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눈사람 배아를 이식하고 매일 꿈을 꿨다. 임신한 친구가 돌아가며 나오다가 내가 임신하는 꿈까지 별별 이상한 꿈을 다 꿨다. 얼마나 네가 이번 기회에 간절한지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이식 7일째, 임테기 할까 말까 100번을 고민하다 이럴 시간에 해버리는 게 낫겠다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서랍 안쪽에 하나 남은 얼리 임테기가 보였다. 임테기를 꺼내고 종이컵에 소변을 담았다. ‘후..’ 덤덤하게 소변에 적셔지고 있는 임테기를 바라봤다.
‘두 줄..’
너무 나도 선명했다. 헉.. 두 줄을 막상 확인하니 6개월 만에 다시 임신을 했다는 사실에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유산의 아픔을 한 번 겪은 나는 무작정 기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아침을 준비하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임테기를 건넸다.
남편이 나를 꼭 안으며 기뻐했다. “요즘 00 이가 부쩍 잠이 좀 늘은 것 같은데 원래도 잠이 많아서.. 물어볼 수가 없었어. 잘 된 것 같아 다행이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피검사 당일 아침, 어두운 갈색의 분비물이 속옷을 흥건하게 적셨다. “설마 아닐 거야....” 걱정 속에 ‘임신 초기 갈색혈’을 검색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더 긴 것 같은 대기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선생님을 만났다. 아침에 피가 났다고 말씀드리니 “간혹 배주사를 맞고 있어도 수치가 뚝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오늘 타이유 주사를 맞고 가시고 피검사 수치 나오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후.... 뭐 하나 쉽지 않네”
집에 돌아와 병원 전화를 기다렸다.
“00님, 피검 수치 209로 잘 나왔어요. 그런데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너무 낮아서 내일부터 매일 병원에 내원해서 타이유 주사 맞아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 다시 내원해서 진료 볼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간호사님께 도대체 수치가 얼마큼 낮은지 물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다. 하지만 안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나는 그저 필기시험 하나 합격한 것 같았다. 아직 실기와 면접이 남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병원에 주사를 맞으러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