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도망쳐보다가 생각한 것들
자존감이 훅 떨어질 때가 있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급작스럽게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맞닥뜨리면 적잖이 당혹스럽다. 오전에 했던 일 처리의 미숙함이 쌓여있던 차에 오후에 의견이 한 번 까이고 저녁에 나를 10%쯤 좋지 않게 생각하는 말을 들어서 그런 걸까라고 생각해보지만 결국은 잘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뜬금없는 편두통 같은데 둘 다 일상을 멈추게 만든다. 머리가 한 번 지끈거리기 시작하면 뭘 어찌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곤 하는데 이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난다. 뭘 잘 못하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기가 싫다.
예전에는 이런 순간에 정말 만사 제쳐둘 때도 있었다. 심지어 몇 번 반복되고 나면 직장을 그만 두기도 했던 것 같다.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속으로 계속 출구를 찾는다. 어디부터 시작된 건지 되짚어보고 어디로 나가면 될지 탐색해본다. 아직 잘 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못나서 그런 거야! 다 관둬버리면 그만이라고!’라는 소리가 한 켠에서는 여전히 들리고 있다. 속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말대로 몇 번 해봤는데 결과가 썩 좋지 못했다. 후회는 않는다고 말은 하지만 별로 남은 게 없었다. 시간 대비 얻는 게 없었다.
도망가는 버릇이 들면 이렇게 골치가 아프다. 나를 제외한 그 누가 봐도 ‘대체 왜 저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끔 행동하게 되면 답이 없어진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이해를 못하니, 사실 나 자신도 납득이 잘 안 가니, 위로를 듣기도 어렵고 해결책을 듣기도 어렵다. 원인을 모르는데 적합한 방안을 적용하기는 소 뒷걸음쳐 쥐 잡는 확률 정도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이것 또한 일종의 중독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좋지 않은 쪽의 중독인데,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익숙한 패턴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후회하고. 어디 외국 영화에서 본 중독자 모임이라도 가야 하는 건지.
일단은 이 탐탁지 않은 습관이 내 삶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에 아주 작은 위안을 얻는다. 이제 방향을 돌릴 여지는 생긴 거니까. 단단한 책도 읽어보고, 말랑한 영화도 봐보고, 기도도 해본다. 어떻게든 스스로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떨쳐내는 게 우선이다. 타당하게, 무턱대고, 나도 모르게, 우쭐대면서, 그 무엇도 괜찮다. 어떻게든 일단 떨궈내면 된다. 두통약을 먹고 잠시 누워있던, 한 숨 푹 자던, 어쨌든 두통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금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잘 듣는 그 두통약처럼 무언가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어? 웬일로 우울해졌지? 그렇다면 이렇게 해주지’라는 매뉴얼 같은 것 말이다. 애석하게도 삶이 매뉴얼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확률이 제법 높은 것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위에 앉아서 상상만 하던 푸른 들판을, 탁 트인 바다를, 누군가 멋들어지게 만들어놓은 작품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이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두통 때문에 호텔방에만 누워있다가 여태 가보고 싶었던 거기도 못 가보고, 먹고 싶었던 그것도 못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또 언제 올 지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