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Oct 14. 2018

꿈에

꿈꿨을 때 쓴다 

 #절에 간 나는 스님을 꼬신다. 꼬리를 치는 나를 본체만체하며 점잔을 빼던 스님이 끝내 끓어오르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나를 덮치려 든다. 나는 이때다 싶어 날름 도망친다. 도포 자락에서 방망이처럼 부풀어 오른 고추를 달랑거리며 스님이 나를 쫓는다. 우스꽝스러운 둘의 달리기를 큰 스님이 지켜보고 서있다. 나는 그 가짜 중생의 위선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비웃음을 입꼬리에 달고 저만치 달아난다.

 


#나는 전지현이다. 내 앞엔 수지가 있다. 수지는 나를 동경하고 좋아한다. 나는 수지가 나를 동경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한다. 내 앞에 얼굴을 붉히고 있는 수지가 귀여워 나는 그러니까 전지현인 나는 수지가 입고 있는 하늘거리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어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수지를 재미있어한다. 전지현인 나는 수지를 희롱한다. 



#여름 더위가 한 창일 때 첫 번째 타락한 중 꿈을 꾸었다. 제에서 하루를 묵은 날 두 번째 전지현 꿈을 꾸었다. 이렇게 요상하고 생생한 꿈은 종종 박조이에게 투사를 부탁한다. 그녀는 꿈 투사의 고수로서 꿈 모임을 다닌 전력이 있다.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어떤 의미인지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그 또한 요상한 모임. 옛날에는 별 희한한 모임에 다 나간다며 놀렸는데 몇 번 그녀에게 꿈 투사를 부탁하고 실로 기가 막힌 해석을 얻고 나선 태도를 달리하였다. 돈을 내고 들으라고 해도 들을 만큼 솔깃하다. 실제로 박조이는 돈을 내놓으라 하지만 한 번도 준 적은 없다. 



#인제를 다녀온 후 혼돈의 카오스에 빠진 나와 문자를 나누다 말고 박조이는 대뜸 팥빙수를 사주겠으니 자신의 동네로 오라고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귀찮다고 안 갔을 나인데 그날은 귀신에 홀린 듯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금 출발하겠노라 말했다. 



#팥빙수 집에서 박조이는 두 가지 꿈을 이렇게 투사했다. 네가 중을 꼬신 여자이기도 하고 능욕당한 중이기도 하다. 네가 전지현이기도 하고 수지이기도 하다. 너는 욕망과 욕구가 넘쳐 도대체가 중이 될 수 없는 사람인데 왜 중이 되겠다고 위선을 떠는 것이냐. 일이던 재능이던 전지현급은 되어야 만족하는 아이가 왜 아이돌인 수지 정도에서 만족하고 스스로를 희롱하느냐.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는 아닐 수 있겠구나.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면서 나도 나를 알아가는구나. 나도 나를 잘 몰랐구나 싶었다. 그러는 와중에 박조이는 나보고 계속 내 재능이 전지현일 수 있으니 잘 키워보는 게 어떠냐면서 계속 너는 전지현이다를 주입했다. 누가 들을까 무서웠다. 그리고 그 끝이 카피를 더 열심히 써야 한다. 돈을 많이 벌려거든 전지현급 카피를 써서 회사를 키울 생각을 해야 한다 하길래 또 막막해져서 아무 말 않고 역시 타락한 중으로 사는 게 나으려나 잠시 속으로 생각하다 집으로 왔다.   



#어떤 식으로든 사무실이 생기면 박조이를 상담사로 앉혀 돈을 벌어야겠다. 그녀는 타로도 꽤 볼 줄 아는데 어쩌면 이 편이 빠르겠다 생각하는데 그러면 또 사무실은 무슨 돈으로 얻지 생각하다가 역시 타락한 중이 나으려나 무한 반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6. 프랑스식 휴가에서 만난 인제 할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