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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채원 May 24. 2023

<한국범죄백서> 탄생

다큐 입문기 3.

1부 편집이 끝났다. 4월부터 휴일 없이 침대에 등으로 도장만 찍고 나와서 여기까지 왔다.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일해야만 했던 까닭은 3월에 촬영을 시작해서 3개월 동안 2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기획안을 보고서 재미있겠다는 마음으로 도와준 스태프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범죄백서>는 한국판 뉴게이트 필름을 표방한다. 뉴게이트 필름은 '뉴게이트 캘린더'에서 유래한 말인데, 영화판에 있는 사람들도 생소하게 여기는 용어로 알고 있다. 뉴게이트 캘린더는 영국 뉴게이트 감옥의 간수들이 죄수들의 행적을 편찬한 기록으로, 범죄에 관심이 있고 자극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런 범죄자의 행적을 영상기록으로 남긴 것을 뉴게이트 필름으로 부른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이 있다. 아마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은 좀 자극적인 성향의 <모던 코리아> 같다는 생각을 떠올릴 것 같다. 아카이벌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모던 코리아>의 영향이 짙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점을 부인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와 관련한 의견은 이미 여기에 글로 남긴 바 있다. 다만 우리는 <모던 코리아>처럼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부여받지 못했다. 외려 <PD수첩>보다 열악한 자원으로 여기까지 왔다. 아카이벌 다큐는 내가 원해서 택한 방식이기도 했지만, 저예산과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영상 구성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제작 방식이기도 했다. 피디라면 누구나 넷플릭스 같은 해외 거대 OTT의 펀딩을 받아 <나는 신이다>와 같은 다큐를 꿈꾸겠지만 말석의 한미한 피디에게 그런 과분함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평컨대, MBC만의 독특한 색깔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본다. 


이 다큐멘터리를 구상하면서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요즘 TV에서 범죄 관련 다큐멘터리나 토크 쇼가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피디들의 미의식은 <경찰청 사람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총성과 함께 연기가 퍼지면서 자막이 박힌다. 범죄 현장에 주목하고 사회적 맥락은 무시한다. 피디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해외 범죄 다큐멘터리를 맥락 없이 모방한다. 내가 가지 않았을 길이다. 나는 오히려 아카이브를 다루는 만큼 전통에 충실하려고 했다. 영상구성은 70년대 일본 르포르타주, 임협물, 찬바라 영화 그리고 70년대 미국 크라임 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특히 <Kojak>, <Street of San Francisco>, <Rookie>, <S.W.A.T>의 영향이 짙다. 2부는 유호프로덕션 등 한국 에로물에서 차용한 부분이 있다.) 강렬한 타이포와 슬로건 식의 효과는 일본에서, 분할화면과 음악은 미국에서 차용해서 한국의 사회 역사적 맥락에 접목시킨 삼국 대중문화의 혼종물을 만들고 싶었다. 그 바람이 잘 이뤄졌는지에 대한 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조금 색다른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애써 자위해 본다. 


음악은 원래 재즈 콤보를 섭외해서 웨스트코스트 풍으로 누아르 느낌을 내보려고 했는데 사운드트리 오리진 대표님과 '빛과 소금'의 장기호 선생님 덕에 일이 커졌다. 전체적인 음악은 오리진 대표님이 맡아주셨고, 라이브 세션은 장기호 선생님, '블랙홀'의 주상균 선생님, 대니 정 선생님, '사랑과 평화'의 이철호 선생님이 참여해 주셨다. <수사반장>을 류복성 트리오가 맡았기 때문에, 우리 음악을 이철호 선생님이 맡아주신 점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다만 요즘 세대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장기호 선생님은 88년 <샴푸의 요정> 이래 처음으로 MBC의 음악을 맡아주셨고, '젊은 피디가 뭘 해본다는데 우리가 좀 도와주자'면서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각종 시각화에 대한 자문은 상업미술의 베테랑이신 스튜디오 매치포인트의 박장열 대표님이 맡아주셨다. MBC의 약점은 외부와 콜라보를 등한시하고 피디의 고독한 결단에 너무 자주 의존한다는 점이다. MBC와 함께 하고 싶어는 원군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결국은 나만 잘하면 되었다. 그러나 편집을 마친 소회는 개운하지만은 않다. 어느 누가 자신의 창작물을 자신 있게 세상에 내밀 수 있을까? 다큐를 하면서 가끔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재능의 벽에 부딪혔을 때. 다큐는 마치 '천재들의 놀이터' 같았다. '그동안 성실하게 살았고, 열심히 일해왔는데, 내가 가진 것이 이뿐인가'에 대한 분노가 컸다. 그 분노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잠을 푹 잤고, 항상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려고 애썼으며, 힘들 때마다 함께 하는 후배 피디와 작가에게 의지했다. 나를 지탱해 온 유일한 자신감이라면 나는 살아오면서 결코 남들이 보는 것을 보지 않았고, 남들이 듣는 것을 듣지 않았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구석에 방치되어 외면받는 것들에 유독 시선이 갔다. 그래서 이상한 취향을 가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프로그램이 피디가 가진 개성의 반영물임을 고려한다면, 나는 충분히 이상한 사람이기에 내가 만든 것들은 엄청나지는 않아도 충분히 이상할 것이다. 전파 속에 자연스레 흘러가는 영상들이 아니라, '저게 뭐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상. 이상하게 나는 이상한 것들을 잘 만들 수 있다는 이상한 자부심이 있다. 물론 결과물이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MBC 다큐멘터리 특유의 고루한 작법을 벗어나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뜻깊은 시도라고 본다. 무녀리의 운명은 가혹한 것이다. 부디 나를 넘어서 더욱 참신한 시도들이 줄을 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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