉬움이 회식으로 이어졌다. 거의 매일을 술을 마셨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쁘고, 나이도 어리고  그래서 나보다 자유로운 영혼들. 나는 그게 불안했다.


 우리는 연애 5년 차로 자신의 행방에 대해서 문자나 전화로 서로에게 꼭 알리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연락의 공백이 집에서 각자 작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2시간을 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러 왔다. 밥 먹고 카페에 왔다. 요즘 코인 노래방이 유행이라 가보려 한다. 피시방에서 잠깐 머리 좀 식히겠다. 뭐 하냐고 상대방이 궁금해하거나 묻기 전에 먼저 말해 걱정을 덜어준다. 흉흉한 이 세상 둘 다 자취하며 혼자 살다 보니 그리되었다. 회식이 릴레이처럼 이어진 이 일주일을 제외하고는.


 처음에는 그래도 아주 띄엄띄엄 문자의 답이 왔는데 나중에는 아예 답이 없거나 전화를 해도 받질 않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냥 노느라 정신이 없나 보다 하면 될 것을 나는 또 정신 나간 여자처럼 전화기를 붙들고 계속 전화를 해대다가 장문의 문자를 남겼다. 아주 길게 내가 지금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를 자세히 서술하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금 전화를 받지 않으면 너는 크게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니 확인하는 즉시 답장을 하라' 같은 얄궂은 협박이다.


 남자친구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미안한 일은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반복되었다. 처음이었다. 이 사람과 5년간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버려진 기분이 든 적이. 내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몹쓸 일을 당해도 지금 이 사람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이 사람에게 이제 아무런 영향력이 없구나. 이 사람은 내가 지겨워졌나 보구나. 새로운 사람들이 더 즐겁구나. 나는 헌 것이구나. 잊혀지는구나.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내가 일방적으로 혼내다가 기운 빠져 수그러들기를 반복하면서가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심신이 지쳐 멍한 상태로 집에서 혼자 밥을 먹다 또 여느 때와 같이 한 숟가락을 남겼는데... 그게 나 같았다. 그 남은 밥 한 숟가락이. 이미 다 아는 맛, 굳이 욕심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찜찜해 일단 냉장고에 넣어뒀다 생각나면 꺼내게 되는 영양가 없는 서른 넘은 여자. 음식은 냉장고에 보관이라도 되지 나이는 그런 것도 없다. 어디다 맡겨둘 수도 없고 꽁꽁 얼려지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부지런한 일은 끊임없이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며 나이에 맞게 노화하는 일뿐이다.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당시 친구 관계도 하는 일도 다 의욕이 없던 터라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나는 밥 한 숟가락을 남겨 놓고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엉엉 울었다. 얼마간 온 힘을 다해 얼굴이 시뻘게 지도록 울고 또 울었다. 이런 혼신의 눈물이라면 노년에 감초 배우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온갖 설움을 두 눈에 고이 모아 있는 힘껏 발산하고 나니 이내 허기가 졌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았고 실행으로 옮겼다. 밥을 먹는 것. 남은 밥 한 숟가락을 꾸역꾸역 입으로 가져가 잘근잘근 단 맛이 날 때까지 오래오래 씹어 먹었다. 먹기 싫어 남긴 밥이 정말 달고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물 한 모금 마셔주니 다시 속이 든든해져 얼른 일어나 코를 훌쩍이며 설거지를 했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왕 울고 싶은 날에는 힘껏 울어야 한다. 노년에 감초 배우 역할 정도는 따 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그래야 입맛도, 생활도 돌아온다.   




지금은 잘 지냅니다 누구와 무엇을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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