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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 한글, 호랑이굴 학교

by 채채

한글교재 첫 번째 한 권을 다 끝내놓고 그다음 과정을 사야 하는데 도저히 서점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음 끝내고 모음 시작하면 자음을 다 까먹고 다시 모음 끝내고 자음 시작하면 모음을 다 까먹고 이러다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그림단어장으로 시작하면 아이는 그림과 글자를 외워서 말해버리고 그림을 빼면 글자를 모르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그런 나만 갑갑한 날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지만 그땐 막막하기만 했다.


간신히 이름 석자 쓰게 되니 초등학교 입학식이 코 앞이라 마음만 앞서고 지지부진 의욕도 상실했지만 포기에 가까운 마음으로 학교를 보내고 나니 오히려 허탈함이 커서 그런지 한 글자라도 더 익혀 보낼걸 하는 아쉬움조차 남지 않았다. 사실 한글교재 전권을 다 끝내지 못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같은 교재를 2~3권 이상 사서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더니 조금씩 조금씩 효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그 효과가 얼마가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게 반복을 거듭할수록 나와 딸과의 관계는 애증으로 치달아 서로 눈치만 보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됐다. 언제 어느 때 그동안 배운 밑천(?)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살얼음판 같은 시기가 받아쓰기라는 첫 번째 큰 산을 넘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솔직히 내려놓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아이가 받을 마음의 상처가 신경 쓰여 기본이라도 하자 중간만이라도 하자 했던 게 초등 저학년까지 이어졌다. 의무교육까지 만이라도 열심히 다니고 그 이후 선택은 아이에게 맡기자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까지 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내 위주로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그땐 그랬다. 아이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싶었다.


한글을 익히고 나서 띄엄띄엄 아는 글자를 읽을 때의 기쁨에 비례해서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다름의 벽을 넘지 못해 왕따 아닌 왕따를 겪는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갔다. 꾀병은 기본이고 중간에 조퇴를 하는 날도 부지기수, 뜬금없이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픈 건 일상다반사. 주말은 해맑은 영혼이고 주중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내 딸은 그렇게 점점 학교생활과 멀어져 갔다.

나중에는 가위질을 잘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놀림감이 되어 어느 무리에도 끼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여러모로 어리고 만만하다고 생각한 아이들 무리에서 사회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못 읽어서, 가위질이 서툴러서, 글씨를 잘 못써서 내 딸은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음에도 다르다고 낙인찍혀 혼자 따로 노는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남자아이들 무리보다 여자아이들 무리는 학기 초에 어울리지 않으면 중간에 친해지기가 조금 어려운데 내 딸은 늘 그 허들을 넘지 못해 베프를 못 만들었다.


학교 밖에서 아무리 엄마인 내가 물심양면 뒷바라지를 해도 결국은 아이가 주도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학교는 유치원과도 학원과도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여러 시행착오와 오해와 아픔을 얼마나 더 겪어야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할는지, 또 나중에 커서 더 큰 사회에 나가면 힘들어하는 아이를 어떻게 지켜봐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한 학교생활이었다. 난독증이라는 걸 알게 될 때까지 그렇게 학교 안 타인으로의 생활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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