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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Aug 09. 2020

‘반백수’, 잠이 오지 않는다

반백수인 것도 모자라 나아질 기미도 없다 

실망스럽게도, ‘나만 빼고 다들 잘 사는 것 같다’라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번엔 우울하기보다는 화가 났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였지만 다행히 정신이 완전히 나가지는 않았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만 그런 것 아니야’라는 얘기와 ‘그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걱정 투성이야’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전혀 나아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쉽게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날 저녁부터 시작된 감정이 점점 더 격양되어 아무리 크게 숨을 내쉬고 진정을 하려 해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백수’라는 현재 상태에서부터 시작됐다. 반백수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반 정도는 일거리가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긍휼히 여겨주시는 분들 덕에 완전한 백수는 아닌 것이지만 한 달에 몇 십만 원을 벌어 전세자금대출 이자와 휴대폰, 교통비, 이 와중에 끊지 못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후원금까지 내고 나면 정말 단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모은 저금을 개인적으로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한 달에 몇 만 원씩이라도 빼서 써야 하는 상황들이 언제나 반복됐고, 그 몇 만 원 때문에 스스로가 참 초라했다. 


퇴사를 하고 나온 지 7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떤 곳도 취직은 되지 않았다. 나이는 많았고 경력은 애매했다. 무얼 하며 살지 정하지 못하고 흘러온 덕에 경력에 일관성이 없었다. 그 와중에 나이는 40대가 되어버려서 어딘가 취업을 하기에는 아주 어색해진 상태였다. 대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을 구할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에 두 번째로 많은 곳들에 지원하며 두드려봤지만 어느 곳도 열리지 않았다. 자애로운 선배가 추천도 해주었었지만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라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확인하고 나니 더 절망적이었다. 그 전까지는 막연한 추측이었지만 이로써 확인사살이 된 셈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사실 지금도 막막하다. 생전 누군가의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것 말고는 생계를 위한 벌이를 해본 적이 없어 다른 방법을 찾고 시도하는 것이 우주여행만큼이나 막연해 보였다. 더군다나 스스로 잘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일할 만한 기술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로또를 샀다. 당연히 되지 않았다. 누군가 로또마저도 꾸준해야 한다고 농담한 것 때문에 미련을 못 버리고 6개월이 넘게 매 주 사고 있다. 그마저도 돈이 없어 2천 원, 3천 원 정도의 투자가 최선이었다. 반백수 기간 중 가장 꾸준하고 열심인 대상이었다. 지난 당첨번호들을 엑셀에 넣어 분석도 해보고, 자동과 찍기를 섞어서도 해보고, 영험한 꿈자리를 간절히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 숫자 3개가 맞은 것 외에는 어떤 아쉬움도 들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당첨과 거리가 멀었다. 


취업을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프리랜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대체 뭘 할 수 있을지 1도 자신이 없었지만, 백수를 반백수로 만들어주신 감사한 분들을 떠올리며 그분들이 맡겨주신 일들을 기반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실마리는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 프리랜서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글을 쓰거나 디자인을 하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와는 달리 능력자인 것 같았다. 퇴사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보게 됐다. 그러다가 화가 났다. ‘다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 잘 난 거지?’ 아무것도 안하겠다고 만든 클럽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해보겠다며 만든 유튜브와 티셔츠가 대박이 나고, 여튼 다 힙하고 핫하게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며 잡지 커버 인물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다른 사람들은 퇴사하면 이렇게 되는 거였어? 난 대체 왜 이 모양인거지?’


오랜만에 잠이 안 왔다. 그들과 달리 무능력한 내가 싫었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어찌 해야 될지 전혀 모르고 있는 내가 싫었다. 이 와중에 로또 번호도 1개밖에 맞지 않았다. 집은 이사를 앞두고 있어 돈 들어갈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아내는 홀로 이런 스트레스들을 감당하느라 몸에서 보내는 이상 신호들을 힘겹게 견디고 있었다. 고양이는 2년 만에 처음으로 몸이 아파 병원에서 두세 차례 진단을 받았다. 동물병원은 보험 적용이 안 됐다. 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만 되뇌고 있었다. 




뭘 할 수 있는 걸까?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들어가서 몇 십만 원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걸까? 현재 소소하게 하고 있는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프리랜서 마켓 사이트에 등록을 해봐야 하는 걸까? 둘 다 사이트만 들락날락하며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뭐가 그리 망설여지는 것인지도 모른 채 또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새로운 ‘갑’들을 만나 조정과 수정을 반복하며 일을 해가야 하는 것을 생각보다 더 많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쓰기’와 관련된 프리랜서로 일하려면 일을 주는 사람의 요구에 맞춰 일정 조정, 내용 수정 등을 해나가며 ‘을’의 마음가짐을 잘 유지해야 하는데 그 과정들을 생각해보면 왠지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았다. 여태껏 그렇게 막돼먹은 광고주를 만난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감당하기 어려워하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편적인 아르바이트를 하자니 이전까지 일관성 없이 경력을 관리해온 것이 떠올랐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아르바이트, 저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다보면 또 시간은 흘러갈텐데, 더 나이가 들면 그 때는 어떡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지금도 아무런 기술이 없어 취업도 프리랜서도 못하는 판에 이런 식으로 시간을 덧붙이면 정말 인생이 누더기 같이 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던 <두낫띵클럽>, <모베러웍스>에 대한 분노는 부러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안다.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 당장 돈이 벌리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것을 부러워하며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사실 20~30대의 난 한 달에 몇 십만 원만 벌어도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으면 된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러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몇 십만 원으로 충분하지 않다. 돈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걸 하며 버텨야 한다는 것을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치기어린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또 하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창의적이지 않고 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잡지 커버가 될 만큼 흥미로운 꺼리들을 만들어내기에는 너무나 정형화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스스로의 직종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화는 좀 가라앉아도 답답함은 여전하다.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이 생각을 토해내는 것밖에 없어 이렇게 끼적이고 있는 것이다. 낮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멍하니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뭐라도 생산적인 것을 했어’라는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든 한 편의 글로 완결 지으려고 억지로 억지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 몇 시간만큼은 열심히 한 게 있잖아’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조차 하지 않으면 진짜 너무 허망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기에 이거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라도’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게 내 삶을 어떤 형태로든 조금은 더 낫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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