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 악몽.
당신은 악몽을 꿔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스무 살이 훌쩍 넘도록 악몽을 꿔본 적은 손에 꼽는다고.
한 번 잘 때 마다 꿈을 수십 개는 꾸지만
악몽을 잘 꾸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쪽은 깨어있는 게 더 악몽인 사람이었으니.
그런 내가, 악몽을 꾸게 되었다.
아니, 악몽도 꾸게 되었다.
아빠를 알콜 중독 병원에 보호 입원 시키고 난 후였다.
자의 입원은 본인이 원할 때 입퇴원이 자유롭다.
그것을 아는 아빠는 마치 호캉스를 가듯, 자신이 내킬 때 입원하고
또 자신이 내킬 때 퇴원해 우리를 불러 모아 선물을 안기고서 술을 먹으러 가기를 반복했다.
더 죄책감 없이 마음편히 술 먹기 위함임을 알았지만,
솔직히 그딴 것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동생들의 아빠 노릇만 잘 해준다면,
나는 그 사람이 새 아빠란 이름으로 내게 한 짓을 평생, 없던 일로 해줄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 날의 아침을, 또 그 날의 밤을, 또 또 그 날의 발언을,
마치 영웅담을 자랑하듯, 병원에 내 또래의 젊은 여자들이
도박과 술 때문에 많이 입원한다며 웃는 아빠를,
밥도 시간 맞춰 주고, 운동도 하고 규칙적으로 자고 병원에 있는 게 너무 좋다는 아빠를,
나는 최선을 다해 모른 척 했다.
그런 내게 아빠는 어떻게 했는가.
침대에서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지고서도,
그 사람은 슈퍼에 가 술을 사 오는 사람이었다.
그 동안 나와 내 동생들은 내 방에 헤쳐 모여
화장실도 맘 편히 가지 못한 채, 아빠의 동선만 귀로 쫓았다.
오늘도 술 먹고 우리에게 화를 낼까?
또 욕을 할까? 이번엔 때릴까?
동생들에게도, 내게 했던 짓을 할까?
아빠가 밤낮으로 취해 있는 동안, 내 삶이 까맣게 썩어만 갔다.
어찌나 하염없는지 너무 캄캄해서, 나는 아침에도 기나 긴 밤을 걸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오른 손목에 서른 줄의 유서를 새기곤 했다.
그 때 얼마나 많은 내 유서가 피고 또 졌는지, 나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빠가 우릴 죽이거나, 내가 아빠를 죽이거나.
그 둘 중이 아니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오랜 바램 대로 내가 죽는 쪽이라면,
그 땐 동생들과 아빠만 남는 것이 아닌가.
그럼 내 눈치 볼 필요도 없이 내 동생들의 삶이 나처럼 아빠에게 살해당하겠지?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뉴스에 나온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언젠가, 내가 아빠를 죽이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그 때가 되면 망설이지 않겠다고. 주저 없이 나 혼자 맞는 지옥을 받아들이겠다고.
아빠를 어떻게 딸이 병원에 가두었냐 묻는다면
이유라면 그게 이유였다.
마침 아빠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기회도 있었고.
내가 아빠를 위해 부른 119와,
아빠가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딸을 만졌다며 부른 112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딱 만났던 그 날 아침.
다행히도 나는 아빠를 보호 입원 시킬 수 있었고,
동생들은 맘편히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처의 기억은 꼭 흔적을 남긴다.
나는 매일같이 꿈을 꾸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마음을 준 지인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밖에서 애원하며 지켜만 봐야하는 꿈이나,
내가 성폭행을 당하는 꿈,
그리고,
아빠가 병원을 탈출해 우리를 찾아오는 꿈.
그럼 나는 앞에서는 아빠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아빠 몰래 병원에 전화를 한다.
아빠가 병원을 탈출했다고. 탈출해 우리에게 찾아왔다고.
제발, 아빠를 다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꿈.
결과적으로, 나는 아빠의 퇴원을 허락할 수 밖에 없는 좌절의 일이 있었고,
경매에 넘어가 그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
이제 그 꿈을 꾸는 일은 많이 없어졌지만,
우리에게는 항상성이라는 성질이 있다.
눈을 감으면 떠올리기도 싫은 것들이 생생하게 나를 괴롭힌다.
나는 잘 수 없었고, 동시에 깰 수도 없었다.
24시간을 깨어있다 24시간을 잤고,
36시간을 깨어있다 또 20시간을 넘게 자고,
48시간을 못 자다가 또 꼬박 하루를 자는 것의 반복이다.
소화불량과 두통 때문에 변기통을 붙잡고 새벽 내 토하는 것의 일상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있던 화병으로 인한 답답함과 흉통으로
나는 매일 바닥을 구르며 앓았다.
그 끝엔 꼭 몸살이 왔다.
27살이 되었지만, 나는 일할수도, 돈을 벌수도 없었다.
내게 일어났던 일을 모르는 척 하는 댓가로
나는 돌이킬수도, 돌아갈수도 없이 망가지고 부서졌다.
나는 아직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에.
스무 살을 훌쩍 넘기도록 가위도 눌려본 적 없던 내가,
밤마다 가위에 눌리고, 꿈에서도 고문을 당하며 깼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내 세상은 온통, 악몽일 뿐이다.
주홍 글씨는, 본래 죄지은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나.
그렇지 않으면, 왜 나는 그곳에 갇혀 구태여 이리 고통에 말라죽어야 하나.
#이소서 #에세이 #트라우마
2025. 0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