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의 냉동배아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7시 20분쯤 병원에 도착했는데 벌써 내 번호표는 17번이었다. 언젠가부터 다른 선생님의 환자들을 왕창 맡게 되었다던 내 선생님을 만나려면 최소 2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것이 지쳐갈 때쯤,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채취한 20개의 난자 중 11개가 성숙한 난자였고 그중 9개가 수정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려 '5일 배양'된 상급배아가 6개나 동결되었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을 향해 박수를 쳤다. 선생님도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00님 이제 채취 안 해도 될 거 같아요."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5일 배양 배아라니.. 6개면 6개월 안에 나도 임신이 되는 걸까?' 오랜만에 웃으며 진료실을 나왔다. 그날부터 이식을 위해 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했다. 프로기노바 1알 또는 3알을 먹는 것은 과배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식 날짜가 잡히고 프롤루텍스라는 '일명 돌주사'를 시작했는데도 두 번째 이식이라 그런가 뭉친 배를 손으로 주무르며 마사지를 할 정도로 대담해졌다. 그저 빨리 이식일이 오길 바랐다.
드디어 채취하고 나서 거의 한 달이 걸렸던 동결 이식날이 되었다. 아침에 알람도 없이 눈이 떠지는 걸 보니 나는 이 날을 무척이나 기다렸던 것 같다. 병원에 도착해 얼마를 기다리자 내 이름이 불렸다. 옷을 갈아입고 착상에 도움을 준다는 '콩주사' 수액을 맞으며 이식을 기다렸다.
회복실에서 시술실까지 10걸음도 안될 것 같은데, 침대 채 옮겨지는 것이 약간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시술실로 옮겨졌다. 선생님은 배양실에서 넘어온 배아를 확대해서 보여줬다. 부화가 시작된 눈사람 모양의 배아였다. 유명한 난임 전문 병원이름이 '감자와 눈사람'인 이유가 있을 정도로 임신 확률이 꽤나 높은 배아였다.
1분도 안돼서 배아가 자궁 속으로 들어갔다. 근데 선생님은 초음파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갸우뚱하다가 "여기 반짝이는 거 보이죠? 잘 들어갔어요. 근데 자궁 내막이 조금 얇아 보이네요. 그래도 좋은 배아가 적당한 위치에 들어갔으니까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이식한 배아 사진을 넘겨주었다.
'자궁 내막이 얇다... 자궁 내막이 얇다...' 5일 전에 마지막으로 초음파를 봤을 때는 괜찮다고 하셨는데 얇다니... 몇 mm인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 회복실에 돌아와서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은 '얇은 내막'에 걱정이 앞섰다. 지난 인공수정 때 주기가 달라져 충분히 두터워지지 않았던 자궁이 비임신의 원인일지 모른다는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서는 인터넷에 혹시 나와 같은 상황이 있는지, 결과는 어땠는지 찾아보고 했지만 그저 확률의 차이일 뿐 확실하게 알 수 없었고, 비슷한 상황이지만 성공한 사례를 보아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챗gpt가 걱정을 내려놓으라며 한 마지막 말 때문에 검색을 멈추고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지금 나는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있다."
이 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고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또 이렇게 억겁의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