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귤이는 태어나자마자 나의 끊임없는 수다로 하루를 보냈다. 작고 조그만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나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내내 종알종알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은 손이 귀해 친정엄마도 나도 외동이라 늘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편이다. 그 와중에 태어난 아이니 나만의 보물이 아니라 온 가족의 보물이었다. 옹알이도 일찍 하고 앉고 기고 서고 했던 모든 과정이 다른 아이들보다 빨라 집안의 모든 관심사였던 그런 아이가 말을
안. 한. 다.
왜?
혹시나 듣지 못하는 건가 싶어 관찰부터 했지만 또 그건 아닌 것 같고 두 돌이 지나 옹알이처럼 단어를 띄엄띄엄 말하는 것을 보고 말이 늦된 건가 싶었다. 그러다 세돌이 지나고 언어치료를 하는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서너 시간 놀이와 상담 테스트를 번갈아 하면서 주의 깊게 관찰하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네요."
하루 종일 떠드는 엄마가 부담스러웠나? 아니면 또래 아이들보다 늦된 마음에 조바심 내는 엄마가 힘들었던 걸까? 끊임없이 아이의 반응을 살피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려는 엄마의 노력이 어쩌면 아이에겐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앞섰다.
"혹시 엄마가 일을 하시나요? 자기가 생각하기에 완벽하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문장보다는 단어위주로 얘기하는 것이고 또 말을 안 하면 엄마의 관심이 자기에게 쏠리니까 그것도 이유가 되는 것 같네요."
그때 나는 수학학원을 열심히 운영 중이었고 원생이 늘어서 막 재미를 붙여 학원에 매진하던 상황이긴 했다. 아이 때문에 오전 시간을 활용하려고 시작한 일이 적반하장이 되어 아이는 오전 중에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하원하면 반대로 내가 학원으로 출근할 시간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저 말이 늦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당분간 일을 그만두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줄이는 게 어떻겠냐는 상담선생님의 말씀에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솔직히 나는 일을 하면서 잠깐이나마 육아에 대한 어려움에서 해방감을 느꼈었기 때문에.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말이 늦된 것이 아니라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이가 선택한 행동을 엄마는 사랑으로 함께 보듬고 나아가야 하니까. 그게 엄마니까. 아직 어린 아가인데 엄마의 행동에 이토록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당혹감 보다 반대로 너무 일에만 매진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부터 하게 됐다.
그 이후로 잘하고 있던 학원을 정리하고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게 되었다. 초중학생 위주로 공부방을 하게 되니 자연적으로 아이들이 모이게 되고 내 딸에게는 아는 동네 언니, 오빠, 친구들이 생겼다. 나중에 초등학교 들어가서 전교에서 모르는 친구가 별로 없는 아이가 된 것은 득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했지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씻기 전에 욕조에 물을 받아 물놀이를 하곤 하는데 그날따라 아이가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처럼 눈을 계속 깜빡이는 게 아닌가.
어? 뭐지? 뭐야 눈에 거품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아이를 안아 눈을 살펴보고 얼굴을 닦아주며 다시 살펴봐도 이유 없는 깜빡임은 계속되었다.
결막염인가? 눈병인가? 당황한 나는 다음 날 안과부터 찾았다. 안과 원장님은 간단한 몇 가지 검사와 왔으니 기본 검진도 하고 가라고 하셨다.
검사 후 말씀하신 단어는 이름도 생소한
틱. 장. 애.
틱장애는 요맘때 아이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증세라면서 한 달 이내로 괜찮아질 것이며 그 이상 지속된다면 다시 한번 방문하라고 하시고 별 다른 조치 없이 진료를 끝내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장님 말씀대로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증세는 사라졌으며 틱행동에 대한 언급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하신 당부대로 모른 척했더니 자연스럽게 사라지긴 했다. 종종 긴장되거나 피하고 싶은 상황이 오면 틱장애는 어김없이 시작됐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횟수는 점점 줄고 지금은 아예 없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틱장애는 음성과 행동 장애가 있으며 동시에 발생될 때는 뚜렛증후군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엄마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한데 학부모의 길은 이보다 더 모진 길이 될 거라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내 딸은 조금은 더 나은 선택을 하며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까?
분명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최고의 선택보다는 아이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제와 조금 후회스러운 건 억지로라도 최고의 선택을 했어야 했나 싶은 마음이 약간, 아주 약간 있다. 그랬다면 조금은 다른 길을 갔을 거라는 욕심이 생기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